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6~21세 학령인구가 2015년 892만명에서 2024년 714만명으로 크게 줄면서 작은학교 역시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서울 등 대도시 역시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은 작은학교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에 <더에듀>는 ‘띵동! 작은학교입니다’의 저자 장홍영 교사(경북교육청 소속 6학급 학교 근무)를 통해 작은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장 교사는 “경험은 적지만 신규의 마음은 신규가 가장 잘 알기에 혼자 힘들어하고 계실 신규 선생님을 응원하며 글을 썼다”며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어떤 선생님들께 누가 되지 않으면서, 어떤 선생님들껜 감히 조그마한 위로가 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
내가 첫 발령을 받은 학교 주변엔 거주할 수 있는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학교와 읍내에 있는 지역교육지원청은 운전해서 1시간 정도의 거리였는데, 읍내에 방을 구하면 기름값에 자동차 유지비에 월세까지 삼중고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나는, 학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관사에 살게 되었다.
관사 입주 요건은 매년 하는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하는지 자주 바뀌는 것 같다. 내가 관사에 입주하던 2019년에는 뽑기로 운을 시험하는 방식이었다. 입주자를 뽑는 날, 교육청 근처 학교에 입주 희망자가 모두 모였다. 시험 대형처럼 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한 명씩 종이가 든 뽑기 통을 골랐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두근대는 마음으로 뽑기 통을 뽑았다. 통을 열어 안에 있는 종이를 꺼내니 ‘당첨’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3년 동안 관사에 살 수 있었다.
학교 부속 건물처럼 느껴졌던 관사에 살았기에 잠도 푹 잘 수 있었고, 동료 선생님들이 계셔서 무서움도 덜했다. 또한 곰팡이가 가득했던 관사를 어머니와 친구분들께서 새집처럼 도배를 해주셔서 사는 내내 쾌적했다.
그런데 관사에는 종종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추위에 벌벌 떨며 샤워를 한 적도 있었고, 우연히 새벽에 깨서 아무리 스위치를 눌러도 전등이 켜지지 않기도 했다. 거센 비바람 때문에 전기가 나간 것 같았다.
그러다 2020년이 되어 관사 리모델링이 시작되었다. 졸지에 쫓겨날 신세가 된 것이다. 1년 만에 리모델링을 하니, 비싼 자재를 활용해 곰팡이로 가득한 관사를 손수 도배해 주셨던 어머니와 친구분들은 허탈해하셨다.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이나 아파트가 없어서 차를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교무부장님께서 학교 바로 옆 어느 주택에 빈방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알아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사시는 주택 안에 달린 흰 건물에 세를 놓은 것이었다. 나는 보증금 없이 7개월 치를 일시금으로 냈고, 주인 부부께서는 도중에 나가도 월세 반환은 안 된다고 하셨다.
이사 후 택배를 시키자, 택배 기사님들께 “그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사시는 곳이고 흰 건물은 없는데, 혹시 주소 잘못 적으신 것 아니에요?”라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세 들어 살던 주택은 따로 주소가 없었다. 그래서 주인집 주소 뒤에 ‘안쪽 흰색 건물’이라는 말을 추가해서 택배를 주문했다. 그랬더니 동네를 잘 알고 계신 기사님들이 택배를 주문할 사람이 없는데 이상하다며 연락을 했던 것이다. 다행히 몇 개월이 지나자 기사님들은 익숙하게 배달을 해주셨고, 주인 할머니는 매일 같이 오는 택배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코로나로 개학이 미뤄진 이때, 차가 없었던 나는 이 흰색 건물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요즘 원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마룻바닥에서 요가를 하기도 하고, 학생들을 위한 수업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외출하지 않고 갇혀 있었지만, 학교 근처에 지낼 곳이 있어서 그저 감사했다.
할머니께서는 “아들은 이제 세를 그만 놓으라고 하는데, 다 고쳐놓은 빈방이 아까워”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런 할머니는 흰색 건물 입구에 닭이 갓 낳은 달걀을 가끔 가져다주시곤 했다.
그런데 정식 입주 전인 2월 23일, 고통이 시작되었다. 주택 세면대 물에 손을 대보았는데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는 것이었다.
“앗 따가워! 뭐지…?”
놀란 마음에 물에 손을 대자마자 반사적으로 손을 뗐다. 처음엔 겨울이라 손이 터서 따가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주인집 할머니와 어머니께서도 물에서 전기를 느끼고 깜짝 놀라 손을 떼셨다. 그런데 기계를 많이 다루셨던 주인집 할아버지께서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세면대 물은 더 이상 손을 갖다 댈 수 없을 정도로 전기가 통하는 강도가 심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샤워기 물은 괜찮았다. 그래서 손도 샤워기를 이용해 씻었다. 그런데 얼마 후 샤워기에도 전기가 통하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주방에서 물을 받아 화장실로 옮겨 사용했다.
그 생활이 지겨워질 때쯤 주인집 할머니께서 기사님을 불러주셨다. 기사님께서는 할머니께 “잘못하면 아가씨 죽을 뻔했어요”라며 화내듯 말씀하셨다. 기사님께서는 접지하면 누전차단기가 계속 내려갈 테니 누전되는 곳을 찾아서 벽을 뜯어야 한다고 하셨다. 기사님께서 다행히 누전되는 곳을 찾아내셔서 그 부분만 처리해 주셨다. 혹시라도 생겼을 사고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런 후 할머니께서 아드님과 통화를 해보라고 하셨다. 자초지종을 미리 설명해 두신 것 같았다. 전화기를 건네받으니 아드님께서는 수리비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하셨다. 어렴풋이 13만 원 정도의 수리비는 할머니께서 내실 거라는 말과, 죄송하다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난다.
일반 원룸에 살 땐 집주인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주인 부부와 매일 같이 마주치다 보니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전기와의 오랜 사투 때문에 주인집 할아버지 할머니께 다정하게 인사드리지 못했다. 주인 부부와 잘 지냈더라면 흰색 건물의 기억은 좋은 추억만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흰색 건물은 ‘전기 때문에 죽을 뻔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학생들은 친구와 사이가 좋으면 갈등이 생기더라도 친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나는 주인 부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기에 그분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많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한없이 부끄럽다. 지금은 그저 주인 부부께서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
영화 ‘원더’에 나오는 명대사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하루를 애쓰며 살아낸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싶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해서 부족하겠지만, 인간은 성장하는 존재이기에 조금씩 나아질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