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ㅣ1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소위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교육감을 보좌하는 비서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반절 가량을 글쓰기란 업을 갖고 살아왔는데,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 그 비슷한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에세이를 써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호기롭게 시작한 이 다짐은 지금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일은 제 삶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

어떤 시공간이든 덩그러니 혼자 놓이고 나면, 비로소 진짜 내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때론 그간 묵혀왔던 복잡미묘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와 당혹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잔잔하게 사그라들곤 한다.
차분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변화에 빠르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까칠한 성격 탓에, 내 안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렁이고 또 일렁인다. 하지만 마흔여섯 살이란, 나이는 허투루 먹은 게 아니다. 감정의 물결이 세차게 몰아칠 때, 차분해지는 내 나름의 방법을 이제는 터득했기 때문이다.
‘온전히 혼자가 되는 일’
그렇지만 현실은 여섯 명이 복작거리는 대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는 일을 하다 보니 혼자의 시간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전혀 문제 될 건 없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공간에서도 무언가에 몰입하면 된다. 그러면 금세 혼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래도 혼자의 제일인 순간은 그림 앞에 서는 일이다.
‘나와 작품, 작품 그 너머의 세상으로 빠져드는 일.’
비까지 내려주면 금상첨화겠지만, 가끔 세상살이에 지칠 때 혼자 미술관에 가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한다.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마법 같은 일이 생긴다. 강렬한 색채에 압도되어 소름이 돋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이때, 볼을 타고 흐르는 물길은 치유의 길이다. 지난날, 행복했던 유년 시절이 떠올라 생글거리다가도 작가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뛰기도 한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나를 발견하기 위해 미술관에 간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출발했는데도, 청주에서 강릉은 멀고도 멀다. 처음 한 시간은 그저 혼자가 됐다는 사실만으로 들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노래하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고등학교 때 즐겨 듣던 가요부터 연애 시절 자주 불렀던 노래까지, 추억에 젖어 흥얼거렸다.
중간에 걸려 오는 전화에 흐름이 끊기기도 했지만 “고속도로 운전 중입니다”라고 재빨리 마무리한 뒤 혼자임을 만끽했다.
그런데 두 시간이 넘어가자 앞에 사고가 났는지, 진척 없는 차들의 움직임에 다리도 쑤시고 온몸이 비틀린다. 세 번의 휴게소를 들러, 3시간 40분 만에 도착한 강릉. 2시 행사인데 점심 먹을 시간이 애매하다. 다른 직원들은 먼저 출발해 식사했을 텐데 말이다.
혼자 그림 보는 일은 더없이 좋지만, 아직 타지에서 밥을 혼자 먹는 일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강릉시립미술관’ 안내 표지판. 배 속에 뭘 채워 넣는 것보다, 그림 앞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오 맙소사! 개관 특별 전시로 김환기 작가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뉴욕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전 정보 없이 찾아간 곳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모던한 화이트 톤에 깔끔한 디자인, 강릉의 솔 향기와 경포대가 한눈에 보일 것만 같은 탁 트인 개방감.
갑자기 강릉이 부러웠다. 번듯한 도립미술관 하나 없는 내 고향 청주가 생각나서...

작품을 몹시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허용하지 않아, 들뜬 마음을 엄한 셀카 찍기로 달랬다.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 보다.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환기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
두 시 행사만 아니라면 한없이 그곳에 머물고 싶었다. 하늘과 바다, 우주 속에 수많은 점을 담은 그의 그림에 푹 빠져 헤엄치고 싶었다.
코발트블루와 꽃잎처럼 예쁜 빨강, 규칙적인 것 같지만 자유를 닮은 그의 그림을 계속 보고 싶었지만, 내겐 시간이 얼마 없다.
서둘러 1·2·3 전시관을 보고, 아트숍에서 김환기 작가 작품을 담은 장우산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책을 샀다. 집이 아닌 다른 도시의 숙소에서, 나 홀로 김환기를 글로 만나는 일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림을 잘 알진 못하지만 그림 보기를 좋아하는 나는, 김환기의 정신을 마음에 담고 살기로 했다. 늘 세상을 물색하며, 자신이 좋아하고 재미난 일을 하며 사는 일.
요 다음은 또 무엇이라고 쓸지 나 스스로도 모를 일이나, 그림 이외에 또 다른 재미남직한 새로운 대상을 내가 발견하는 날까지는 죽으나 사나 그림을 할 것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 나는 그림을 하면서도 늘 세상을 물색하는 내 마음의 오입을 어찌할 수 없다. 사실, 정직하게 고백하는 아름다운 감정이 나에게도 있으니 말이지, 내게 있어 그림보다 더 재미난 일이 발견되는 때는 당장에 그림 생활을 온통 그대로 놓아두고 발견된 새로운 대상으로 바꾸어 가지려 한다. 이러고 보니, 내 생활이 내일은 어떠한 곳으로 달음질칠지 가히 모를 일 아닌가.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환기 / p.26 / 환기재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