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정은수 객원기자 | 2025년도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을 앞두고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에듀>는 우리보다 앞서 고교학점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우리가 걱정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기 위해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고교 학점제 현장 사례를 소개한다. |
고교학점제의 취지의 한 축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 다른 축은 최소 성취수준을 보장하는 지도를 하겠다는 것이다. 고교학점제 홈페이지에서도 '목표한 성취 수준에 도달했을 때 과목을 이수하는 제도'로 '배움의 질이 보장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의 핵심 '평가와 학습의 변화'
교육부는 이를 위해 성취평가제를 장기간에 걸쳐 도입했다. 성취평가제는 2011년에 중학교부터 도입이 시작됐다. 당시에는 이를 단순한 절대평가로 봐 현장에서는 그 의도를 오해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교육 정책의 흐름을 아는 사람들은 고교학점제 준비를 위한 절차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고교학점제는 어떤 특정 정권의 가치관에 따라 단기간에 졸속으로 추진한 제도가 아니라 본격적인 작업만 거의 15년간, 4개 정권에 걸쳐 도입되고 있는 제도다. 교육부의 2009년 ‘고등학교 선진화를 위한 입학제도 및 체제 개편 방안’에도 이미 학점제, 최소 성취수준, 고교 졸업요건 등 현재 고교학점제의 골자가 언급된다.
이에 앞선 연구와 논의까지 한다면 더 역사가 길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과목 선이수제 같은 제도는 2005년에 도입됐는데, 이 역시 북미 학점제 AP과정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준비를 많이 했다 한들,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면 공염불이다. 고교학점제에 대해 최근에는 다양한 선택과목 운영보다도 최소 성취수준 보장에 대한 우려가 많이 제기되고 있다.
입시에 매몰되고 기계적 공정에 목숨을 거는 우리나라 고교 교육의 현실상 제대로 된 성취평가제를 운영할 수 있을지, 성취기준 미도달 학생의 보충 지도가 교사들에게 주는 부담이 너무 크지 않을지 등이다.
독립성이 보장된 교사의 평가권
성취기준에 따른 평가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성취 수준 보장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온타리오주의 현장 모습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고교에서 평가는 입시와 연계되기 때문에, 입시에 대한 사회적 태도가 다른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은 따로 다룰 예정이니 잠시 미뤄두고 살펴보자.
고교학점제와 성취수준 보장에 대한 논의에서 종종 나오는 얘기가 있다.
“학생의 진로가 달려 있고 학부모의 성화를 못 이기는데 어느 교사가 성취 미달이라고 F를 줄 수 있겠는가?”
온타리오주 고교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평가는 오롯이 교사의 몫이다. 관리자나 교과협의회도 참견하지 않는다. 물론 부서 내 평가도구나 방법에 대한 비공식적인 논의는 하지만 하나하나 기준을 같이 정하거나 협의할 필요는 없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학부모 또는 학생이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문제가 있다고 여기면 관리자가 평가 근거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 제시할 수 있는 근거자료만 충분하다면 교사의 전문적인 판단은 존중된다.
지필고사나 객관식 시험이 아닌 수행평가로 총괄평가를 하더라도 평가 루브릭이 교육과정에 부합하고 각 영역별 성취수준에 대한 평가가 적절하다면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특이한 점은 고교 총괄평가 성적의 경우 백분위 점수로 표시하는데, 수행평가로 평가하는 경우 이를 1점씩 촘촘히 나누지 않고, 그냥 성취수준 1~4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성취수준에 배당된 백분위 점수를 기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루브릭의 4개 영역에서 성취수준 4, 3, 3+, 3+를 맞은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의 총괄평가 성적은 3+가 되고 표기할 때는 3+에 해당하는 교육청 권고수준인 78점을 주면 된다.
다른 학생이 같은 3+라면 이보다 좀 더 잘했다고 79점을 주거나, 좀 더 못했다고 77점을 줘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F를 받으면 그건 자기 책임이지
원칙적으로 그렇다고 해도, F를 주는 데 대한 부담은 없을까? 부담은 없다. 기자도 실습할 때 지도교사가 F를 주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심지어, 한 교사가 F를 주지 않기 위해 학생의 과제물 제출을 독려하는 연락을 여러 차례 학부모에게 하는 것을 보고 부장 교사가 “뭐 하러 그래? 자기가 안 하면 자기 책임이지”라고 하는 모습도 봤다.
과제물 제출 기한을 넘기면 기본적인 공지는 하지만, 여러 차례 반복된다고 계속 독려해서 어떻게든 제출하도록 만드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는 얘기다. 수업 참여든 과제물 제출이든 고교생이면 자기 행동에 자기가 책임지도록 한다는 것이 이곳 학교의 분위기다.
또 다른 예시로 중학교 보결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이 수업 중 학습지를 풀지 않아서 담임에게 보고했더니, “전 안 하는 애들까지 하게는 못해요. 안 하면 자기 손해죠”라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다만, 단순히 공부를 못했다고 F를 주는 일은 사실상 없다. 일단 하기만 한다면 최소 D-, 혹은 온타리오식 성취수준으로는 ‘1-‘를 받기는 한다. 매우 제한된 수준에서 뭐라도 이해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D-를 받으면 학점은 이수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그렇게 학점을 채운 것만으로는 졸업장을 받지 못한다. 온타리오 중등 문해시험 성적을 70% 이상 맞아야 한다.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재시험을 보거나 고교 수료에 만족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D로는 진학도 어렵다. 각 학과에서 요구하는 영역별 이수 학점과 점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를 열심히 하는 교사는 학생들의 진로 목표에 따라 필요한 수준의 결과물을 낼 때까지 기회를 주기도 한다. 같은 기간 내 달성하는 기계적 공정성보다는 결과적으로 어떻게든 배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교육과정 운영이 자유로워야 평가도 자유롭다"
평가의 전문성이 존중된다고 하더라도 교육과정 운영이 자유롭지 않다면 평가가 자유롭기 어렵다. 평가는 교육과정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같으면 교육과정이 입시 범위가 되고, 학부모들은 교과서에 있는 걸 가르쳤니 안 가르쳤니 따지기 시작하면, 평가에서도 어떤 부분이 빠졌니 어떤 부분이 교육과정 밖이니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온타리오주에서 이런 논란은 없다. 교육과정 자체가 매우 느슨한 데다 교과서를 학교에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인정도서가 있고 우리의 EBS와 유사한 TVO Learn에서 전 교육과정에 걸쳐 온라인 수업을 제공하고 있지만, 일부 교사가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정도고 대부분 교사들은 자신만의 내용으로 수업한다.
교육과정이 어느 정도로 느슨하냐면, 각국 이민자들의 모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언어별로 교육청에 따라 많으면 수십 개 개설돼 있지만, 교육과정은 ‘국제 언어’ 단 하나다. 언어별 교육과정이 따로 없다.
심지어 그 단 하나의 교육과정도 한 과정에 표지까지 12페이지밖에 안 된다. 각각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영역에 2~3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수많은 언어의 수업을 교사들은 이 12페이지를 기반으로만 두면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국제 언어가 조금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기자가 한 학기를 가르쳤던 캐나다 현대사를 살펴보자. 대단원이 4개인데, 첫째가 건조하게 1914~1929년이다.
이 대단원의 성취기준은 세 가지인데, 첫째가 이 시기에 '핵심 사회, 경제, 정치적 사건, 흐름, 발전을 기술할 수 있고,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평가할 수 있다' 정도다.
그에 따른 세부 성취기준은 4가지인데, 첫째가 '이 기간 내 캐나다의 핵심 사회발전을 몇 가지 기술하고 캐나다 내 원주민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끼친 그 영향을 평가할 수 있다'이다. 이게 끝이다. 가장 상세하고 구체적인 성취 기준이 이 정도로 포괄적이다.
여기에 사회발전의 예시가 5가지, 발문 예시가 3가지 포함돼 있지만 이는 반드시 따를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예시다. 교육청도 관리자도 학부모도 이 예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문제 삼는 경우는 없다.
이렇게 느슨한 교육과정은 평가를 자유롭게 할 뿐 아니라, 300여 개의 과정만으로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학생들의 수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된다. 배우는 지식의 내용은 교육과정이 바뀌지 않아도 교사가 시대와 지역의 상황과 필요를 반영해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제를 도입하면서 이에 발맞춰 교육과정을 개정했다, 2015 개정에서는 핵심 개념, 대주제, 탐구 방법 중심으로 학습 내용을 구성하려고 했고, 2022 교육과정 개정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성취기준 중심의 대강화를 시도했고, 어느 정도 이뤄냈다.
예를 들어 비슷한 과목인 우리나라 한국사2 과목의 경우 성취 기준의 대강화 수준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첫 대단원의 성취기준은 다섯 가지다. 어찌 보면 세부 성취 기준까지 생각하면 10개가 넘는 온타리오주보다 적다.
그렇지만, 단원명도 기간이 아니라 ‘일제 식민 통치와 민족 운동’으로 이미 구체적인 내용을 정해주고 있고, 별도로 내용 요소로 구체적인 사건이나 흐름을 짚어주고 있다.
성취기준 자체도 보다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첫째가 '일제의 식민 통치 정책을 제국주의 질서의 변동과 연관하여 이해한다'로 돼 있다. 구체적인 관점과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온타리오주와 같은 방식의 기술이면 '이 시기 국내 정책을 국제정치 질서의 변동과 연관하여 이해한다' 정도였을 것이다.
게다가 ‘성취기준 해설’과 ‘성취기준 적용 시 고려 사항’까지 보면 구체적인 사건을 어떤 자료로 접근하라는 말까지 있어 훨씬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평가의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교육과정만 보면 대강화는 그럭저럭 성공적이다. 문제는 교과서의 존재다. 정말 이 성취기준에만 맞게 교과서 밖의 내용을 가르치거나 교과서 내용을 대폭 생략하면 학부모나 사회가 받아들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전히 교과서가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의 분위기와 구체적 내용과 방법까지 제시한 교육과정의 대강화는 평가의 자율성을 위한 바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유연하게 진로에 맞는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관점에서도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