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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썹샘일기] ⑧넷 다 디텐션이야!

더에듀 | 캐나다 온타리오주 동남권 여러 학교에서 보결 교사로 근무하는 정은수 객원기자가 기자가 아닌 교사의 입장에서 우리에게는 생소한 캐나다 보결 교사의 하루하루를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소개한다.(연재에 등장하는 학교명, 인명은 모두 번안한 가명을 쓰고 있다.)

 

 

“저도 안 찼어요.”

“네 친구들이 공이 머리로 세게 날아와서 안전에 위협을 느껴서 신고했어.”

“아니 그건 제가 조준을 잘 못해서 그런 거고요.”

“그건 변명이 안 돼.”

“아, 진짜…”

“됐고, 너희 네 명은 다 디텐션이야. 점심 먹고 교감실로 올라와서 반성해. 문 잠가놓을 테니까 그리 알아.”

 

보결을 다니다 보면 기분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하루 종일 중2병들 데리고 체육 수업하다가 점심 시간도 되기 전에 진이 다 빠졌다.

 

웬만하면 문제행동 때문에 애들을 교감실로도 안 보내는데, 교감선생님이 직접 체육관에 내려와 네 명이나 동시에 디텐션(detention) 조치를 하는 일이 생겼다.


자유를 박탈하는 징계 조치, 디텐션


디텐션(detention)은 번역하면 감금이나 구류지만 그렇게까지 표현하는 건 그렇고, 근신 정도로 말할 수 있는 수위의 조치인데, 특정한 공간에서 못 나가도록 자유를 제약하면서 반성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경우에 따라 반성문을 쓰거나 아무런 활동을 못하고 대기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방과후 디텐션이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방과후 디텐션은 요새 이곳에서 잘 쓰지 않는다. 가장 많이 하는 기본적인 형태는 일일 점심 시간 디텐션이다.

 

상지고에서는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에는 수업을 맡게 될 선생님의 메일박스에서 빨간색 디텐션 통지서를 확인한 다음 나눠주도록 하고 있다. 디텐션 통지를 무시하는 아이도 있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거나 동일 사안의 디텐션이 누적되면 보호자에게 통보하는 서면 경고로 이어진다.  

 

서면 경고가 쌓이면 정학으로 단계가 올라가며 마지막에는 퇴학까지도 가능하다. 잘 이용되지는 않지만, 초등학생한테도 퇴학 조치가 가능하다.

 

물론 퇴학이라고 해도 학교 다닐 자격 자체를 박탈하는 건 아니라서 다른 교육청에 새로 등록할 수는 있지만 지역에 보통 같은 언어를 쓰는 교육청은 두 곳이라 여기서 퇴학당하면 통학이 어려운 지역으로 가야 하니까 무서운 조치긴 하다.


체육 시간에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는 중학생들 


무슨 일이었냐면. 이 반이 작년에도 행동이 통제 안 돼서 담임이 골치를 앓던 반이었는데, 대부분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거의 안 흩어지고 올라온 게 보였다.

 

옥토중은 프랑스어 몰입 학교라 조기 몰입과정을 했던 학생과 중학교 와서 몰입 과정에 입문한 학생들 학급을 별도로 운영해 늦은 몰입 학급은 한 학년에 하나 반(두 학년 복식 학급이 하나라서)밖에 없기 때문이다.

 

암튼 이 말썽꾸러기 중 작년에도 붙어서 사고를 치던 준수와 이한이 체육관에서 준비운동을 하는데 보통 준비운동에 쓰는 농구공이나 배구공이 아닌 축구공을 창고에서 들고 나온 게 시작이었다. 들고만 나와서 얌전히 리프팅이나 패스만 하면 둘까 했는데 이 녀석들이 사방에 차기 시작하네?

 

처음엔 붙잡아서 공을 차고 싶으면 벽에만 하라고 시켰는데, 뒤돌아서면 또 다른 아이들 쪽으로 차기 시작했다. 결국 공을 뺐고, 준 운동을 조금 일찍 마친 다음 피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드레날린이 잔뜩 오른 이 녀석들하고 저희 패거리 친구들까지 따라서 다른 아이들 머리 쪽으로 공을 차고 스파이크를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안 되는 일이었다. 던지는 공도 어깨 아래로 맞추도록 규칙을 정하고 하는데.

 

몇 번씩 주의를 줘도 뒤돌아서면 다시 시작하고, 제재하면 자기가 안 그랬다고 발뺌하고를 반복하다 결국 머리를 맞는 아이가 나와 경기를 중단시켜야 했다.

 

경기를 중단시킨 후 코트를 나눠 배구와 농구 중 선택해서 하도록 했다. 그런데 배구와 농구는 준비운동 때 많이 하는 종목이라, 준수 패거리 때문에 재미있는 놀이를 못 하고 늘 하던 이를 다시 시키는 것에 일부 아이들이 불만을 내비쳤다.

 

결국 그중 한 아이가 손목을 다쳤다는 핑계로 행정실로 (여긴 보건실이 따로 없어서 작은 부상은 행정실에서 처리한다) 올라가서는 자초지종을 일러 교감선생님을 내려오게 한 것이었다. 내려온 교감선생님은 바로 군기를 잡기 시작했다.

 

“너희들 당장 벽에 붙어.”

“쌤 전 아니예요.”

“아, 아무 말 하지 마. 내가 말할 거야. 넌 벽에 붙어서 들어.”

“아니 전 안 찼다니까요.”

“그것도 여기 정 선생님이랑 백산 형이 판단할 거야. 넌 조용히 듣기만 해.”


최우선의 가치는 학생 안전 


결국 교감선생님은 필자와 자원봉사자 고교생인 백산에게 공을 부적절하게 사용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은 아이들을 골라내게 해 다른 아이들에게 보내고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너희들이 여기 정 선생님의 지시를 안 따른다고 들었어. 축구공을 친구들의 얼굴을 향해 차고 안전을 위협하기도 했다면서?”

“아니 안 찼어요”

“그럼 뭐했는데? 친구들한테 물어볼까?”“스파이크만 했어요. 스파이크하지 말라는 규칙은 없잖아요.”

“머리 맞추게 돼 있어, 안 돼 있어?”

 

이런 대화가 이어지다 결국 모두 근신을 받았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보결 교사가 학급 관리를 못해 여기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학생 안전에 대한 걱정이 되는 상황이 생긴 셈이니까. 이제 다시는 일하러 오라는 연락을 못 받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빈틈이 생기면 해결하는 게 상급자의 역할이다. 교감 직무대행을 하던 실습 지도교사 선생님도 자기 일이 말썽거리가 있는지 순찰하는 거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행정실장님도 자기가 교감선생님에게 전달했다면서 오히려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고 상황을 정리했다. 그런 일을 겪고도 다음 주에 세 번이나 불러준 걸 보면 교감선생님도 크게 마음을 쓰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아무리 중학교가 교과 내용이 만만해서 별 수업 준비 없이 어느 과목 수업 계획이든 대응할 수 있다고 해도 마음의 평화는 좀 더 성숙한 아이들이 있는 고등학교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겠나. 그날 주어지는 학교급과 수업에 충실하고 그날 만나는 아이들의 하루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조금이라도 더 배울 기회를 만들어보는 것이 썹쌤의 역할이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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