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교육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성장 자산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교육의 목적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있어 학생들의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며, 함께 활용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소통 교육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독자의 관점에서 교육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교육의 방향에 대한 이해와 토론을 이끌어 내는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기 위해 교육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

동·서양 건축으로 본 미래교육 철학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적 활동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는 시대,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의 청사진을 다시 그려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흥미롭게도 그 해답의 실마리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지혜가 담긴 ‘건축’에서 찾을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이 공간을 이해하고 빚어온 방식의 차이는 우리가 미래 인재를 위해 어떤 교육의 ‘집’을 지어야 할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서양 건축 ‘벽의 미학’, 동양 건축 ‘관계의 미학’
서양 건축은 ‘벽의 미학’으로 요약된다.
건조한 기후 속에서 돌과 벽돌을 쌓아 올린 서양의 건물은 외부 세계와 나를 명확히 구분하는 견고한 ‘벽’에서 시작한다.
이 벽은 인간을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물리적 경계이자, 세상을 분석하고 객관화하는 서구 철학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건축 철학은 그대로 서구식 근대 교육 시스템에 투영됐다.
교실이라는 사각의 공간, 과목별로 나뉜 뚜렷한 경계, 객관적 지식의 체계적인 축적과 평가.
이는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인재를 키워내는 데 더없이 효과적인 ‘교육의 벽’이었다.
반면, 우리 전통 건축은 ‘관계의 미학’을 보여준다.
비가 많고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환경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벽 대신 ‘기둥’을 세워 구조를 만들고, 그 사이를 유연하게 채우거나 비워두었다.
긴 처마는 비와 햇빛을 조절하며 자연을 안으로 들이는 완충지대가 되었고, 낮은 담장 너머의 풍경을 정원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의 지혜는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세상과 내가 하나임을 일깨웠다. 이는 내부와 외부, 인간과 자연, 교과와 삶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동양적 세계관의 발현이다.
AI 시대, 어떻게 집을 지을 것인가
AI 시대,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견고한 ‘벽’인가, 아니면 세상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열린 ‘창’인가?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지식의 벽을 쌓을 수 있는 지금, 교육의 패러다임은 서양 건축적 모델에서 동양 건축적 모델로 전환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미래 교육 설계는 다음 세 가지 ‘관계의 미학’을 회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교과목의 ‘벽’을 허물고 융합의 ‘대청마루’를 깔아야 한다.
수학, 과학, 역사, 예술이 분리된 지식의 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지식이 넘나들고 소통하는 넓은 대청마루 같은 학습 환경이 필요하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 문제 중심 학습이 바로 이러한 융합적 사고를 키우는 교육의 ‘기둥’이 될 것이다.
둘째, 정답을 향한 ‘외길’ 대신 맥락을 읽는 ‘창’을 내야 한다.
우리 건축이 창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풍경을 담아냈듯이 교육 역시 정형화된 지식을 주입하는 대신 학생들이 세상을 자신만의 창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AI가 내놓은 결과값이 어떤 사회적, 윤리적 맥락을 갖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조망하는 통찰력이야말로 AI가 가질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이다.
셋째, 학교라는 ‘성곽’을 넘어 세상이라는 풍경을 ‘차경’해야 한다.
교실 안에서만 머무는 교육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과 협력하며, 전 세계 학생들과 교류하는 등 학교의 낮은 담장 너머의 세상을 적극적으로 교육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살아있는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학생들은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법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AI 시대의 지속 가능한 인재는 지식의 ‘소유자(Owner)’가 아니라 관계의 ‘설계자(Architect)’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지식의 벽을 높이 쌓는 교육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세상과 유연한 관계를 맺고, 변화하는 풍경을 기꺼이 껴안으며,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수 있도록 비어 있어 더 충만한 ‘관계의 집’을 지어주어야 할 때다.

김영배= 교육자이자 비영리 사회 단체장으로 25년 이상을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육은 사회 성장의 기반이 되는 자양분과 같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학 박사로서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의 방향은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특히, 인적자산이 대부분인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춰, 소통과 협력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지식보다 인문학적 소양과 다양성 교육이 미래세대에 더 가치 있고 필요한 생활자산이라 생각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흐름 속에서 교육의 중요성이 더 강화되고 있다는 기본 인식 속에 미래 가치를 어떻게 준비하고 연구해야 하는지를 국내외 사례 분석을 통해 논해 보고 싶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