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 29.2조원.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이다. 전년 27.1조원에서 2.1조원(7.7%)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고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더 충격적인 것은 영재학교 1학년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2017년 73.1%에서 2022년 89%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운영하는 최고 수준의 공교육기관에서도 10명 중 9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다면, 이는 더 이상 개인의 선택이 아닌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를 의미한다.
2024년 전체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7만 4000원으로 전년 대비 9.3% 증가했다. 물가상승률(3.6%)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특히 사교육 참여율은 80.0%로 전년 대비 1.5%포인트 증가해 5명 중 4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는 머지않아 ‘사교육 없는 학생’을 찾기 어려운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정부 대책은 왜 실패하고 있나
교육부는 2023년 6월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했다.
공정한 수능 평가 실현, 사교육 카르텔 근절, 맞춤형 학습 지원 등을 내세웠지만, 1년이 지난 결과는 참담하다. 사교육비는 오히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사교육 참여율도 증가했다.
‘왜 정부 대책은 번번이 실패할까?’
근본 원인은 수요 억제가 아닌 공급 확대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과후학교 확대, 늘봄학교 운영, 온라인 강의 제공 등은 모두 필요한 정책이지만, 사교육 수요를 만들어 내는 구조적 요인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마치 댐에 구멍이 뚫려 물이 새고 있는데, 구멍을 막지 않고 계속 물을 부어 넣는 격이다.
사단법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서울에 살수록, 공부를 잘할수록 사교육 지출이 높아지는 부의 대물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OECD 평균에 비해 한국의 GDP 대비 민간 재원 공교육비 비율은 1.1%로 OECD 평균(0.8%)보다 높다. 이는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근본적 해법: 시스템 전면 개편이 답이다
이제는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30조원에 육박하는 사교육비는 우리 사회가 지불하는 ‘교육 실패의 비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3대 핵심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 대학입시제도의 획기적 간소화가 시급하다.
현재의 복잡한 입시제도는 그 자체로 사교육 산업의 먹잇감이다. 학생부종합전형, 논술전형, 정시전형 등 다양한 전형이 존재하지만, 결국 모든 전형에서 사교육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독일의 아비투어처럼 표준화된 단일 시험체계로의 전환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복잡할수록 정보 비대칭이 커지고,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진다.
둘째, 공교육의 '개별화 교육'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영재학교 학생들조차 사교육을 받는 주된 이유가 ‘내신 대비’라는 사실은 공교육 시스템이 학생 개개인의 수준과 진도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기술을 활용한 개별 맞춤형 학습 시스템, 소규모 그룹 중심의 토론 수업, 학생 선택권을 대폭 확대한 교육과정 등을 통해 ‘사교육이 불필요한 공교육’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과정 중심 평가’로의 전면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의 일회성 시험 중심 평가는 단기 암기와 문제 풀이 기술을 중시하는 사교육 시장의 논리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이제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 토론과 발표, 실험과 탐구 등을 통한 ‘역량 중심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이런 평가는 사교육으로 대체하기 어렵고, 학생들의 진정한 실력을 측정할 수 있다.
국가적 각성이 필요한 시점
한국경제인협회 연구에 따르면 사교육비가 1만원 오를 때 합계출산율은 0.012명 감소한다. 올해 사교육비가 2.4만원 증가했다면, 이는 출산율을 0.03명 정도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사교육 문제는 더 이상 교육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립의 문제가 되고 있다.
영재학교 입학생의 70.1%가 수도권 출신이고, 대표적인 영재학교 입시학원 세 곳에서만 400명이 넘는 합격생을 배출했다는 현실은 우리 교육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교육 경쟁이 전국 단위로 확산하고 있어야 한다.
정부는 매년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지만, 29.2조 원이라는 숫자는 그 모든 대책이 실패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제는 기존 틀을 벗어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교육 없이도 충분히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 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교육개혁이다.
29.2조원의 사교육비는 우리 사회의 SOS 신호다. 이 경고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교육 불평등이 굳어지고 출산율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절망적인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사교육 공화국에서 벗어날 마지막 기회, 바로 지금이다.’

김영배= 교육자이자 비영리 사회 단체장으로 25년 이상을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육은 사회 성장의 기반이 되는 자양분과 같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학 박사로서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의 방향은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특히, 인적자산이 대부분인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춰, 소통과 협력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지식보다 인문학적 소양과 다양성 교육이 미래세대에 더 가치 있고 필요한 생활자산이라 생각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흐름 속에서 교육의 중요성이 더 강화되고 있다는 기본 인식 속에 미래 가치를 어떻게 준비하고 연구해야 하는지를 국내외 사례 분석을 통해 논해 보고 싶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