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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더하기-홍제남] '대통령의 지시'...학교 자치 현실 드러낸 '교복 논쟁' 해결법

진정한 학교 자치의 방향...'스스로 묻고, 결정하고'

 

더에듀 |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교복 구입비가 60만원에 육박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를 계기로 정부 5개 부처가 합동 대응에 나서고 전수조사가 시작되는 등 ‘교복값 논쟁’이 새삼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해 온 교육자로서 이번 논쟁을 바라보며, 대통령의 디테일한 관심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씁쓸한 마음이 크다. 교복 가격의 적정성을 따지는 것을 넘어, 과연 이 문제가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해결해야 할 정도로 교육 현장에 ‘자율성’이 없었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지목한 ‘등골 브레이커’, 왜 지금인가?


현재 국·공립학교는 2015년부터 시행된 ‘교복 학교주관 구매제도’를 통해 학교장이 입찰로 업체를 선정하여 일괄 구매하고 있다. 교육청이 매년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교복 상한가를 설정하는데, 올해 상한가는 34만 4530원으로 동결된 상태이다.

 

그러나 수치상과 달리, 실제 학부모들이 체감하는 비용이 60만 원을 넘나든다. 이유는 교복 상한가에는 정장 형태의 교복만 포함되고, 아이들이 정작 가장 많이 입는 체육복과 생활복은 지원 범위에서 제외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탁 등을 이유로 여벌을 추가 구매하면 비용은 크게 늘어난다.

 

사실 교복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업체 간 담합이나 불공정 행위 역시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 왔다. 그런데 왜 이제야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모든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대책을 쏟아내는 것일까?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 교육 현장의 자율성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단면이다.


학교자율화, 법적 보장이 문제가 아니다


학교가 교복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현실은 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학교규칙의 기재사항 등) 제1항 제7호는 ‘학생 포상, 징계, 징계 외의 지도방법, 두발·복장 등 학생의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을 학교규칙에 반드시 포함하도록 명시하고 있다.1)

 

즉, 교복의 착용 여부나 디자인, 구매 방식은 이미 학교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하여 학칙으로 정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다.

 

실제로 현장에는 규제와 지침 이전에 스스로 길을 찾아낸 학교 자율의 사례들이 존재한다. 필자가 교장으로 재직했던 오류중학교가 대표적 예이다. 오류중학교는 교육 3주체인 학생, 보호자, 교사 간의 치열한 숙의 과정을 거쳐 복장에 대한 의견을 다음과 같이 시행하였다.

 

2019년에 정장 교복은 물론 상의 가디건까지 폐지하고, 대신 학생들이 생활복과 체육복 중 원하는 복장을 자율적으로 선택·착용하고 등교할 수 있도록 했다. 겉옷은 학생들이 계절에 맞게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입도록 했다.

 

또한 춘추복이나 하복 등의 선택 시기를 특정하지 않고 학생들이 자신의 체질에 맞게 복장을 선택해 착용하게 했다. 땀을 많이 흘리는 무더운 한여름에는 일정 기간 상의는 자율 복장을 허용했다.

 

또한 매주 금요일은 자율복 데이(Day)로 운영했다. 금요일은 하교 후에 개인일정이 많을 수 있어서 교복이나 사복 중에 편하게 착용하도록 했다. ‘자율복 데이’로 지정한 또 다른 이유는 학생들이 복장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자율성을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논의 과정에서 교원들은 교복 폐지를 적극적으로 원했다. 교복 착용 문제로 학생들과 비교육적인 불필요한 갈등을 겪는 일이 벌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학부모와 학생들은 반대 의견이 더 많아 완전 폐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매일 아침 무엇을 입을지 고민해야 하는 ‘옷 선택에 대한 부담’과 ‘경제적 격차’가 옷차림으로 드러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교복을 입더라도 예전과 달리 점퍼, 신발, 가방 등에서 학생 간의 차이는 여전히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지만, 학교 공동체가 이러한 고민과 갈등을 스스로 토론하고 합의해 가는 과정은 매우 소중한 교육적 자산이다.

 


진정한 해결책, 지시가 아닌 ‘학교의 자율성’ 기르기


교복 문제는 단순히 옷값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 즉 ‘학교자치’의 문제이다.

 

대통령의 지시로 반짝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학교에는 교복뿐만 아니라 많은 현안이 산재해 있다. 이 모든 문제를 대통령의 관심과 지시에 의존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근본적으로 학교의 교육과정, 행정, 시설 등 다양한 문제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

 

첫째, 실질적인 학교운영위원회의 내실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복 선정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부터 학교의 예산과 시설 운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교 문제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가 요식 행위를 넘어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학교의 주인인 구성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깊이 참여할 때, 비로소 학교는 관성적인 지침에서 벗어나 각 공동체의 특색에 맞는 자율적인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둘째, 교육과정과 연계된 숙의 민주주의 경험이 필요하다.

 

복장 규정을 포함해 학생생활과 학교문화에 대해, 학교 공동체가 합의해 학교규정과 학교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자율복으로의 대체나 교육과정의 자율적 편성처럼 예민한 사안일수록 학생, 보호자, 교사라는 교육 3주체의 더욱 적극적인 숙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은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민주주의 교육이 되며, 학교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치 근력’을 키워줄 것이다.

 

셋째, 자율성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애물과 행정 시스템의 정비가 시급하다.

 

교복의 경우 구매비 지원 방식을 현금이나 바우처로 다양화해 학부모의 선택권을 넓히는 정책적 유연함이 필요하다.

 

또한,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한 사항이나 교육 활동에 대해서 국가가 통제적 행정을 넘어 유연하게 지원하는 행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교육청은 지시와 감독보다는 학교가 자율적으로 정한 로드맵을 잘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

 

교육청의 수장인 교육감은 학교를 통제하고 지시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각 학교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스스로 항해할 수 있도록 바다를 열어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상부의 지침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학교 문화에서 벗어나, 위의 오류중학교의 교복 사례처럼 현장의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자치 역량’을 존중하는 것이 교육 행정의 본질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자율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학교 자치가 법적 권리로 정착될 수 있도록 행정적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번 교복 논쟁의 끝이 대통령의 지시나 교육청의 강제적인 가이드라인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우리 학교 공동체가 “우리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배우고 싶은가”를 스스로 묻고 결정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진정한 교육 자치는 시작될 것이다.

 

1)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학교규칙의 기재사항 등) 시행 2024. 10. 8. 대통령령 제 34929호(2024. 10. 8. 일부개정. 교육부(학교교수학습혁신과))

 

# <더에듀>는 교육감 선거 출마자들의 칼럼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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