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올해 고1 대상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에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새 정부도 이 같은 문제의 인식 속에 몇몇 대책을 내놨지만, 이 또한 논란에 빠지면서 가야 할 길이 험난한 상황이다. 국회는 국정감사를 맞아 고교학점제에 대한 집중 검증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이에 <더에듀>는 교사노맹 소속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교학점제가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살피면서 교사들의 주장을 확인하고자 한다. |

아이들은 여전히 교실에 있지만, 교실은 더 이상 아이들의 공간이 아니다. 그래서, ‘좋은 취지’라는 이름 아래 무너져가는 학교의 현실을 이야기하려 한다.
친구가 사라진 교실
“요즘 애들은 친구 잘 안 사귀어요. 2학년부터는 선택과목이라 계속 돌아다녀야 해서 학급 개념이 없어요. 반 친구라는 말이 무의미해졌어요. 친구가 경쟁자일 뿐이에요”
“애들이 진짜 불쌍해요!, 특히 고1들은 실험실에 쥐에요”
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고교학점제, 취지가 좋잖아요.”
교육부나 학계 관계자, 제도 설계자들은 늘 이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취지가 좋으면 계속 밀어붙여야 하나?’ 고교학점제로 인해 갖가지 문제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말이다.
고교학점제는 8년의 준비기간을 거쳤으나, 여전히 준비되지 못한 채 학교 현장에 던져졌다. 좋은 제도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로 작동한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내 몸에 맞지 않으면 불편하다. 고교학점제는 바로 그런 옷이다. 외국에서 실행한다고 한국 교실에 반영했지만, 우리는 체형도, 체질도 다르다. 입어 보니 숨이 막힌다. 옷에 몸을 맞출 수는 없다. 이럴 땐 과감하게 옷을 벗어야 한다.
교실 현장의 혼란과 ‘취지’만 외치는 교육부
교실에서는 지금, 제도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매일 같이 충돌하고 있다. 아래는 그 혼란의 한가운데 있는 학교 현장의 이야기다.
1. 작년 8월, 교육부 담당자를 만났다.
“현행 학교에서 최소성취수준보장 지도(이하 최성보)가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교육적 의미는 없고, 행정을 위한 행정이에요. 다른 방법,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랬더니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맞게 학교와 교과교사가 최성보 학생들의 책임지도를 책임져야 합니다. 현장이 어려울 순 있지만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에게 학교는 그냥 문서 속 제도였을 뿐이고, 우리에겐 매일 얼굴 맞대는 아이들의 현실이었다.
2. 올해 3월, 출결대란이 터졌다.
미이수제가 도입되면서 출결 방식이 바뀌었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는데 교육부는 사전 안내도 없이 학기 중에 준비도 안 된 지침을 내려보냈다. 지침 이후로 학교는 한 학기 동안 출결만 하다 끝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혼란이 몰아닥쳤다.
교사들은 출결 하나 처리하려고 하루에도 수십 번 클릭해야 했다.
교육부를 만나 “현장에 맞지 않습니다. 비효율적입니다. 대학과 같이 전자 출결 시스템을 만들어 주세요. 그게 당장 어렵다면 최소한 기존처럼이라도 돌려주세요”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역시나,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맞게 출결은 지침대로 교과교사가 해야 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도대체 언제까지 ‘취지’ 타령만 할 것인가.
3. 올여름. 학교 현장은 강렬히 저항했고, 교원 3단체가 더 이상 이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다며 ‘고교학점제 폐지’로 들고 일어섰다.
교육부는 자문단을 꾸려 권고안 중심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교사단체는 학생 낙인 이탈시키는 가짜 교육인 미이수 제도 폐지와 학생 경쟁 완화를 위한 선택과목 절대평가를 주장했고, 자문단도 개선안을 내왔다.
그런데 개선안은, 9월 말 2학기가 한참 지난 뒤에야 발표됐다. 또 뒷북이었고, 결과는 뻔했다. 현장은 더 혼란스러워졌고,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교육부는 핵심 과제는 다 피해갔다. 심폐소생술도 늦었다. 최소한 고교학점제를 하려 했다면 교사 정원은 줄이지 말았어야 했다.
진짜 책임교육을 하려면 고등학교가 아닌 초·중학교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진로와 적성에 따른 선택을 보장하려면 절대평가로 전환했어야 했다. 지금처럼 고교학점제와 따로 노는 대입제도의 개선부터 추진했어야 했다.
교육부 역시 답이 없는 것이다. 우리 상황에 맞지 않는 제도를 가져오다 보니 핵심에는 다가가지도 못하고 변죽만 늘어놓고 있다. 핸들링할 여력조차 없어 보인다.
교육부는 ‘학점이수제’ 개편 책임을 국가교육위원회에 넘겼으나, 평가제도의 전환이나 정합성 있는 대입제도에 대한 논의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교육부 장관은 “고교학점제는 인재를 키우는 필수 제도”라고 한다.
그러나 인재를 키우기 전에 사람부터 지켜야 하지 않나. 우리 아이들이 경쟁에 무너지고 있다. 교사들이 외쳐온 것은 교사의 업무 경감이 아니라 학생들의 고통과 공동체 붕괴에 대한 절규였다.

공동체를 잃은 학교
고교학점제의 가장 큰 패착은 ‘공동체의 붕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설계이다.
내년도 반편성을 앞두고 학교는 지금 대혼란이다. 학생들은 매 시간 다른 교실을 옮겨 다니며 ‘반’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선생님들이 같은 반 친구들끼리 같이 듣는 수업이 있도록 반 편성에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학기 단위 과목 선택으로 인해 이는 더 어려워졌고, 반 친구 그리고 담임선생님과는 조·종례 때나 만나게 되는 상황에 선생님들은 우려가 크다. 교사들은 ‘학급 공동체 중심의 학교문화가 주는 장점들을 혁신이라는 이름하에 다 포기해야 하느냐’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교육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일이다. 학급은 행정 단위가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 배우고, 존중하며, 성장하는 삶의 장이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는 설계부터 실패했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아이들은 혹사당하고 있다. 교육부가 못한다면, 이제는 이재명 정부가 나서야 한다. 취지가 좋다는 말로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모여 앉아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