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사이야기] 무기력 교사의 탄생

  • 등록 2025.03.11 16: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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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그랬다. 일단 남중이었고, 그래서 어둡고 칙칙했다. 건물이 길게 일자형이었던 이 학교는 정확히 절반은 중학교, 절반은 상고였다. 그러니까 복도의 한쪽 선을 넘으면 거기부턴 고등학교(그것도 소문이 안 좋았던)가 되는 거였다.

 

교문을 들어서면 그 앞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덩치 큰 고등학교 선도부들이었다. 다행히도, 고딩들이 우리를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화장실은 전교에 달랑 한 개, 그것도 건물 밖에 있었고 소변기는 철판형이어서 오픈된 채로 볼일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철판에 물은, 나오지도 않았다.

 

# 그 중학교는 그랬다. 선생들이 모두 깡패였다. 어찌나 애들을 패던지, 나 같은 모범생도(부끄럽지만, 난 모범생이었다) 허벅지에 피멍 들기가 일상이었다. 손바닥,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발바닥 등 안 맞아본 곳이 없다.

 

싸대기? 물론 그것 또한 일상이었지. 미술 준비물 안 가져왔다고 우리는 각자의 뺨을 그들이 때리시기에 좋게 각 자리에서 비스듬히 기울여야 했고 몇 초 후 찰진 찰싹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악 선생은 떠든다고 갑자기 일렬로 쭉 서라고 하면서 도미노 블럭을 엎어뜨리듯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다다다 싸대기를 날렸다.

 

두발 검사는 수시로 이루어졌고 머리 긴 애들은 그 자리에서 바리깡으로 고속도로가 났다. 또한, 장난치다가 걸린 애들은 앞에 나와서 남선생들의 노리개가 됐다. 고추는 그들의 손에 쥐어졌고, 온갖 추잡한 음담패설들이 허공에 하얗게 뿌려졌다.

 

# 그 중학교는 또한 그랬다. 애들도 모두 깡패였다. 1학년 처음, 어디초 짱과 저기초 삼짱이 하필 우리 반이었다. 그 짱들은 기분이 안 좋으면 별일 아닌 일에도 애들을 때렸다. 온갖 주먹이 날아다녔고 그 주먹 앞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기초 삼짱이 교실 한구석에서 한 아이를 20분 정도 계속 때리고 있는데도 우린 그 일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아니, 둘 수 없었다. 어디초 짱은 같은 반이었던(지능이 떨어졌던, 지금으로 말하면 지적장애였던) 한 아이를 앞에 세워놓고 웃겨보라고 했다. 재미가 없거나 맘에 안 들면 빗자루로 그 아이의 손바닥을 때렸고 그 짓은 며칠간 이어졌다.

 

내가 그 폭력에서 다소 비켜 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공부를 꽤 잘했기 때문이다.(얘기하지 않았나. 나 모범생이었다고. 안다, 나 좀 재수없다.) 그들은 여튼, 공부 잘하는 애들은 크게 건드리지 않았다.

 

#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고 내 중학교가 생각나서 끄적여 봤다. 마지막 권상우의 대사 마냥 대한민국 학교는 참, X같았다.

 


체벌 교사의 탄생


나는 1990년대 중후반에 중학교를 다닌, 거의 30년 전 이야기긴 하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일반적인 분위기가 이랬던 건 아니었다. 내가 다닌 학교가 좀 많이 심한 편이긴 했다. 이즈음이 체벌 금지 얘기가 슬슬 나오던 시기다. 여튼 당시까지는 체벌이 허용되던 시기였다.

 

군사독재정권이었던 70, 80년대는 오죽했겠는가. 기나긴 군사독재의 포악함은 학교에도 그대로 이식되었다. 학교도 군대와 다름없었다. 오와 열을 맞추어 운동장에 흐트러짐 없이 서 있는 모습은 전열을 갖춘 군인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학교에는 ‘교련’이라는 이름의 군사학 수업이 별도로 있지 않았었던가.

 

군대 문화는 학교를 야만으로 만들었다.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 폭력에 가장 앞장선 사람들은 어쩌면 교사들이었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를 보면, 시계를 풀고 손목 한 번 어루만진 후 최고 속도의 스매시로 싸대기를 날리는 교사의 모습이 강렬하게 나온다. 그 시절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아무런 이물감 없이 그 장면을 보았다. 그 장면을 보고 과장됐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그만큼 그런 모습은 실제로 그 시대에 흔한 것이었다.

 

그 시절 ‘시스템’과 ‘제도’는 없었다. 명목상으로는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아무 작동도 하지 않았다. 사적 폭력만이 난무할 뿐이었다. 직접 때리고 밟으면서 학생들을 통제했다. 덕분에 통제는 잘 되었다. 감히 교사에게 학생이 덤빌 일은 없었다. 교사들은 굳이 때리지 않고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을 찾지 않았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고 이미 익숙해져 편하니까.

 

나는 아무리 지금의 교사가 설사 어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시절 교사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폭력을 아무렇게나 써 왔고 그에 대해 진지한 반성도 없었던 그 시절 교사들에 나는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그 시절은 모두가 그랬기에 용인되어야 하는 걸까? 물론 체벌을 하지 않으면서 교사 생활을 하던 분도 있을 테고, 또 체벌했을지언정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분이 있을 거라는 걸 굳이 부정하지는 않겠다.

 

게다가 나는 이게 용서받지 못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폭력에 일조했던 과거에 대해 그 시절 교사들은 용서를 구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목소리를 나는 당최 들을 수 없었다.

 


체벌 금지의 탄생


문제는, 군사독재 정권이 종말을 고하고 민주화의 흐름 속에 ‘체벌 금지’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들려오자 발생한다.

 

90년대 중후반부터 ‘체벌 금지’가 본격적으로 들려오지만 여전히 체벌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학교 내 체벌은, 많지는 않지만 이곳저곳에서 이루어진 걸로 안다. 2010년까지도 서울 동작구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가 남학생을 심하게 폭행하는 일명 ‘오장풍 교사 사건’이 일어나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폭행’이 일상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떠 그즈음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의 흐름과 맞물려 이미 사실상 체벌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초등의 경우긴 하지만 2007년 내가 처음 기간제 교사로 교단에 섰을 때에도 선생님들이 체벌한다는 얘기를 흔하게 듣지는 못했고 임용고시 장수 도전 끝에 첫 발령을 받았던 2013년에는 더더욱 체벌한다는 교사 이야기는 주변에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참고로 공식적으로는 2011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직접적 체벌은 허용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궤를 같이 해 ‘교사의 권위’는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법천지 교실의 탄생


나는 바로 이 시기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체벌이 사라지는 바로 이 과도기적 시기 말이다. 체벌의 옳고 그름을 따지진 않겠다. 중요한 건 그동안 교사가 학생들의 문제행동을 바로 잡고 훈육하는 방법은 ‘시스템’이 아니라 ‘체벌’이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체벌’을 통해 학생들을 통제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체벌이 사라졌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맞다. 학생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교사가 학생에게 맞는 사건들마저 심심찮게 나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교권 추락’ 사태가 시작된 것이다.

 

교실에서 수업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자는 학생들이 대다수가 된 상황은 이미 오래전이다. 자는 학생을 깨웠다가 봉변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게다가 2010년대 어느 무렵부터 ‘아동학대처벌법’의 제정과 맞물려 교사들은 ‘아동학대’의 위협에 시달린다. 사실상 체벌이라고 할 수도 없는, 약간의 신체접촉, 예컨대 싸우는 두 학생을 말리려 떼어놓는 과정에서 생겨난 교사의 신체접촉에도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경우마저 생기기 시작한다.

 

그뿐만일까. 말하려면 끝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체벌이 사라지면서 교실이 ‘무법천지가 될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체벌’을 부활시키자는 것이냐? 혹은 ‘체벌’을 없앤 게 잘못됐다는 것이냐? 물론 절대 아니다. ‘역시 애들은 맞아야 해’류의 인터넷 댓글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지지를 받는 상황 속에서도 과거로 돌아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체벌’이 없어진 것 자체는 나는, 우리 교육이 한 단계 나아간 측면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체벌이 없어진 그 빈 공간을 메꿀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누구도 그 빈 공간을 제대로 채워놓지 않았다는 게 큰 문제다.

 

그럼 그 빈 공간은 누가 채워놓았어야 할까? 당연히 교육부를 위시한 교육당국이다. 교육제도를 바꾸고 만들 힘을 가진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체벌을 없애는 과정과 동시에 현실적으로 적용할 만한 훈육 제도를 치열하게 고민해 만들었어야 했다.

 

교사들은 아무 책임이 없을까? 책임이 아예 없을 순 없다. 교사들도 함께 대안을 만들고 제안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사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저 한쪽은 학생인권을 만들고 지키는 것에만 혈안이 돼 있었고, 또 다른 한쪽은 그리운 옛 시절을 생각하며 체벌을 다시 부활시키는 것에만 몰두했다.

 

그 사이 어딘가 있을 현실적이고 깊이 있는 대안을 치열하게 생각하는 이가 교사도, 교육 관료도, 아무도 없었다.

 


무기력 교사의 탄생


결과는? 지금과 같은 무법, 무질서 교실의 탄생이다. 무질서를 최소한의 질서 있는 교실로 만들려는 교사의 행동은 ‘아동학대’ 고소의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교사에게는 아무 힘이 없다. 아무 힘이 없는 교사는 교육을 할 수가 없다. 교육을 할 수 없는 교사는 무기력하다.

 

“이제 학교에는 더 이상 진짜 ‘선생’이 없다”는, 아는 이의 말이 가슴에 아프게 꽂힌다. 문제행동이 있는 아이가 있어도 그것을 교육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교사들을 향해 한 말이다. 그러나 교사들이 그렇게 아무 것도 하려 하지 않고 무기력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선생질을 조금만 하려고 해도 오히려 아동학대로 몰릴 판이니 누가 무기력해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우리 교사들의 보신주의가 먼저인지 학부모들의 교사들에 대한 불신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일이긴 한다. 적어도 교사에게 아무 책임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과거 교사들은 ‘체벌’에 안주해 왔고, ‘체벌’이 사라진 그 빈 공간을 무엇으로 메꿀지에 대해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한 건 사실이니깐.

 

물론 교사들이 나름의 대안을 내놓았던들, 교육 관료들이 받아 시행했을지는 의문이다. 교육 당국은 2023년 서이초 사건이 있기 전까지 교실 붕괴의 비참한 현실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외면해 왔고, 크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진 않았으니깐. 나는 일차적으로는 그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애꿎게, ‘체벌의 시대’에는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없는, 그리하여 한 번도 아이들을 때린 적도 없는, 그 이후 세대 교사들만 죽어 나가고 있다.

 

# 위 글은 실천교육교사모임 홈페이지의 실천아레나를 요약 및 재구성한 것입니다.

곽노근 경기 문산초 교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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