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

시작하며
최근 김승현 선생님이 흥미로운 글을 두 편 써주셨다.
공정한 업무 분장과 관련해 성과급을 옹호하는 글(‘05년생 교사가 온다’, ‘성과급, 폐지가 해답인가’)이었는데 필자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될 내용이었다.(관련기사 : https://www.te.co.kr/news/article.html?no=26527)
그런데 평소 흠모하던 곽노근 선생님도 이 두 글에 대한 반박 글(‘성과급 폐지 가치논쟁은 필요하다’)을 올려주셨다.(관련기사 : https://www.te.co.kr/news/article.html?no=26581)
덕분에 필자 역시 더 깊이 고민할 기회가 되었다. 일부는 수용하면서도, 필자의 배경에서 비롯되는 반론을 다시 전개해 보고자 한다.
성과급 논쟁의 본질이 ‘가치’인가?
곽노근 선생님의 주된 비판은 김승현 선생님의 논의에서 ‘가치논쟁’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김승현 선생님이 사실적 논의에 경도되어 가치논쟁 자체를 부정한다는 지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과급 논쟁에 있어서 교육적 이념은 어느 정도까지 강조될 수 있을까?’ 교육적 가치라는 이름 아래 모든 문제가 덮힐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가치에 대한 강조가 지나칠 수도 있지 않은가?’
우선 분명히 해야 할 점은 김승현 선생님이 교육의 가치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김 선생님이 성과급 갈등에서 교육의 가치가 깊게 개입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성과급의 여러 측면 중 ‘교사가 노동의 결과로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라는 관점에 한정된 주장이다.
그렇다면, 성과급 논쟁은 정말 교사의 가치론적 이상과만 연결되는 문제일까?
‘사실’이 가치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성과급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사실’과 ‘가치’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사실은 가치를 통해 의미를 얻는다. 곽 선생님이 가치논쟁을 우선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또한 가치는 사실을 기반으로 실제 작동할 수 있다. 잘못된 사실에 기초한 가치 주장이 현실에서 수정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과거 많은 어른들은 ‘노는 것은 나쁘다’라고 생각했다. 이는 ‘성장’이라는 기본적 가치가 ‘놀이는 아이들의 성장을 저해한다’라는 사실 정보를 기반으로 작동한 결과이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실증적 연구는 ‘놀이가 오히려 성장을 돕는다’라는 진짜 사실을 밝혀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놀이를 긍정적인 활동으로 인식하고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기본적 가치: 성장은 좋다.
(잘못된) 사실: 노는 것은 성장을 저해한다.
잘못된 가치 판단: 노는 것은 나쁘다.
(밝혀진) 사실: 노는 것은 성장을 촉진한다.
새로운 가치 판단: 노는 것은 좋다.
이처럼 사실과 가치의 결합은 무엇이 좋은 선택인가에 영향을 끼친다. 때문에 두 선생님 모두 ‘잘못된 사실에 기반한 가치 판단은 그르다’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다만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떤 ‘사실적 기반’에 따라 ‘가치 판단’ 또한 변화할 수 있다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성과급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견지해야 할 사실과 가치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작업일 것이다.
우리 모두 인정하는 ‘가치’에서 시작해 보자
여기서 ‘우리가 찾아야 할 가치’는 이 문제에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직관에 대한 것이다. 대다수가 함께 공유할 수 없다면 그것은 특정 집단만의 믿음에 그치고, 그 믿음은 이질적인 집단과의 논의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김 선생님이 05년생을 ‘코호트’라는 개념을 통해 명명한 부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김 선생님은 어떤 교육적 이상(理想)에 대해서는 그것이 단절적 가치임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가치 주장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첫째, 성과급은 교사의 성과를 정당하게 반영해야 한다.
둘째, 교사의 성과는 교육적 목적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성과급과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사실
가. 교사의 업무도 교육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필자의 오해일 수 있겠지만, 곽 선생님의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행정업무’라고 부르는 수업 외 업무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시선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교육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기반, 즉 일종의 인프라적 성격도 지닌다.
모든 직업에는 효율성과 투명성을 위해 존재할 수밖에 없는 비본질적인 성격의 업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생활기록부 작성, 복무 관리, 각종 행사 계획 등이 그러하다. 불필요한 업무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링크: https://www.koreateachers.org/news/articleView.html?idxno=3947)
만일 부장을 맡은 교사가 다른 교사를 대신해 교육적 인프라를 구축해 주고 있다면, 이것도 교사의 업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이들의 노고가 충분히 교육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 판단한다. 더욱이 필자의 짧은 경험에 의하면 이들 중 대부분은 승진에 관심이 없었다. 또한 부장 수당을 포기해도 상관없으니 부디 부장만은 면하게 해달라는 입장이었다.
즉, 승진 가산점과 수당은 부장 업무를 맡는 데에 있어 실질적인 이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맡았을 뿐이다.
따라서 성과급은 공교육에 종사하는 교사로서 교육적 이해를 가진 자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대가의 측면을 분명히 포함하고 있다.
나. 수당이 고려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성과급을 결정하는 다면평가 기준을 떠올려보면 무의미한 기준도 들어있다. 가령 연수 시간, 상담 건수 같은 기준은 대다수가 충족시키는 형식적 기준에 머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면평가 기준 중에도 학급 내 학교폭력 사안, 갈등 중재위원회 참여 횟수 등 수당만으로는 고려할 수 없는 지점이 명시되어 있다.
인간을 상대하는 직업인 만큼 교직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은 정말 다양하다.
필자의 이전 학교에서는 한 학생이 너무나 두려워 차라리 부장 맡기를 희망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때로는 예기치 못한 갈등 사안으로 부장 이상의 격무에 시달리는 사례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특정 업무에 대해 예고 없이 교부금이 내려오거나 교육 행사가 추진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를 고려하면 (교원 수에 따라 그 수가 일괄적으로 주어지는) 부장 보직과 그 수당만으로 단위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의 노고를 보상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경우 다면평가와 이에 따라 지급되는 성과급은 개별 학교에 대한 맞춤형 수당과 같이 기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민주적 절차를 거쳐 학교 실정에 맞는 다면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일 수 있지 않을까?
‘성과급은 교육적 성과를 반영할 수 없는가?’라는 의문
최근 들어 교육에서 교사가 느끼는 가치와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 간의 괴리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사회 여러 부문에서 인본주의적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필자에게도 큰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교육의 가치가 본질적이라는 점에 대해 분명하게 확신한다. 인간은 언제나 성장하길 원하며 그 긍정적인 변화 과정에서 설명할 수 없는 고양감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치가 본질적이라고 해서 교사의 교육적 성과마저 측정 불가능하다는 확신은 조금 위험해 보인다.
교육의 가치가 본질적이라면 교사의 직업 활동 역시 본질적이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교육 자체의 가치(중요성)이지 교육 활동의 성과가 아니다.
그것은 ‘측정 불가능하다’기 보다는 단지 측정하기 어려울 뿐이다. 교육적 영향을 측정하기 어렵다면 우회적으로 교사 성장의 노력을 평가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교사가 어떤 방향으로든 발전하고 있다면 그 발전은 아마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이루어질 것이다. 평가의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맺으며: 이상론과 비교론
성과급에 반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분명 간과할 수 없는 지적이 있다. 성과급이 가시적인 평가 기준에 의해 지급될 수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교사들이 본질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어떤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 경시하도록 유인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실을 보라. 승진은 더 이상 보상이 아니며, 수당은 불충분하다. 게다가 수당을 통해 일률적으로 보상할 수 없는 교사의 노고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사실 필자가 꿈꾸는 이상적 교직에도 성과급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과급 폐지가 교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상적 미래를 완성해 놓고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가치를 확정 짓는 것은 당장 해소할 수 있는 문제마저 미루게 만든다. 때로는 분명히 해결가능한 방안을 선택하는 비교론의 시각이 더 필요한 때도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실천교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것을 일부 재가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