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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언제나 책봄]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를

천선란의 <모우어>를 읽고

더에듀ㅣ1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소위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교육감을 보좌하는 비서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반절 가량을 글쓰기란 업을 갖고 살아왔는데,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 그 비슷한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에세이를 써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호기롭게 시작한 이 다짐은 지금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일은 제 삶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핑크와 블루의 아크릴 물감이 물결처럼 섞인듯한 책 표지는 자개처럼 반짝거렸다. 낯선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물처럼. 그가 만나자고 한 곳은 '책방 궤'라는 작은 카페 서점이었다. 같이 간 선배와 일 얘기를 하다 그의 전화 소리에 대화가 끊겼다. 그가 전화를 받는 사이 빠르게 서점 안을 스캔한다. 이곳 주인장의 책 읽는 성향이 나와 비슷하다. 어쩜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이 줄지어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에 한 권 한 권 둘러보니 남모를 뿌듯함과 연대감 같은 게 밀려왔다. 다행히 상대방의 전화가 길어져 내친김에 일어나 책방을 구경한다.

 

그때 한눈에 들어온 천선란 작가의 신작 <모우어>. 손님과 헤어지고 재빠르게 계산대에 책을 내민다. 1박 2일의 출장이 고되긴 했지만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읽을 걸 생각하니 기분이 짜릿했다. 결국 그날 밤엔 피곤에 절어 곧바로 곯아떨어져 구경도 못했지만 일상의 루틴처럼 토요일 새벽 눈을 떠 책 읽는 이 시간이 좋다. 그의 작품인 <천 개의 파랑>, <노랜드>, <이끼숲>을 읽었을 때처럼 천선란 작가의 작품은 제임스 카메란 감독의 <아바타>처럼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책 제목인 <모우어>는 무슨 뜻일까? 호기심이 발동해 잠시 상상해 봤다. 모우어? 모국어? 엄마? 태초의 신비 뭐 그런 이야기일까 상상하다 띠지에 박힌 작가 얼굴이 너무 젊고 예뻐서 놀랬다. 천선란... 내가 생각했던 얼굴이 아니어서 더욱 그랬다.  '끝내 나아가게 하는 내 안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 원래는 안 그러는 편인데 이 책은 제일 마지막 장에 작가의 말부터 읽었다.

 

지구를 여행하며 경계에 선 사람들을 만났다. 정체성, 가치관, 국경, 그리고 삶과 죽음. 그들이 위태롭게 선 경계에 한 발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지냈다. 이 소설은 그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없다. 그러길 바라지만. 비통하게. 그렇지만 홀로 버텨야 하는 그 경계에서 조금은 덜 외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누군가는 숨고, 누군가는 지키고, 누군가는 이름만 남겨놓고 홀연히 사라지는 세상에서. 몇 편의 소설은 독일과 태국, 캐나다 그리고 영원히 떠나버린 누군가의 빈자리에서 썼다.

 

소설 뒤에 숨은 작가가 이제 어렴풋이 얼굴을 알 것 같은 독자에게, 2024년 11월 천선란 p320~321 


홀연히 미지의 세계를 떠나 경계에선 사람들을 만난 그의 자유가 부러웠고, 내가 자유라고 일컫는 그의 방랑의 흔적들 속에 엿보이는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고독, 인생의 덧없음에 마음이 끌려 애독자가 됐다. 특히 이번 책의 부록처럼 딸린 글 천선란의 <창작 - 여행 - 일기>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하고 있는 내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갈망을 안겨다 주었다. 그래서인지 천선란 작가의 작품은 세상살이가 답답할 때,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을 때, 점쳐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몰려올 때 다시 찾게 된다. 얼마 전 자려고 누웠는데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뜬금없이 뱉은 말에 천 작가의 작품이 여럿 생각났다.

 

"엄마 내가 어른이 될 때쯤 지구가 망하지 않을까? 내가 100살까지 살 수 있으려나? 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은데...."

 

12살 아이가 작은 입을 삐죽이며 내뱉은 고민에 가끔 깜짝깜짝 놀란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어? 지구는 안 망해."

 

"유튜브 같은 데서 보면 환경 오염이 심각해져서 지구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데. 우리 어떡해?"

 

"걱정 마. 자연은 끊임없이 순환해. 소멸되고, 또다시 탄생하고, 그 생명력은 대단하지. 영원 그 이상. 환경 오염 때문에 지구가 아파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더 아끼면 돼. 그런 걱정 하지 말고 얼른 자. 사랑해."

 

딸에게 입을 맞추고 꼭 안아준다.


하나의 소리가 언어가 되어 사물에 이름이 붙여지고 인간 사회에 통용되기까지, 문명 이전의 세계, 자연이 영원한 생태계의 주인이 되던 시절. 언어를 사용하면 인간의 감각이 쇠퇘하기에 '부름어'(인간의 언어)를 쓰지 말고 의음(意音)을 사용해야 하는 세계. 이 세계에 사는 주인공인 초우는 어느 날 아기를 발견한다. 그의 이름은 '모우'. 모우는 자랄수록 언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원초적인 욕구가 발동하고... 언어 대신 감각으로 통용하는 이 세계의 부족들은 모우와 초우를 공격하려고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지. 엄마에게 칼을 꽂을 때까지 쫓아올 거야, 그러니 엄마, 들어야 해. 엄마는 기억해야 해. 기록해야 하고. 위험을 잊어서는 안 돼. 그리고 언젠가 다시 한번 그를 찔러야 해. 확실하게. 숨이 끊길 때까지.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게 들키면 안 돼. 엄마의 생각을. 온전히, 비밀스럽게 간직해야 해. 그러니 엄마에게 들려줄 거야. 엄마가 나를 보자마자 떠올린 소리. 엄마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염원이 담겼을 소리. 내가 그 소리의 의미를 정했어.      

모우가 초우를 끌어안았다. 초우의 눈앞에는 모우가 그린 그림이 있다. 초우는 모우의 그림이 언어의 문양만큼 규칙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엄마, 모우라는 이름의 뜻은......................
"삶."   p64

 

엄마의 딸로 태어나 내 딸이 생기고 나니, 내 딸의 딸이 태어날 때쯤의 미래를 가끔 떠올려본다. AI 시대가 도래한 지금,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변화는 시대를 넘어 앞서가는 이와 숨이 허덕이게 따라가는 이, 뒤쳐지는 이, 아예 탈 디지털로 현실을 외면하는 이 등 곳곳에서 세대 간 간극과 교육 격차, 문화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로봇과 함께한 여정을 통해 로봇에게서도 인간적인 사랑을 느끼는 <링과 나의 사막>, 멸망하는 세계 속에서도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은 <노랜드>등 천선란의 작품의 큰 틀의 주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과 위대함을 그려낸다. 내가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를... 희망을 품고 살기를...

 

# 이 글은 브런치에 실린 것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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