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우리는 너무 빨리 결과를 원한다. 말을 배우면 금세 대화를 원하고, 글씨를 익히면 곧바로 글짓기를 기대한다. 훈육을 하면 다음 날부터 아이가 변하길 바란다. 하지만 교육은 기다림이다. 성장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아이들은 빠르게 자란다. 키가 크고, 말이 늘고, 손재주가 좋아진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마음은 느리게 자란다. 느리게 배우고, 천천히 받아들이며, 때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익힌다. 그런 아이에게 “왜 또 그랬니?”, “말했잖아”라는 말은 성장을 재촉하는 채찍이자, 아직 다치지 않은 마음에 찍히는 낙인이 된다. 교육이란 그 반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말해주는 일, 그 순간을 함께 견디는 일이다. 좋은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말을 아끼고, 판단을 유보하고, 아이가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는 사람. 그 기다림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그건 깨어 있는 침묵, 말 대신 마음으로 지켜보는 적극적인 인내다. 아이들은 아직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지금의 부족함이 평생을 결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어리광이 많아도 언젠가는 책임질 줄 알게 되고, 지금은 거칠어 보여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다정히 안을 줄
더에듀 | 교육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성장 자산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교육의 목적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있어 학생들의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며, 함께 활용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소통 교육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독자의 관점에서 교육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교육의 방향에 대한 이해와 토론을 이끌어 내는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기 위해 교육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최근 충청권 국·공립 초등학교의 명예퇴직 교사 급증 소식은 단순한 통계 수치를 넘어, 우리 사회가 간과해 온 교육의 본질과 교사의 위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섬뜩한 경고음이다. 정년이 보장된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교단을 지탱해야 할 ‘허리’라고 불리는 중견 교사들이 짐을 내려놓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교직 사회의 환경이 이들의 사명감마저 소진시키고 있음을 방증한다. 2020년 161명에서 5년 만에 288명으로, 전국적으로는 이미 3천명을 넘어선 이들의 퇴직 행렬은, 우리 사회가 지식 전달자를 넘어선 ‘인격의 스승’을 잃어가는 비극적 현상이다. ‘지식 전달자’의 덫: 교사의 가치가 박제되다 교사라는 직업의 본질은 교과서를 펼치는 행위를 훨씬
더에듀 | 인문학적 감수성이 타 분야에 비해 다소 풍부한 필자는 소위 기계치에 가깝다. 스스로 노력하는 자세도 부족하지만, 기계 앞에서는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든다. 1990년대 컴퓨터가 점차 확산되어 가던 시절, 필자는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작성한 연구보고서를 제대로 저장하지 않아 거의 날려버린 적이 있었다. 통곡에 가까운 울부짖음 속에서 어리석음을 질책했지만, 당시 컴맹으로서는 의욕만 앞섰지 제대로 기본을 익히지 않고 독수리타법으로 힘들게 작성한 결과물의 상실에만 크게 연연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컴퓨터 문서 작업에 대한 관심과 배움을 통해 그리고 사라진 보고서를 상기하며 재작성한 것이 그해 지역 연구대회에서 1등급을 받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전화위복’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소중한 것을 잃은 것이 자극제가 되어 연구대회에서 의외의 성과를 얻으며 한 가지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바로 잃음과 얻음은 성장과의 긴밀한 함수(函數)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꿈, 사람, 기회, 시간과 같이 무언가를 잃는다. 그리고 상실을 삶의 실패로 단정 짓는다. 그러나 세상사에서 잃음과 얻음
더에듀 | 격동의 코로나19 시기를 지나 2025년, 교육은 새로운 변곡점 앞에 서 있다. 팬데믹의 혼란은 잠잠해지고 일상 회복이 된지 오래이지만, 이제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혁신 등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교육 현장을 흔들고 있다. 교실에서는 교육의 변화를 모색하며 학생 중심의 다양한 활동이 시도되며 새로운 가능성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즐거움과 몰입이 단순한 ‘경험’에 머물지 않고 ‘앎의 의미와 가치’를 깊이 ‘성찰’하고 ‘성장’하는 기회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교육의 위기는 단순히 기술적 변화나 활동 방식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교권 침해와 교사의 사기 저하, 학급이나 가정 중심의 좁은 이해에 매몰된 의사결정은 교육 본연의 목적을 약화하며, 학습 중심으로 치우친 교육은 학생이 세계와 공동체 속에서 성장하고 시민으로서 책임 있는 존재로 서는 과정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와 공감이다. 사회정서학습(SEL)의 선구자인 제임스 코머(James Comer)는 “의미 있는 학습은 의미 있는 관계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하며, 좋은 관계 없이 좋은 가르침도 존재할 수 없음
더에듀 |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국제교사교직원조사(TALIS) 예비 결과에 따르면, 한국 교사 중 25.9%가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OECD 평균(13.3%)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교육계는 이 통계를 놓고 충격을 넘어 위기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대다수 교사는 ‘교사로서 자긍심을 느낀다’고도 답했다. 아이들과의 관계, 수업을 통한 보람, 교육자로서의 사명감 등은 여전히 교사들을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처럼 ‘후회’와 ‘자긍심’은 극단의 대립이 아니라, 오늘날 교사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현실이다. 대한민국 교직은 지금 이 두 감정 사이에서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문제는, 이 균형이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교사의 후회,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교사 된 것에 대한 후회’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학부모 민원, 생활지도 무력화, 과중한 행정업무, 낮은 사회적 존중 등 교직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들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2023년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은 사회적 충격을 불러왔고, 교권 회복에 대한 범국가적 요구를 이끌어 냈다. 이후에도 유사한 사례들
더에듀 | 송미나 한국교육정책연구소 소장은 학교는 법인격이 없는 교육시설의 명칭에 불과하다는 대법원 판례 등을 기반으로 ‘학교’는 행정기관과 다른, 교육청 산하의 ‘교육기관’이라는 반론이 제시하였습니다.(관련 기사 : https://www.te.co.kr/news/article.html?no=27098) “교육은 행정행위가 아니므로, ‘민원인이 행정기관에 대하여 처분 등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행위’인 민원은 교원이 처리할 업무가 아니다. 학교는 행정기관이 아니고, 교육은 행정행위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저와 많이 다릅니다. 저는 ‘교육’이란 ‘행정’이라는 기본 위에 추가되는, ‘교원만이 할 수 있는 고유행정’이라고 주장하며 반론 근거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판례는 공립학교의 장을 행정처분권과 법적 책임을 지는 기관장으로 본다! 송미나 소장은 학교가 행정기관이 아니고, 교장이 기관장이 아니라는 근거로 대법원 2016마5908(2019.3.25.)을 인용하지만, 학교가 민사소송의 당사자 능력이 없다는 이 판결은 외국인학교의 임시이사 선임에 대한 부분으로 ‘교육’과는 그 결이 다르며, ‘교장’이 기관장인지, ‘학교’가 행정기관인지를 판단하는 근거로는 부적절합니다.
더에듀 | 한국의 과학 분야 노벨상은 현재 아쉽게도 0명에 그치고 있다. 반면, 우리와 자주 비교되어온 이웃나라 일본은 무려 25명이나 된다. 다른 분야까지 합해 30명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케 한다. 근대교육 제도를 도입한 시기를 보면, 한국은 1895년 ‘교육입국조서’, 일본은 1872년 ‘학제령’을 발표한 때부터 시작된다. 한국이 22년 늦었다. 대신 한국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의 성격을 보였고, 일본은 자율적 근대화의 성격을 띠었다. 한국은 또한 해방 후 미군정 및 독재를 거치면서 안정적인 교육환경을 구축하지 못했다. 이런 요인들이 오늘날 한국의 교육과 연구의 환경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그동안 노벨상 수상을 위한 노력이 없지 않았다. 자료에 따르면, 2002년 과학기술부가 비공식적이지만 일본의 RIKEN(이화학연구소)를 본 따 장기적으로 기초연구를 지원하려 했으며, 2011년에 과학기술부 내 ‘기초과학연구원’을 설치했다. 그러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잠시 K-한류와 노벨상을 비교해 본다. K-한류가 의미하는 것은? 노벨상을 K-한류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K-한류는 일단 공교육이라는 제도권 밖
더에듀 | 교육자로 24년의 세월을 보내며 학생, 동료 교사와 많은 일을 함께 했다. 과학 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이다.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홍제남의 진짜교육’을 시작한다. 더에듀 | 추석 연휴인 지난 4일 또 한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 소식이 전해졌다. 충남의 어느 중학교 교사였던 고인(41세)은 학교에서 하루에 1만보를 뛰어다녔다고 한다. 이유는 방송과 정보 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원이 많은 학급의 임시담임까지 맡고 있었다니 숨진 선생님의 학교생활이 어떠했을지 그려진다. 평소 숨가쁜 업무과중을 호소하였다니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다. 교사와 교원단체들은 그간 계속 목소리를 내왔다. 교사들이 본연의 임무인 교육활동에 충실할 수 있는 업무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극히 당연한 요구이다. 그러나 교사들의 행정업무는 줄기는커녕 점점 더 많아지고
더에듀 | 매년 10월 9일, 우리는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기리는 국경일로 지정된 ‘한글날’을 맞이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한글날은 1991년에 경제 성장을 내세워 ‘공휴일 조정’이라는 이유로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2012년 대통령령 개정을 통해서 2013년부터 다시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국민 여론의 80% 이상이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한글날은 제579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다시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이 된 것인가? 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한글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특별한 시간을 각기 위해서였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만든 글자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로 창제되어 이제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과학적인 문자로 유네스코에서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 체계를 넘어, 민족의 혼과 얼이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다매체·다언어 환경 속에서 한글의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는 일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교육적으로도 깊은 성찰이 요구되는 과제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말
더에듀 | 본 칼럼은 [박태현의 THE교육] 「이어드림?... 교육부(청) 무능이 만든 학부모와 교원의 갈등 끝판왕 플랫폼」(2025.10.4.)에 대한 반론 칼럼이다. 먼저, 교육공동체의 소통과 학교 현장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문제의식을 제기해 온 박태현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교육현장을 둘러싼 복잡한 갈등 구조 속에서 다양한 시각이 제시되는 것은 건강한 공론장의 징표이자, 더 나은 교육정책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논의의 방향이 정확한 법적 사실과 제도적 근거 위에서 전개될 필요가 있기에, 본 글에서는 몇 가지 법리적·사실적 오해를 바로잡고자 한다. 최근 박태현 상상교육포럼 공동대표는 “학교는 이미 행정기관이며, 민원처리법상 공공기관으로 명시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학교가 지난 10년간 민원처리법을 위반한 상태였다고 단정했다. 또한 학교 내에 민원실과 민원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교원이 민원 응대의 실질적 담당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혔다.(관련기사 : https://www.te.co.kr/news/article.html?no=27082)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법률 체계와 행정법 원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