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일요일 저녁, 거실 끝자락을 붙잡은 노을이 붉게 물들 때면 어김없이 오른쪽 귀에서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려온다. 월요일 출근을 앞둔 교장의 몸이 보내는 정직하고도 잔인한 신호, ‘이명’이다.”
어느 현직 교장의 처절한 고백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직의 꽃이라 불리며 선망의 대상이었던 교장·교감직이 이제는 ‘고난의 가시방석’으로 전락했다.
교육계에서 최근 나온 통계는 이 비극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평교사들의 명예퇴직은 주춤하는 반면, 학교의 중심을 잡아야 할 관리직들의 명예퇴직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개한 최근 6년간(2020~2025) 시도별/학교급별 교장·교감 명예퇴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431명의 교장·교감이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2020년 250명에 비해 72.4% 증가한 수치다.
돌이켜보면,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마련된 이른바 ‘교권 보호 5법’은 평교사들에게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되어줬으나, 역설적으로 그 모든 민원과 법적 책임의 화살은 학교장이라는 최종 책임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권한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데, 책임의 무게는 태산처럼 커진 상황에서, “누가 이 험난한 자리를 지키려 하겠는가”라는 현장의 의혹과 절규는 더 이상 엄살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과거의 교장이 교육적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였다면, 지금의 교장은 악성 민원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민원 담당자’이자 법적 분쟁의 ‘최전방 방패’라 할 수 있다.
서이초 사건 이후 학부모의 직접적인 접촉은 줄었으나, 학교장에게 쏟아지는 정보공개 청구와 고소·고발은 오히려 폭증했다. 실제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학교 현장의 관리직 10명 중 8명이 “과거보다 심리적 압박감이 심각하게 커졌다”고 답했다.
특히 교사들이 생활지도와 보직 교사 임용을 기피하면서, 학교 운영의 모든 실무적 공백을 관리직이 ‘몰빵’으로 때워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우리가 겪는 교육 리더십의 위기를 앞서 경험한 선진국들은 이미 관리직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분리하고 파격적인 처우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한 내용을 압축한 다음의 표를 보자.
미국의 경우, 학교에서 발생하는 법적 분쟁은 개별 학교장이 아닌 교육청 단위의 법무 전담팀이 전면에 나선다. 학교장은 오직 교육적 결정에만 집중하도록 제도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고통을 학교장 한 사람의 ‘버텨내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도 관리직의 사기 진작을 위한 획기적인 다음과 같은 3대 방책이 필요하다.
첫째, 학교장 법률 지원 및 민원 면책권의 실질화다. 교장이 교육적 판단에 근거하여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한’ 민형사상 책임을 완전히 면제하는 강력한 보호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교육청 단위의 ‘상시 법률 대응팀’이 학교장을 대신해 소송을 전담하고, 악성 민원인에 대한 대응 주체를 학교가 아닌 교육청으로 격상시켜 학교장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둘째, 관리업무 수당 현실화 및 ‘리더십 안식년’의 도입이다. 직무의 난이도와 책임 수준에 걸맞은 ‘관리업무 수당’의 획기적 인상이 필요하다.
격무에 시달리는 교장, 교감직을 위해 5년 주기의 ‘리더십 충전 안식월’이나 연구년을 도입하여, 소진된 에너지를 회복하고 새로운 교육 비전을 수립할 수 있는 시간적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학교 행정 업무의 완전 분리와 리더십 권위 회복이 필요하다. 학교장은 행정 실무자가 아닌 ‘교육 전문가’여야 한다.
단순 행정 업무와 시설 관리는 별도의 행정 전담 기구로 이관하고, 학교장은 오직 교실 수업 지원과 학생 생활지도 방향 설정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리더가 리더답게 대접받을 때, 교직 사회 전체의 사기가 살아날 것이다.
학교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평교사가 잎사귀라면 관리직은 그 잎사귀들이 마음껏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줄기이자 뿌리라 할 수 있다. 지금처럼 뿌리가 썩고 줄기가 꺾이는 상황을 방치한다면, 대한민국의 교육이라는 숲은 순식간에 황폐해질 것이다.
관리직에 대한 명예를 회복시키고 사기를 북돋우는 일은 특권층에 대한 혜택이 아니다. 그것은 학교라는 공동체를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비어가는 교장실에 다시금 교육의 열정이 가득 차고, 유능한 교사들이 당당하게 리더를 꿈꿀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 정부와 교육 당국이 지금 당장 결단해야 할 교육혁신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죽을 맛인 관리직이 아닌, ‘자부심에 사는 관리직’이 많아질 때 우리 아이들의 교실도 비로소 평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