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교육부가 올해부터 기존 ‘교원능력개발평가’를 폐지하고 ‘교원역량개발지원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교원을 교육전문가로 존중하고 자기주도적 성장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이다.
교권 침해의 통로였던 서술형 평가의 공식 폐지와 학부모 만족도 조사의 학교평가 대체, 그리고 낙인효과만 주었던 능력향상연수의 폐지는 교육 현장의 오랜 요구가 반영된 결과로 제한적이나마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달라진 것은 간판뿐이다. ‘동료교원평가 폐지’는 실제 폐지가 아니라 교원업적평가의 다면평가로 흡수된 것에 불과하며, 그 결과는 여전히 성과상여금 산정에 100%, 근무성적평정에 40% 반영된다. 낡은 저울의 눈금만 다시 칠했을 뿐, 동료교사를 점수로 줄 세우고 그 줄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구조는 고스란히 살아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 물어야 한다. 교육은 공장의 생산라인이 아니다. 같은 수업을 하더라도 학생 개개인의 가정환경, 정서 상태, 학습 준비도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이다. 교육의 성과란 올해 뿌린 씨앗이 몇 년 뒤에야 비로소 싹트는 것이기도 하다. 그 느린 열매를 단년도 점수라는 좁은 틀에 가두는 것은 교육에 대한 근본적 오해이다. 교실의 아이들 앞에서 교사가 쏟는 정성과 헌신을, 대체 어떤 자로 재고 어떤 저울에 올린다는 것인가.
핀란드에는 교사를 공식적으로 평가하는 제도 자체가 없다. 교사가 스스로 ‘개인 발전 대화’를 준비하고, 교장과의 면담을 통해 자율적으로 전문성을 계발할 뿐이다. 서로를 줄 세우는 것이 아닌 협력, 보상이 아닌 지원이 핀란드 교육의 뿌리이며, 세계가 주목하는 공교육 성과의 비결이다. 반면 우리의 새 제도는 여전히 평가로 보수를 가르는 서열의 사다리 위에 서 있다.
동료를 비교하고 서열화하는 구조는 교사를 각자의 교실이라는 섬에 가둔다. 옆 반 선생님의 좋은 수업 방법을 함께 나누고 싶어도, 그 선생님이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협력의 문은 닫힌다.
백 보 양보해 수업의 질로 교사를 평가한다면 차라리 이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성과 평가에는 행정업무의 난이도와 양까지 반영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 교사는 풀 수 없는 딜레마에 놓인다.
학교 운영에 필요한 행정을 앞서 도맡느라 수업을 상대적으로 소흘히 하는 것이 좋은 교사인가, 아니면 행정을 상대적으로 신경쓰지 않고 교실의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좋은 교사인가. 교사 업무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점수를 매기고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것, 이것이 정녕 교육부가 말하는 ‘협력적 교직문화’인가.
원칙적으로 교육은 숫자로 줄 세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교육의 결과를 기어이 평가의 틀 안에 가두어야 한다면, 적어도 그 틀이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 다면평가와 성과급의 연계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동료를 평가해 차등 지급하는 성과급은 협력의 토양을 메마르게 할 뿐이며, 성과급은 차등이 아닌 정량 지급으로 전환해, 교사들이 비합리적인 점수 다툼 대신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AI·디지털 역량을 평가라는 틀에 끼워 강제할 것이 아니라, 자율적 연수를 통해 자연스럽게 확산해야 한다.
셋째, 5년간 NEIS에 누적되는 평가 결과가 향후 인사에 활용되지 않도록 법적으로 명문화해야 교원이 안심하고 평가를 받아들일 수 있다.
넷째, 교사의 직무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일괄적인 평가 문항은 의도치 않은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기에, 교원의 다양한 직무 환경을 고려한 평가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
교사가 서로의 성장을 돕고, 아이의 느린 변화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 그것은 서로를 견제하고 다투는 메마른 땅에서 자라지 않는다. 협력과 신뢰라는 비옥한 토양 위에서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교사가 안심하고 가르칠 때, 아이들은 안심하고 배울 수 있다. 그것이 우리 교육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