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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언제나 책봄] "넌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야"

한강 동화 '내 이름은 태양꽃'을 읽고

더에듀 | 1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소위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교육감을 보좌하는 비서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반절 가량을 글쓰기란 업을 갖고 살아왔는데,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 그 비슷한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에세이를 써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호기롭게 시작한 이 다짐은 지금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일은 제 삶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사춘기를 맞은 남매의 취침 시각이 점점 더 늦어진다.

 

“나 출근해야 해. 좀 자자. 이제 제발 좀 자자”를 무한 반복하다 지쳐 스르르 눈이 감길 때쯤 딸아이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날 깨운다.

 

“아오! 또! 뭐?! 뭐? 왜? 엄마 출근해야 한다고!!!!”

 

“엄마!!! 엄마! 이거 뭐야. 정말 웃겨. 유치짬뽕~! hd가 누구야? 엄마 국민학교 6학년 때 좋아하는 사람 있었어? 아니 아니 이건 또 뭐야? 내가 읽!어!줄!께!”

 

‘운명이란, 아주 사소한 만남으로부터 변하게 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푸흣)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무렵, 나의 운명은 틀림없이 달라져 가고 있었다. 8월의 무더운 여름, 강원도 고성에서 처음 본 그 소년에 의해 4월 25일.’

 

”푸하하 하하하하하하, 이건 아빠지?”

 

호들갑스럽게 큰 소리로 웃다 진지해졌다를 반복하는 10대 딸이 구석에 앉아 뭘 하나 했더니 내 비밀일기장을 훔쳐보고 있는 것이었다. 잠이 확 깬다.

 

딸이 크큭 웃으며 정독하고 있는 일기장을 낚아챘다.

 

“너 여기 비밀일기라고 쓰여 있는 거 안 보여?”라고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유치하고 달달하고, 감정기복이 심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얼굴이 몹시 화끈거렸다.

 

그 당시 나의 일기를 보니 요즘 딸의 행동이 점점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부쩍 자기 방에 혼자 있길 좋아하고 별것도 아닌 일로 예민해지고... 어린 가영이와 똑 닮았다.

 

사춘기 시절 나와 만나는 시간, 딸과 함께 어릴 적 나로 돌아가 그 당시 일기장 몇 권을 몽땅 읽어버렸다.

 

일기장 덕분에 딸과 진지한 대화에 물꼬를 텄는데, 요즘 딸의 가장 큰 고민은 새해에도 ‘모태 솔로’이면 어쩌나 하는 거였다.

 

“엄마 난 지금까지 그 흔한 고백 한 번 못 받았어. 내가 별로야? 만약에 남자애가 고백하면, 아직 사귈 준비가 안 됐거든.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뻥 차버릴 거야. 그날을 기다리고 있지.”

“아니 세상에, 13살에 남자 친구가 없다고 고민하는 거야?”

“엄마 일기장을 좀 봐봐. 엄만 더 빨랐잖아ㅎㅎ”

 

남편과 아들은 피부가 아주 흰 편이고, 내 피부는 살짝 노란빛이 도는 살색이다. 우리 딸은 외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좀 까무잡잡한 편인데, 늘 거울 앞에 서서는 “엄마 나 오늘은 좀 하얘 보이지 않아?”라고 묻는 딸이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른을 위한 한강 작가의 동화 ‘내 이름은 태양 꽃’을 읽으며 언젠가 활짝 꽃 피울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꽃은 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요. 웅덩이라도 곁에 있다면 비춰볼 수 있을 텐데요. 내가 있는 곳이 그늘이 아니라면, 그림자로 모양만이라도 알 수 있을 텐데요. 내 곁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나는 묻곤 했습니다.

“나비야, 난 어떻게 생겼니?”

“말벌아, 난 무슨 꽃이니? 나 같은 꽃을 본 적이 있니?”

“산바람 아저씨, 나와 비슷한 향기를 가진 꽃을 아세요?”

그들의 대답은 모두 비슷했습니다.

 

‘내 이름은 태양 꽃’ - p37

 

늘 못생겼다기보다는 이상하게 생겼다는 말을 듣고, 꽃잎 색깔이 투명해 곤충과 바람, 나무에 주목받지 못했던 작은 꽃.

 

그래도 외롭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얼굴 모를 풀을 생각했습니다. 나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묻혀 있는,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풀의 목소리를 생각했습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그 풀 역시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멀리 그날 밖 하늘에 따스하게 떠 있는 태양을 향해 구부정한 허리를 뻗으며 나는 간절히 빌었습니다. 잊지 않게 해주세요.

그 풀이 나에게 처음 말을 걸어왔던 밤을 잊지 않게 해주세요.

세상 모든 것들을 이렇게 생생한 눈으로 사랑하는 법을, 살아 있는 동안 잊지 않게 해주세요.

p86

 

세상을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시나브로 태양처럼 샛노랗고, 태양보다 눈부신 꽃으로 변해버린 꽃 이야기. 그래서 ‘내 이름은 태양 꽃.’

 

짧은 한 편의 동화 속에는 애써 힘겹게 흙을 비집고 나온 생명이 자기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자라는 담쟁이를 떠나보내는 이별의 슬픔, 다른 꽃보다 아름답지 못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절망과 외로움, 세상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며 자신도 모르는 새 점점 아름답게 변해버린 자아를 발견하기까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볼품없는 들풀이 될 수도 있고, 눈부신 태양꽃이 될 수 있다는 인생의 진리가 짤막한 동화 한 권에 다 담겨있다.

 

‘우리 딸 역시 찬란한 꽃을 피우기까지 비바람을 맞기도 하고, 못된 왕벌이 날아와 뾰족한 침을 킁킁 들이대며 달콤한 꿀만 앗아갈 때도 있겠지.’

 

오늘 밤엔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오랜만에 ‘내 이름은 태양 꽃’을 딸에게 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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