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2023년 7월 전국교사 1차 집회. 저는 당시 집회 집행부였습니다. 피켓 문구는 ‘교사의 생존권 보장’이었습니다. 서이초 사건으로 인한 충격으로 분노와 슬픔에 목메어 우리는 그저 ‘생존권’을 울부짖었습니다.
교사 집회가 거듭될수록 피켓 문구와 구호는 지금 교육 현장 문제의 핵심과 요구사항을 여실히 드러내 주었습니다.
‘교사 생존권 보장, 교육권 보장, 악성민원인 처벌, 교권보호법 개정...’
교사들의 자발적인 집회 준비는 점차 우리 교육 현장의 문제가 무엇인지 교사들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우리의 정당한 교육활동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과제들을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공교육에서 교사에게 부여하는 직업적 기능과 역할을 고려해 볼 때 ‘교사의 안전한 교육활동 보장’은 당연한 논리이지만, 이 당연한 주장이 실현되지 못하는 학교 교육 현장은 가히 아수라장(阿修羅場)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있었지만 그중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바로 ‘아동복지법 개정’이었습니다.
아동복지법, 무엇이 문제인가
교원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는 악성 민원인들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입니다.1)
1) 학부모의 경우, 자녀에 대한 교원의 언행 또는 태도를 문제 삼아 아동학대 신고를 하거나,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전화·면담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고, 폭언 또는 협박하는 경우가 주요 사례로 파악되었다. 교육부, 「2024학년도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 결과 발표」, 2025. 5. 14. (보도자료).
아동학대 신고가 악용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아동복지법 제17조 5호 정서적 학대’ 조항 때문입니다.
|
◆ 아동복지법 제17조 5호 5.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제1호에 따른 가정폭력에 아동을 노출시키는 행위로 인한 경우를 포함한다) |
정서적 학대 조항은 보이는 것처럼 매우 모호하며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판단 주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의 기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에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떠한 행위가 학대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서적 학대로 아동학대 신고를 하였다면 무고가 성립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입법 취지와는 다르게 아동학대 신고는 교원을 압박하고 괴롭히기 좋은 수단이 된 것입니다.
2023 이후 학교 현실은
22대 국회에 교사 출신 국회의원 2명의 당선과 교권5법 개정으로 교육 환경 개선에 대한 교사들의 기대는 커졌습니다.
교권5법 개정 중 일부 내용을 살펴보면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와 교육활동을 아동학대에서 제외하고, 아동학대 신고 사건 처리 과정에서 지자체장 및 경찰, 검찰 등이 교육감 의견을 참고’하도록 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입니다.
교사가 정당한 지도 중 형사처벌이나 직위해제의 위험에 노출되는 사례를 예방하고, 교육적 판단이 존중되는 법적 절차를 보장하려는 취지입니다.
법 개정으로 교육 현장에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의 조사자료2)에 따르면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판단해 교육감이 의견을 제출한 비율은 69.8%에 이르며, 이 중 85.4%가 경찰 수사 개시 전 종결되거나 검찰에서 불기소 처리되는 등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2) 국회,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7796, 최은석 의원 대표발의, 2025.1.23.).
그러나 아직 아동복지법이 교사의 교육활동을 충분히 보호할 만큼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사는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에 여전히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예컨대, 최근 국회 자료에서도 정당한 교육활동임에도 여전히 검찰로 송치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3)
3) 한겨레. “‘아동학대 아니다’ 교육감 의견 제출에도 교사 72% 송치.” 한겨레, 2025. 1. 2.(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175966.html)
학교 현장을 바꾸기 위한 노력
아직도 교사 집회 때 우리의 외침이 제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아동복지법 개정!”
현재 초등교사노동조합(초등노조)은 아동복지법 정서적 학대 조항에 대하여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
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위반 정서적 학대 조항은 모두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이어서 금지조항과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를 알 수가 없음. 헌법재판소 결정례에서는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으로 보완이 가능하다고 하였으나 판사/검사/변호사 모두 바라보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사실상 헌법이 요구하는 처벌법규의 명확성에 위배되는 조항.
나.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원칙(과잉금지원칙) 위반 신체 및 성적 폭행∙방임 등 유형력이 가해지는 경우에 비해 정서적 학대는 명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이 과함.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닌 행위까지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문제임. 더 나아가, 형사처벌을 받게 될 경우 최대 10년까지 아동관련기간 취업 제한이 되도록 하는 과도함을 내포함. |
올해 초, 초등교사 선생님들의 많은 관심과 초등노조의 지속적인 노력 끝에 아동학대처벌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교육감이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의견을 제출한 사건에 대하여서는 검찰로 송치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즉, ‘교육감의 무혐의 의견서’를 근거로 경찰 단계에서 사건을 종결할 수 있게 되어 기존에 비해 법적 절차가 줄어들 여지가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발의안은 현재 몇 가지 이유로 개정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9월에 검토된 보고서4)에 따르면 1)교육감 의견 제출 사건과 그 외 사건 간의 절차적 형평성에 관한 문제 2)경찰과 검찰의 권한 범위 문제 3)자력구제가 어려운 아동에 대한 사건이기에 검사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 등이 이유로 제기되었습니다.
4)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서」, 의안번호 제2207478호, 백승아 의원 대표발의, 2025. 9.
기회가 돌아왔다
최근 최교진 교육부장관이 검토로 중단되었던 아동학대처벌법 일부개정안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물론 우리의 근본적인 목표는 교사들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범죄로 오인 받지 않도록 아동복지법을 개정하여 교사를 온전히 보호할 수 있는 본질적인 법 개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현재 교육 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교육 현장의 회복을 향한 청신호로 보여집니다.
만일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아동복지법 개정과 더불어 근본적인 교육 현장의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동복지법 개정뿐만 아니라, 이와 수반되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교사의 실질적인 ‘교육활동’ 보호에 있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다시 한번 기회가 왔습니다. 지금의 아동학대 관련 법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하지 못한 채, 오히려 교사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교단을 지키며 아이들과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선생님들이야말로, 그 자체로 존경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선생님들을 마주할 때면 숙연해지고 죄송해지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상황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누군가가 나서서 싸워야 한다면, 그 싸움을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나 체념이 아니라, 지치지 않는 인내와 끈기, 그리고 서로를 믿고 끝까지 버티는 연대의 힘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합니다.
2023년, 우리가 외쳤던 그 목소리가 현실이 될 때까지,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