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

지도교수님과 대화를 하던 중 교수님이 내게 말했다.
“김 선생, 교사들이 잡무라는 말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을까?”
듣고 보니 궁금해졌다. 요즘은 잡무라는 표현에 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언급을 신중히 하는 편이지만, 아무튼 교사들은 교육 이외의 업무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잡무라는 표현은 이를 나타내는 수단이다.
궁금해져서 그날로 집에 와서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에 접속해 검색해 보았다.
‘교사 잡무’
뉴스를 검색해 보니 1920년부터 1995년까지 교사잡무는 총 523건 등장한다. 광복 전에는 2건 정도가 등장하니 제쳐두면 국내 언론에서 이런 인식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63년 4월 16일 경향신문의 칼럼에서다. 칼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생이란 말이 오늘처럼 권위를 잃게 된 데에는 폭주하는 잡무와 형식주의, 교육자 자신의 자숙 부족 등...’
같은 해 12월 조선일보도 학력 저하의 원인으로 언급한다.
이때 실제로 잡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했지만, 이미 교사들에게 부여된 교육 이외의 업무가 막상 교사 본업을 하지 못하게 해서 학력 저하를 낳았든, 권위를 잃게 했든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1964년에도 ‘잡무에 시달리고 있는 교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벌써 60년도 더 된 이야기인 셈이다.
1966년에는 국민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인천시 교육연구소 설문에서 65%가 교직생활은 ‘다른 직업이 생길 때까지’만 하는 일로 응답했으며, 그 이유로 간섭과 ‘잡무’를 꼽는다. 다음 해에도 교사들은 잡무 때문에 시간이 없어 연수, 연구활동을 의욕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다. 지금이랑 별 다를 바가 없다. 그래도 60년대만 하더라도 뉴스에서 빈도가 높지는 않다.
70년대 들어서 조금씩 늘어난 빈도는 연 평균 20건을 기록하다가 81년도에 40건을 넘긴다. 특히 1981년의 조선일보 기사는 소개하고 싶다.
‘중소기업 보고 잡무 2~3일에 한 건 꼴’이라는 제목으로 중소기업도 일선 교사만큼이나 보고 잡무가 많은 등 과중한 행정부담을 안고 있어(...)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이 인상적인 건 ‘잡무가 많다’의 기준 대상이 일선 교사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에서는 행정관, 경제단체, 금융기관 등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 빈도는 2~3일에 1건 수준으로 일선 교사들의 잡무량과 유사하다는 것.
재밌지 않나? 1980년대 교사는 잡무가 많은 직종의 대표 격인 셈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서 70년대 후반부터 교원잡무경감조치 등이 실행됐다. 즉 교원업무경감 정책은 벌써 50년 가까이 된 정책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현재 교사의 업무는 여전히 많다. 도대체 왜일까?
과거의 정책을 평가할 자신은 없다. 다만 최근의 이 정책이 잘못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은 있다. 마침 지난달 국회에서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는 학교업무경감 관련 토론회를 다녀왔다. 업무경감을 위한 연구와 교육청의 사례들을 듣다 보니 든 생각을 나누려고 한다.

먼저 경감에 대해 연구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연구할지 생각해 보자. 내 생각에는 이렇다.
- 학교의 업무를 잘 아는 사람들이나 기존의 연구를 기반으로 설문을 만든다. - 설문을 돌린다. - 어떤 것이 교사업무에 해당하지 않는지 묻는다. - 그 업무를 누군가에게서 빼내는 방안을 마련한다. |
그러면 돌봄 업무는 교사가 할 일이 아니라든지, 정수기 관리는 행정실에서 해야 한다든지, 방과후 강사 채용 등.... 뭐 이런 얘기들이 나올 것이고 그중 우선순위가 높은 것들에 대해서 교육청이 해결책을 마련한다.
이게 실제로 최근의 업무 경감에서 나오는 전개 방식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자. 어느 교육청에서 방과후 강사 채용을 교육청이 전담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하자. 그럼 교사 업무는 경감되었나? 어떤 측면에서는 그럴 수 있다. 분명히 업무는 줄어든 것이 맞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르다. 그것은 ‘특정 교사 1인의 업무’가 줄어든 것일 뿐이다. 흔히 교사 업무가 많다고 하는 것은, 교사 전체가 해야 하는 업무가 많은 것을 말한다. 특정 업무를 빼내는 방식은 전체 교사의 업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고등학교 1학년 담당 교사들을 뒤집어 놓은 것이 ‘고교학점제로 인한 출결’ 정책이다.
기존에 담임교사가 일괄 체크하던 것을 교과교사들이 체크하도록 바꾸었고, 그러다 보니 교과교사가 제대로 체크하지 않으면 담임교사가 바빠진다. 교과교사 역시 안 온 학생이 왜 안 왔는지 담임을 통해 확인해야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메시지의 양과 혼란이 늘어났다. 출결 정책이 바뀌면서 모든 이의 업무량이 증가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수기 업무를 이관하는 것 같은 업무경감정책은 특정 교사 1인에게는 큰 도움이겠지만 다수의 교사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업무경감일 뿐이다. |
애초 문제 접근 자체가 일을 잘 아는 사람들, 그러니까 학교로 따지면 교감 또는 교무부장과 같은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것부터가 사실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업무 특성상 대부분의 일을 생성하고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업무를 업무 단위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교 업무는 특정 단위도 문제겠지만, 사실은 ‘모두’가 ‘번거롭게’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업무경감의 방향은 1인에게 부과된 업무량 10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10인의 업무량 1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잡무’가 아니라 ‘본무’(본업에 관한 업무)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평가계획을 세우는데 주 단위로 상세하게, 각 주차 별로 어떤 수업을 하고 어떤 평가를 할지 계획을 세우라는 것 같은 것.
AIDT를 사용하기 위해 모든 학생과 학부모에게 정보제공동의서를 받는 것.
생기부에 적히는 특기사항들을 모든 학생에게 기재하게 하고 심지어는 입시와 관련된 것을 많이 쓰게 하는 것.
학기 단위로 마감해 1학기 정보를 수정하기 위해 정정대장을 작성하게 하는 것 같은 것.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는 일들에 ‘안전’을 위해 내부결재를 맡아놓으라고 하거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여러 명을 거치게 하는 일. |
예산 칸막이도 이에 해당한다. 고등학교는 기초학력은 기초학력대로 하면서, 최소성취수준보장을 별도로 해야 한다. 각각의 사업은 사업대로 칸막이가 되어 있어서 서로 쓰는 예산 항목이 다르다.(초등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다고 들었다.) 뭐 좀 해보려고 하면 서류를 잔뜩 쓰게 해서 하면 할 일도 안 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쓸데없이 일하게 만드는 구조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부나 교육청의 사업도 학교의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 보통 교육부나 교육청의 사업은 모든 교사에게 업무에 들일 시간을 10분씩 늘린다. 그 10분이 모여서 학교 전체의 시간이 된다.
업무경감은 일단 이런 구조들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 이러한 일의 원인은 사실 교육부, 교육청, 학교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특히 어느 누구도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오해하지 말자, 굵직하게 들어온 하나의 큰 뿌리를 뽑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글은 그것을 뽑는 데 집중하느라 잡초를 놓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나무도 잡초도 함께 다뤄야 한다. 업무경감 사업은 ‘업무를 얼마나 줄였는지’를 정량화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누구의 업무 시간이 얼마나 줄어들게 되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 글은 실천교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을 일부 재가공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