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디지털리터러시 교육은 이제 모든 교육 현장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를 실제 수업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교육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디지털리터러시협회>는 지난 9년간의 교육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디지털리터러시 교육을 위한 실질적인 인사이트를 제공하고자 한다. ▲디지털 교육 편견 극복 사례 ▲교과 및 다양한 활동과의 융합 속에서 디지털 도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노하우 등을 담을 예정이다. 또 교육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천 가이드와 문제 해결 방안을 제공해 현장 교육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

디지털 공간 속 아바타, 또 다른 ‘나’
“재미로 만든 거예요. 그냥 아바타잖아요.”
수업 중 한 손에 술병을 든 아바타를 꾸민 학생이 한 말이다.
아바타로 자신을 표현하게 하면 학생들은 다양한 시도를 한다. 자신을 닮게 만들기도 하고, 되고 싶은 모습이나 다소 과장된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중에는 장난이 지나친 경우도 있다.
여기서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이 칼럼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청소년들이 아바타를 ‘자신과는 무관한 표현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소년들이 그렇게 인식하는 이유는 디지털 공간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디지털 공간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익명성’이다. 익명성은 디지털 자아와 현실 자아를 분리하며 해방감을 제공한다. 익명성 뒤에 숨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청소년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이에 익숙해진다.
현실 속 자유에는 책임이 반드시 따르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이 공식이 잘 성립되지 않는다. 자유는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책임은 대개 나중에야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지켜야 할 ‘표현의 책임’을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스스로 깨닫기 어렵다. 그 깨달음의 출발점이 바로 ‘디지털 정체성’ 교육이다. 디지털 세상의 ‘나’도 ‘진짜 나’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디지털리터러시협회는 자신을 닮은 아바타를 만들어 자기소개를 하는 것으로 첫 수업을 시작한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정체성과 ‘멀티 페르소나’에 대해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디지털 정체성’이란 아이디, 사진, 게시글, 참여하는 모임 등 온라인상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디지털 정체성 관리는 곧 디지털 공간에서의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다. 아바타, 사용하는 언어, 댓글과 반응, 공유하는 콘텐츠는 물론 즐겨보는 콘텐츠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관리하는 것이다.
멀티 페르소나란, 다양한 디지털 환경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개인이 여러 개의 디지털 자아를 갖는 것을 말한다. 현실에서도 자녀로서의 나, 학생으로서의 나, 친구들 사이의 내가 조금씩 다르듯이 디지털 세계에서도 다양한 자아를 가질 수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더 멀리, 더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 자아는 더욱 다양해진다.

디지털 발자국, 날개가 될 수도 족쇄가 될 수도
디지털 정체성과 멀티 페르소나는 단순한 이론적 개념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SNS, 메타버스, AI 기반 콘텐츠 등을 통해 끊임없이 ‘나’를 표현하고, 사람들은 그 디지털 정체성을 바탕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디지털 공간에 남긴 말과 행동은 모두 디지털 발자국으로 남아 미래의 진로와 인간관계, 나아가 중요한 기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발자국은 때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잘못 남기면 평생의 부끄러운 기록이 될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디지털 정체성 관리란 단순히 프로필이나 아바타를 꾸미는 것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누리되,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되 긍정적인 흔적을 남기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학 졸업을 앞둔 디자이너 김윤재 씨는 유학이나 어학연수 경험이 없었다. 기업 인턴 활동 후 채용에 탈락한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뜻밖의 행운은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그는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 사이트에 꾸준히 자신의 아이콘 디자인을 공유해 왔고, 이를 본 디자인계 거장 존 마에다가 자신의 SNS에 리트윗을 하면서 국제적 기업들의 면접 제의를 받게 되었다. 결국 그는 애플 미국 본사에 입사하는 기회를 얻었다.
반면, 한 7급 공무원 합격자는 과거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긴 여성 또는 장애인 비하 발언이 밝혀지면서 임용이 취소되었다.
이 두 사례는 디지털 정체성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잘 남긴 디지털 발자국은 날개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디지털 정체성은 수업 중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디지털리터러시협회의 ‘자기소개 아바타 만들기’ 수업은 단순한 캐릭터 꾸미기가 아니다. 아바타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활동으로 확장된다. 완성된 아바타로 자기소개 발표를 하고, 디지털 세상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벌칙을 스스로 정한다. 친구의 아바타에 ‘좋아요’와 댓글을 남기며 건강한 소통 방식을 배우기도 한다.
장난이 심한 학생도 이런 과정을 통해 올바른 방향을 찾는다. 아바타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바람직한 자아를 설계해 보기도 한다.
디지털 자아와 현실 자아는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디지털 공간에서 긍정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은 현실의 자신을 더욱 멋지고 성숙하게 가꾸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교사는 이 활동에서 표현을 억제하기보다 자율성과 책임의 균형을 찾도록 이끄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이 모든 논의의 핵심은 결국 하나의 명제로 귀결된다. 아바타는 가면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하고 표현한 또 다른 나이며, 그 안에는 내가 추구하는 태도와 가치가 담겨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말과 행동은 곧 ‘나는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표식이다. 그리고 현실과 달리 디지털 공간에 남긴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기부터 디지털 정체성에 대한 교육은 필수적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탐색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 교육 속에서 디지털 정체성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행동에 의해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간다”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디지털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만들어 간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디지털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돕는 교육, 그 출발점은 교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