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6~21세 학령인구가 2015년 892만명에서 2024년 714만명으로 크게 줄면서 작은학교 역시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서울 등 대도시 역시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은 작은학교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에 <더에듀>는 ‘띵동! 작은학교입니다’의 저자 장홍영 교사(경북교육청 소속 6학급 학교 근무)를 통해 작은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장 교사는 “경험은 적지만 신규의 마음은 신규가 가장 잘 알기에 혼자 힘들어하고 계실 신규 선생님을 응원하며 글을 썼다”며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어떤 선생님들께 누가 되지 않으면서, 어떤 선생님들껜 감히 조그마한 위로가 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
모두가 부장이지만, 모두가 부장은 아니었다
나는 첫해에 6학년 담임과 정보 및 영어 업무를 담당했다. 대부분의 작은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만 있어서 모든 담임 선생님은 학년 부장 업무를 맡는다. 더구나 작은학교에서는 업무를 계원 없이 혼자 해야 하기에, 업무에서도 부장 일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큰 학교에 비해 작은학교에 주어지는 일의 규모가 작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 업무의 양은 어떤 학교든 동일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작은학교 교사는 더 많은 수의 공문을 처리하게 된다.
부장을 맡으면 부장 수당을 받게 되는데, 학교에 배정되는 부장의 수는 정해져 있다. 첫해 6학급 학교의 부장 수는 단 1명이었다. 그래서 교무부장님을 제외한 모든 교사는 부장 수당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부장 업무를 하지만 실제 부장이 아닌 경우를 ‘물부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심지어 첫해에 만난 교무부장, 연구부장님은 경력이 만 3년이 되지 않아 승진 점수도 받지 못하셨다. 또한 전담이 아닌 담임을 하며 업무를 하셨다.
나 또한 4년 차에 연구부장이 되었을 때, 2급 정교사1)였고 5학년 담임도 겸했었다.
1) 교육경력이 만 3년 이상 경과하면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받을 수 있다. 2급 정교사일 때의 부장 경력은 인정되지 않는다.(승진 점수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옆 학교에서는 나와 함께 발령받은 신규 선생님들이 교무부장과 연구부장을 하고 계셨다. 교무부장은 교장·교감 선생님, 행정실장님과 많은 회의를 하며 선생님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모든 부서의 행사를 살펴보고, 고유 업무도 해야 하는 중한 직책이다. 신규나 저경력 교사가 담임 업무도 하며 교무부장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발령 받지 마자 맡은 정보 업무..."고맙던 선배님이 떠오른다"
첫해에 정보 업무를 맡아 일을 할 땐 ‘컴퓨터 관련 학과를 나왔어야 했나’ 하고 생각했다. 많은 분이 공감하실 텐데, 희한하게 내가 담당자가 되면 무언가를 정리해야 하거나 어떤 사업이 새로 생긴다.
첫해에 나는 학교 전체의 컴퓨터를 교체했는데, 당시 교감 선생님께서 학교를 옮기신 후 “그걸 신규가 어떻게 다 했어요? 지금 우리 학교도 바꾸고 있는데 진짜 힘드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코로나가 성행하던 때 선배님들과 태블릿 PC를 집집마다 배달했던 추억도 떠오른다. 컴퓨터를 포함한 정보화 기기 관리 외에도 개인정보, 정보보안, 정보공시, 학교 홈페이지 관리 등의 업무는 너무 생소했다. 교육청 연수에서 정보부장은 착한 사람, 힘없는 사람, 막내 중 누군가가 맡는다는 농담을 듣기도 했다.
이전에 정보 업무를 하셨던 선배님께서는 학교를 떠나시기 전 꼼꼼하게 인수인계를 해주셨다. 직접 NEIS(나이스)에서 권한을 주는 방법을 보여주시고 옆에서 내가 혼자 할 수 있게 지켜봐 주셨다.
하지만 선배님께서 떠나신 후, 정보 업무에 관한 내용을 어디에 질문해야 할지 몰랐다. 시골은 도시보다 유지보수업체의 방문 빈도도 낮고,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내가 직접 선생님들의 토너를 교체해 드렸고, 수업 시간에 컴퓨터가 고장났다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컴퓨터가 잘되지 않으면 수업이나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답답한 마음을 알기에, 선생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내 손에 닿으면 자주 기계가 고장날 만큼 기계와 친하지 않은 나에게, 정보 업무는 무척 버거웠다. 그래서 떠난 전임자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때 눈물을 쏟을 뻔했다.
전임자 선배님께서는 전화를 받고 떨리는 내 목소리에 당황스러우셨을 텐데도 “선생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볼게요”라며 차분하게 말씀해 주셨다. 함께 근무한 적은 없지만, 남아 있을 후배를 생각해 주신 선배님의 마음은 아직도 따뜻하게 남아 있다.
또 다시 맡은 정보 업무..."어떤 일인지 아니까 더 무섭다"
2년 차에는 1학년과 3학년 복식학급 담임과 정보 업무를 맡았다. 복식학급을 맡게 되어 영어 업무를 떼어내 주신 듯했다. 2년 차라 정보 업무에 익숙해질 줄 알았건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모를 때보다 더 무서웠다. 그리고 다시는 정보 업무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6년 차가 되어 나는 또다시 과학 등의 업무와 정보 업무를 맡게 되었다. 올해만 해도 연한이 지난 81대의 태블릿을 처분했는데, 여전히 처분할 기기들이 쌓여 있다.
다른 업무보다도 특히 정보 업무를 할 때,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장, 또는 선생님들의 편의와 연결 지어 스스로 보람을 얻으려 노력했다.
담임과 방과후·돌봄 부장을 한 번에...생소하든, 경험 있든 어려운 건 매한가지"
3년 차에는 5학년 담임과 방과후·돌봄 부장2)을 맡았다.
2) 2024년, 학교에 ‘늘봄실무사’라는 직책이 생겼다. 이후 교사가 하던 방과후·업무는 ‘늘봄실무사’가 처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돌봄(늘봄)전담사가 돌보고 늘봄실무사는 방과후·돌봄 업무를 맡아 실무를 처리한다. ‘돌봄’이라는 단어는 ‘늘봄’으로 대체되고 있다.
방과후·돌봄 부장은 방과후 프로그램 운영, 방과후 강사 면접 및 급여 지급, 돌봄교실 간식 품의 등 방과후수업과 돌봄교실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
방과후·돌봄 업무 외에도 특수교육, 독도교육, 다문화교육 등의 업무를 했다. 전임자이신 선생님은 특수교사셨는데,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졸업을 해서 학교를 옮기게 되셨다. 선생님께서는 월별로 해야 할 일이 적힌 표를 만들어 인수인계를 해주실 만큼 꼼꼼하셨다. 선생님 덕분에 생소했던 방과후·돌봄 업무를 무사히 해낼 수 있었다.
작은학교 대부분은 방과후학교 수강료가 무료다. 수익자 부담인 강좌도 있으나 1~2만원 수준으로 수강료가 저렴하다. 나의 첫 번째, 두 번째 학교에서는 통학버스가 운영되었다. 하교를 위한 버스는 4시쯤 출발했기에, 우리는 웬만하면 학생들이 방과후수업을 받도록 권유했다. 정규 수업 후 학생들이 학교에 있어야 4시까지 안전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시 변두리의 작은학교 학생 대부분은 방과후수업을 거의 듣지 않고 정규 수업 후 바로 학원에 갔다. 도시의 작은학교로 근무지를 옮기고 신기했던 점은 학생들이 태권도 학원 차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 모습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면 보존식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그래서 돌봄 선생님께서는 돌봄교실에서 제공한 간식을 매일 통에 넣어 날짜를 기록하신다.
방과후·돌봄 담당이던 나는 학생 출석부, 지도일지, 보존식 관리대장 등을 매달 확인해서 수기로 결재를 받고 기안문을 올렸다. 방과후수업도 마찬가지로 매달 출석부, 지도일지 품의를 올리면 행정실에서 강사님께 월급을 지급한다.
코로나 시기에는 잠깐 방과후수업이 중단되었는데, 돌봄교실은 계속 운영되었다. 그때 두 분의 방과후수업 강사님께서 학생들이 원격 수업을 듣는 것을 관리해 주셨다.
학교는 새 학년을 시작하기 전 2월까지 방과후수업 강사 계약을 완료해야 한다. 나는 4년 차에 학교를 옮기는 것이 결정되었기에 첫 학교와 두 번째 학교를 오가며 방과후수업 강사 면접을 봤다. 무사히 업무를 마무리하고 학교를 떠나서 개운했다.
생소한 업무든 해봤던 업무든 모든 학교 업무는 나에게 너무 어렵다. 특히 가르칠 학년과 업무가 매년 바뀌면 3월은 적응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3월은 학생만큼 교사도 긴장하는 달이다. 그러니 신규 선생님들께서 혼자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새로운 업무와 새로운 학생에 매년 긴장되지만,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니까.
장홍영 교사 = 경북의 6학급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작은학교에서의 경험을 담은 책 '띵동! 작은학교입니다'를 펴냈다. 그는 스스로를 "매일 아이들과 선생님께 배우며 반성하고 사소한 것에 행복해하는 평범한 초등교사"라고 소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