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

지난 4월 말, 국회에서 유아 사교육 문제 관련 정책 간담회가 있었다. 행사의 사회를 맡아 참여하며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유아 사교육 문제가 전면 대두한 이후 오히려 유아 사교육에 대한 관심도는 더욱 높아졌다. 추적 60분에서 방송된 ‘7세 고시를 운영하는 학원에 접수 문의가 폭주했다’라는 제작진의 취재 후기는 ‘이 문제가 과연 해결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때문인지, 유아 사교육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창 놀아야 할 나이에 선행학습을 위한 사교육을 받는 것은 아동 학대라는 것이다. 유아 초등학생 입시 사교육을 중단하는 국민투표를 하자는 주장이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일종의 치킨게임처럼 각자가 선의로 그만두기를 기대할 수 없다면, 함께 그만둘 수 있도록 추진할 동력이나 법적 강제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하면 아이들에게 놀이 시간이 주어질까?”
어린 시절, 나는 자주 공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놀았다. 축구, 농구, 야구 등 웬만한 스포츠는 우리 동네 공터에서 배웠다. 공터는 때로 축구장, 때로 야구장이 되었고, 사람이 적을 때는 비석치기나 고무줄놀이하는 공간이 되었다. 상황에 따라 공간을 자유롭게 바꾸며 놀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놀이가 불가능해졌다.

첫 번째 이유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사라지니, 더 이상 공놀이를 할 인원이 채워지지 않았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많은 이는 ‘학원이 문제’라고 말하고, 사교육만 사라지면 동네 놀이 생태계가 복원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학원이 문제였을까?’
우리가 공터에 모이지 못한 두 번째 이유는, 공터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가용이 늘어나면서 주차 공간이 필요해졌고, 공터가 그 역할을 했다. 나와 같은 또래들은 아마 공터에서 놀다가 공이 차에 맞아 경보음이 울리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경보음에 밀려 축구를 하려면 동네가 아닌 학교까지 나가야 했다. 시간이 많다면 몰라도, 학원 때문에 그마저도 어려웠다.
결국 동네 놀이 생태계의 파괴는 단지 학원의 문제가 아니라, 이용 가능한 공간의 부재이기도 했다.
올해 여덟 살인 내 조카는 풋살 아카데미에 다닌다. 한 달에 18만원을 내고, 대회에 참가할 때는 4만~5만원씩 추가로 낸다고 한다. 공을 차기 위해 시간, 공간, 사람을 돈을 주고 사는 셈이다. 이제는 놀이에도 돈이 들어가는 시대다.
게다가 풋살장은 공터와 다르다. 개방된 공간인 공터는 비구조적 놀이가 가능하다. 때에 따라 놀이 종목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풋살장은 풋살만을 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야구나 비석치기를 한다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 된다.
최근 지어지는 신축 아파트 커뮤니티 공간에는 운동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 마련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공간은 모두가 함께 어울리기보다, 시간을 예약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비어 있는 ‘공(空)터’는 사라졌고, 함께 사용하는 ‘공(共)터’마저도 사전 예약을 통해 제한적으로 이용하는 상황이다.
정해진 범위 속에서 노는 것을 순수하게 놀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따르는 놀이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놀이가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하지만, 그런 놀이가 이렇게까지 제한되고 통제된 놀이를 의미하는 것인가?’
이는 단지 제약된 놀이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제약된 놀이밖에 할 수 없는 환경을 문제 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논란이 된 한 초등학교의 사과는 슬프기보다는 절망적이다. 그나마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인 학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연 것조차, 아파트 주민의 눈치를 보며 ‘죄송하다’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이들의 놀이가 남에게 ‘죄송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과거 한때 문제가 되었던 ‘노키즈존’과는 다르다. 엄연한 ‘키즈존’인 운동장과 어린이 공원에서조차 아이들은 간섭받고 있다.
나도 아파트를 맞은편에 둔 중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학생부 업무를 맡으면서 여러 민원을 접했다.
“왜 아이들이 집에 안 가고 운동장에 남아 있느냐”, “왜 학교 앞 공원에 애들이 모여 있느냐” 하는 것들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이들이 아무리 학원에 가지 않는다 해도 결국은 돈을 들여 실내 공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즉, 결국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유아뿐만 아니라 초등, 중등에서도 과도한 사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사교육을 받지 않는 아이들이 마음껏 모여 놀 수 있는 공간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 충북실천교육교사모임은 2박 3일간 캠핑 행사를 열었다. 모임에 소속된 교사들이 가족과 함께 폐교를 활용한 캠핑장에 모여 시간을 보냈다. 작은 운동회를 연 이후, 처음 본 아이들끼리도 금세 친해져 자유롭게 어울렸다. 사진 속 모습은 너무나도 즐거워 보였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아이들이 자유롭게 어울려 노는 모습을 최근에 언제 본 적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사교육 30조 원 시대. 놀이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이제는 ‘놀이다운 놀이’조차 사라지고 있다.
# 위 글은 실천교육교사모임 홈페이지의 실천아레나를 요약 및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