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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언제나 책봄] "네가 사랑을 알아?"

최승호의 ‘눈사람 자살 사건’을 읽고

더에듀 | 1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소위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교육감을 보좌하는 비서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반절 가량을 글쓰기란 업을 갖고 살아왔는데,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 그 비슷한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에세이를 써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호기롭게 시작한 이 다짐은 지금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일은 제 삶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함께 서점을 자주 갔다. 그런데 요즘은 사춘기에 접어든 남매와 함께 외출하는 일조차 버거워졌다.

 

내 손을 꼭 잡고 엄마와 함께라면 어디든 가겠다는 맹목적인 사랑의 크기가 작아진 만큼, 세상을 향한 관심이 더 커진 아이들이 대견하다가도 내심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다.

 

지난 주말에는 방구석에서 꼼짝도 하질 않는 아이들을 꼬드겨 동네 서점을 다녀왔다. 방학이라고 하루 종일 놀지만 말고 하루 한쪽이라도 좋으니,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은근한 압박에 못 이겨 모처럼 나들이에 나섰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서점에서 책을 사고 돈가스와 우동을 먹는 게 필수 코스였는데 추억의 맛집은 사라지고 공사 중이란 팻말만 휑하니 붙어있다.

 

온라인 독서 플랫폼을 정기 구독한 뒤부터는 마음 내키는 대로 무작정 책을 사지 않고 꼭 소장하고 싶은 책만 사지만, 아이들이 고른 책은 무조건 사주는 편이다.

 

중학생 아들이 고른 책은 최승호 작가의 시집 ‘눈사람 자살 사건’이었다. ‘자살’이란 단어에 순간 흠칫 놀랐다가 작가 프로필을 보고 안심이 됐다. 동시집을 5권이나 낸 시인이니 아이와도 잘 통할 것 같았다.

 

최승호 시인은 ‘대설주의보’, ‘세속도시의 즐거움’, ‘아메바’ 등의 시집이 있고 방시혁과 작업한 동요집, 뮤지와 작업한 랩동요집 등이 있다.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이며, 현재는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시 창작 강의를 맡고 있다.

 

청소년 도서 코너에서 몇 권을 추천해 주니 “그건 유치해”라며 아들이 고른 책이다. 품 안에 자식이 점점 멀어져 간다.

 

늦은 밤 잠자리에 “엄마는 아직도 아빠랑 사랑을 나눠?”라고 묻는 중학생 아들의 갑작스러운 돌직구에 졸다 말고 잠이 확 깼다.

 

“아들, 네가 사랑을 알아?”

“그럼 알지. 나도 알아. 유튜브 같은 데서 봤어. 나도 중학생인데 알지.”

 

말을 꺼내기는 조금 뜬금없었지만, 부모로서 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해 “너 그럼 혹시 야한 영상 같은 것도 봤니?”라고 물어봤다.

 

“풋풋.”

 

말 대신 키득키득 웃는 아들의 표정이 귀여우면서도, 밤늦도록 호기심 가득한 청소년의 질문 세례에 나는 진땀을 뺐다.


“엄마는 내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나머지는 아빠한테 자세히 물어봐. 자자”

“아빠한테 묻긴 좀 그래.”

 

자는 줄 알았던 딸아이가 슬며시 모자 간 대화에 끼어들었다.

 

“엄마 내가 봤는데 오빠 연애 웹툰 보면서 무지 좋아했어.”

 

이 분위기를 좀 진정시킬 방법이 필요했다.

 

“눈 감어. 감고 들어.”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 ‘눈사람 자살사건’ p14 1판 22쇄 발행

 

“엄마 재밌는데 슬퍼. 슬픈데 재밌어.”

“그래 그게 인생이야. 재밌는데 슬프고, 슬픈데 재밌는, 인생은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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