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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사 이야기] 친절하며 단호한 초등학생 생활지도, 어떻게 해야 하나①

‘친구 같은 교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초임 교사, ‘친구 같은 교사’를 꿈꾸다


저는 처음 교사가 되면서, ‘친구 같은 교사’를 꿈꾸었습니다.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은 데에는 제 학창시절 과거가 한몫했습니다.

 

제 중학교 시절은 정말 처참했습니다. 다른 글에서 쓴 적이 있는데, 제가 다닌 중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깡패였습니다. 거의 모든 선생님이 매를 들고 왔고, 조금만 떠들어도 손바닥은 기본이고 허벅지, 종아리, 발바닥은 매타작으로 멍들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간혹 매를 들고 오지 않는 선생님도 계셨는데, 매 대신 우리는 싸대기를 맞았습니다. 준비물 안 갖고 왔다고, 그들이 때리기 좋으시게 제 얼굴을 살짝 기울여 자리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점점 제 차례가 다가올 때는, 긴장감도 그런 긴장감이 없습니다.

 

쇠몽둥이로 단체 엎드려뻗쳐 자세로 엉덩이 맞기, 도미노처럼 일렬로 서서 싸대기 줄줄이 맞기, 바리깡으로 머리 고속도로 나기, 한 시간 동안 엎드려뻗치기 등이 참으로 일상인 학교였습니다. 더 심한 것들이 많지만 뭐 좋은 거라고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중학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외고로 갔기에 나름 공부 잘 하는 아이들과 함께였고, 선생님들도 상대적으로 점잖았습니다. 적어도 매로 체벌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간혹 있긴 했지만, 그 전 중학교에 비하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선생님들은 흥분을 잘했습니다. 한 번은 계속해서 수업시간에 졸았던 한 학생을 나오라고 하더니, 갑자기 씩씩대며 싸대기를 무지막지한 파워로 날리는 게 아니겠어요. 역사 교사였던 그는 수업 중에도 박정희 비판하고, 미국 비판하고 했던 소위 ‘진보적인’ 교사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저에게 힘을 가졌던 그 교사는, 그 일 이후 저에게 힘을 잃었습니다. 역겹디 역겨운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흥분하면서 감정을 담아 주먹으로 때리는 교사가 이곳에는 그 말고도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은 제 바람은, 이 빌어먹을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생겨났습니다. 만약 내가 교사가 된다면, 저런 별 꼴 같지 않은 교사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나는 따듯하고 포근하며, 친구 같은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친구 같은 교사, 나락으로 떨어지다


그런 마음으로 처음 교단에 기간제 교사로 섰습니다. 나는 화내지 않고,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요. 그래서 아이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주었습니다. 거절하면 아이가 상처 받을까봐 돌려서 돌려서 얘기했는데, 아이는 못 알아들었는지, 알아들었어도 못 알아들은 척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시 무대뽀로 요구했습니다. 결국 저는 받아주었습니다.

 

수업 중 떠들어도 저는 어쩌지 못했습니다. 물론 조용히 하자고 부탁했지만, 아이들은 조용히 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얘기해도 안 됐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용히 하라는 저의 온화한 부탁은 정말 씨알도 안 먹혔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 선을 넘었습니다. 저를 치고 도망갔습니다. 저는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었기에 화내지 않고 받아주었습니다. 저도 아이를 쫓아가며 잡기 놀이를 했습니다. 같이 교실을 뛰었습니다. 그렇게 하니 아이도 웃고 나도 웃으며 즐거워 보였습니다. 순간적으로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내가 정말 친구 같은 교사가 된 것 마냥 착각에 아주 깊이 빠졌지요.

 

아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더 선을 넘었습니다. 학교에 오면 모두 핸드폰을 끄고 제출해야 하는데(핸드폰이 생겨나 아이들 손에 막 들어온 초기에는 그랬습니다), 한 녀석은 일부러 저 보란 듯이 핸드폰을 내지도 않고 꺼낸 채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고선 한 소리 하려고 다가가니 그 아이는 교실을 뛰쳐나갔습니다. 저는 잡으러 나갔고 그 아이는 도망쳤습니다.

 

친구 같은 교사, 못 해 먹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이거 때려 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떤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을까요? 네, 맞습니다. 저는 무서운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아이들에게 소리치고 호통치는, 그런 교사가 돼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떠들면, 딱딱한 물건이나 책을 교탁에 큰 소리가 나도록 치기도 하며 “모두 조용히 안 해! 모두 눈감고 손머리 해!” 하는 식으로 소리쳤습니다. 물론 다행히도 아이들을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2000년대 후반, 그때만 해도 체벌이 알게 모르게 있기는 했겠으나 크게 허용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최소한 그것만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문제행동이 너무 심했고 아무리 얘기해도 안 되는 어떤 아이에게 엎드려뻗쳐까지는 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또 들고 있던 결재판으로 아이의 어깨를 밀친 적까지도 있었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순간입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그토록 증오했던 교사들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친구 같은 교사가 되길 바라던 제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친구 같은 교사, 그 환상에서 벗어나다


신규 교사 중 은근히 저 같은 과정을 거치는 분들이 꽤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각 잡고, 무섭게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저처럼 온화하게 해 보다가 안 되니 오히려 그 반작용으로 무섭게 돌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친근하게도 해 보다가, 무섭게도 해 보다가 어느 정도 균형점을 찾지 싶습니다.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여기서 어쨌든 분명하게 말씀드릴 건, 친구 같은 교사는 ‘환상’이라는 겁니다. 그런 교사는 없습니다. 혹시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친구 같은 교사가 환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래서 현실에 있다손 치더라도, 그게 바람직한 교사의 모습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친구’라는 게 어떤 관계입니까. 서로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입니다. 얼핏 들으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친구 사이에서는 물론 그런 관계가 좋고, 친구 사이라면 응당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교사와 학생 사이도 평등하고 대등해야 할까요? 그게 바람직한 모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가 군대처럼 억압적인 상하관계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평등하고 대등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교사는 가르치는 위치에 있고, 학생은 배워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예민한 분들은 이게 굉장히 권위적인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는데, ‘교사’라는 낱말 자체가 그런 뜻이고, ‘학생’이라는 낱말 자체가 그런 뜻입니다. 저는 그저 풀어썼을 뿐입니다. 애초부터 둘 사이는 대등함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교사는 친구가 아니기에 학생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 줄 필요도 없고, 모두 수용해 줘서도 안 됩니다. 심지어 친구 관계에서도 다른 친구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지 않습니다.

 

내가 불편하면 들어주지 않는 게 맞습니다. 억지로 들어줘야 한다면 그건 어느 순간 폭력이 되는 겁니다. 하물며 옳고 그름을 가르쳐야 할 교사가, 때로 옳지 않은 요구를 하는 학생들의 요구까지 모두 들어주는 게 맞는 걸까요?

 

물론, 당연히,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라면 민주적인 토론과 토의 과정을 거쳐 들어주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까지 부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논의의 폭은 지금보다 더 넓힐 필요 또한 있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정말로,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안 되는 것들까지 인권의 이름으로, 친구 같은 교사의 이름으로 받아주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예컨대, 폭력적인 행동은 어떤 이유에서든 받아줄 수 없습니다. 다른 친구를 무차별적으로 때리고 있는데, 나는 친구 같은 교사니깐 제지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제지해야 하나요? 실제로 친구 관계라면, 물론 제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지하지 않고 방관하거나 어쩌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친구 같은 교사라면 학생의 폭력적 행동을 반드시 제지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아니면 좋게 좋게 타이르는 걸로 끝나거나요.

 

물론 그 학생이 왜 이렇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지 그 사정을 알아보려고 노력해야 하고, 이 학생 또한 피해 받은 게 없는지도 알아봐야겠지만, 주먹을 휘두르는 그 순간은 단호히 막아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폭력은 절대로 안 된다는 걸 그 아이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교사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이 있다는 걸 가르쳐야 합니다. 이건 친구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교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거지요. 교사가 친구가 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친구 같은 교사이기를 포기한다고 해서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게 아닙니다. 친구 같은 교사이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아이들의 인권을 도외시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친구 같은 교사를 그만하겠다고 해서, 민주적이기를 포기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민주적인 학급을 위해서, 배제와 차별과 따돌림을 막기 위해서라도 친구 같은 교사는 그만둬야 합니다.

 

제발 아직도 친구 같은 교사가 되길 바라는 선생님이 계시다면, 그 환상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본인도 실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친구’와 똑같은 수준의 교사를 생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저 친구처럼 기댈 수 있고, 권위적이지 않고, 민주적인 교사상을 생각하고 계실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낱말의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친구 같은 교사라는 게 뭔지, 정말 내가 원하는 게 친구 같은 교사가 맞는지.

 

저는 당시에는 몰랐어요. 민주적인 교사와 친구 같은 교사가 다르다는 것을. 저는 실은 민주적인 교사가 되고 싶었다는 것을.<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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