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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캐나다 온타리오주 동남권 여러 학교에서 보결 교사로 근무하는 정은수 객원기자가 기자가 아닌 교사의 입장에서 우리에게는 생소한 캐나다 보결 교사의 하루하루를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소개한다.(연재에 등장하는 학교명, 인명은 모두 번안한 가명을 쓰고 있다.) |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아, 신경 쓰지 말아요. 내 사우나 통 보러 왔어요.”
“네?”
“이 친구가 지금 내 퇴임 선물로 통나무 사우나를 만들어주고 있거든.”
“그래, 별문제는 없이 잘 되고 있나? 혹시 재료 더 필요하면 얘기하고.”
“네, 6월쯤에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춤형 목공’ 수업을 들어간 날에 느닷없는 교장선생님의 방문에 당황했다. 안전 사고의 위험이 있는 전동 도구를 쓰는 수업인 만큼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다행히 알고 보니 무슨 문제가 있어서 찾아온 것이 아니었고, 퇴임을 앞두고 완성될 자기 사우나 통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보러 온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이 교장의 개인 물건을 만들고 있다고 하면 국가공무원의 청렴에 문제가 되는 큰일날 일이지만, 여기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기 말이나 교사의 생일에 너무 과하지 않은 선물을 하는 일도 너무나 당연한 데다, 특히나 수업의 성격 자체도 맞춤 제작을 연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 개인 프로젝트를 하는 수업
하긴 자재도 각자 개인 조달을 하기도 한다. 교장선생님의 사우나 재료비는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지원하셨고, 다른 학생은 수업 도중 아버지가 픽업트럭을 학교 목공실로 몰고 와서 목재를 내려주고 가기도 했다.
‘맞춤형 목공’ 수업은 개인 프로젝트 중심의 목공 실습 과목이다. 이 과목에서는 각자 정한 목공 작품을 완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취업 준비 계열 과목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필요한 재료 조달과 결과물 판매까지 모색하면서 목공 업계를 배워가기도 한다.
각자 다른 걸 하면 교사의 역할이 뭐가 있을까 싶지만,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단계별로 안내하는 역할과 중간, 중간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다.
12학년 맞춤형 목공 수업은 특히 11학년 맞춤형 목공 수업을 선수 과목으로 하고 있어 기초적인 기술은 이미 다 알고 있다.
11학년 맞춤형 목공 수업은 선수 과목이 없지만, 대부분 이미 기술(목공 실기) 수업에서 배웠기 때문에 따로 가르쳐줄 필요는 없다. 학생 중 다수는 기술 디자인 수업도 들었을 것이며, 큰 건조물에 도전하는 학생들은 건축(목공) 수업을 듣고 오기도 했다. 건축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목조로 지붕까지 갖춘 집 골격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
고교학점제의 꽃인 ‘심화’ 과목
초중학교야 긴급 보결이든 정규 보결이든 차이가 없겠지만, 고교의 경우 정규 보결 교사는 전공과목 위주로 수업을 하기에 이곳의 다른 과목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볼 기회가 많지 않지만, 긴급 보결 교사는 정말 다양한 과목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그 자체가 도전이기도 해서 나중에는 기피하게 되는 과목도 생기지만, 그래도 외국에서 온 교사로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해보는 재미도 있다. 특히 11, 12학년 심화 과목들은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계속해서 고교학점제로 논란이 많은데, 고교학점제 그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라고 안 될 제도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의 제반 환경의 차이를 고려해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조금 빠르게 도입했다는 생각은 든다.
객관적인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와 입시로 성공을 얻는다는 사고방식 그리고 직종에 따른 큰 소득격차가 있는 한 입시와 연동 문제도 크지만, 그 외에도 제반 조건이 맞물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시점에 고교학점제의 꽃인 다양한 심화과목의 실제 모습을 소개하면서 그 바탕이 되는 여러 여건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취업해서 활용할 기술을 알려주는 진로 맞춤형 수업
예를 들어, 상지고에서 취업 계열은 맞춤 목공뿐만 아니라, 배관, 건축 기술, 자동차 운송·정비 수업이 있다. 군포고에는 조리 과목이 있는데, 실제로 학교 행사에 필요할 때 전교생을 대상으로 점심을 만들기도 하고 교육청 연수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자동차 리프트까지 갖춘 자동차 정비 수업도 있다.
이런 모습은 일반고 안에 취업 계열 실기 과목이 같이 있기에 가능하다. 물론 이는 수업을 해 본 몇 학교 교내에서 제공하는 일반 기술 실기 과목이고, 훨씬 다양한 실기 과목이 제공되고 있다. 학교 밖 업체에서 산학 협동 학점이나 현장 실습이 있는 별도의 프로그램들도 운영되고 있다.
실기 과목이 아니어도 경영 교과군에서는 창업, 경영 리더십, 마케팅, 기업 회계 등의 과목들이 개설돼 있어 창업 준비를 도와주기도 한다.
이런 온타리오주 현실을 볼 때 전문계와 일반계 고교가 분리된 우리나라 현실에서 취업할 진로를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진정한 진로 맞춤형 수업이 얼마나 가능한지는 되돌아봐야 하는 대목이다.
물론 이런 과목을 듣는다고 다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제대로된 기술을 잘 배우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한 맞춤형 목공 수업 학생 중 절반 정도는 정말 자신의 의지로 제품을 제작하고 있었지만, 일부는 친구의 큰 제품에 동참하는 정도, 일부는 그냥 만들기 쉬운 물건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가 원해서, 별달리 선택할 과목이 없어서, 친구 따라서 선택하는 아이들도 있게 마련이니까.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라면, 여기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기 수업 듣는 학생들이 통제가 힘들어서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려고 교사는 애쓰지만, 흥미가 있어야 스스로 배운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안 배우면 억지로 끌고 가지도 않는다.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사회에 나가서 필요하면 그때 배울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대학이나 전문대에도 만학도가 흔하다.
대학 학점 선이수, 대학 전공학과 맞춤 준비도 가능
그런데 비실기 과목 교사로서 실기과목만 흥미로운 것은 아니다. 진학 계열 학생을 위해서도 교과군별로 다양한 과목이 있다.
상지고를 예로 들면, 음악 수업은 기타, 보컬, 밴드 등 영역별 과목이 있다. 음악 수업 보결을 요즘 기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 음악 수업도 지도가 어려운데, 이런 수업은 아무리 학생들이 알아서 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공인 미술은 상지고에 애니메이션, 사진, 출판 디자인 등이 있는데 다행히도 모두 실무 경험이 있는 과목들이어서 학생들을 지도할 수가 있었다. 그럴 때면 학생들이 “미술 교사라더니 진짜였네”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보결 수업을 해본 적은 없지만, ‘맞춤 목공’과 비슷한 느낌으로 ‘포트폴리오 제작’도 개설돼 있기는 하다. 연극 수업 학생들은 각본부터 공연까지 전 과정을 학생들이 준비한 연극을 국립 공연 학교 축제에 출품하기도 한다.
좀 더 일반적인 교과군도 마찬가지이다. 사회 교과군에는 지리 심화로 관광, 자연재해, 국제 이슈가 있고, 역사 심화로는 세계 고대·중세사, 세계 근·현대사가 있고, 법 심화로는 국제법과 법학이 있다.
사회 교과군과는 별개로 인문·사회과학 교과군이 있는데, 상지고는 주로 가정 교과 전공 교사가 많아서 학령기 아동의 이해, 부모 교육, 패션의 이해, 음식과 문화 등이 있다. 지난 학기 상지고 '학령기 아동의 이해'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인근 가주초로 실습을 나가 3, 4학년 학생들과 함께 연극 무대를 준비하고 이를 초등학생 학부모들에게 공연하기도 했다.
군포고에서는 심리학과 종교학도 여기에 포함된다. 학교에 따라서는 인류학이나 철학을 다루기도 한다. 이런 심화 교과들은 대입 학과 선택을 고려해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어 교과군에서는 대학 영어 이중 학점 과목이나 지역 수요에 따른 현대 외국어, 또는 라틴어와 같은 고전어를 배우기도 한다. 군포고에서 라틴어, 세계사를 수강하고 이 학점을 바탕으로 오타와대 고전학과를 진학한 학생도 있다.
영어처럼 수학이나 물리 같은 과목도 대학 학점 선이수 과목으로 이어지는 심화 과목이 있고, 군포고나 충렬고처럼 IB과정을 개설한 학교도 있다.
125시간 연수 한 번으로 추가 자격 취득
이처럼 이곳 고교학점제는 각자 수요에 맞게 계열 분화를 하고, 진로를 준비할 수 있게 심화 과목을 듣는 부분이 핵심인데, 우리나라라면 계열 분화는 ‘차별’과 ‘우열반 편성’이라는 비난에 직면해야 하고, 심화 과목은 우리나라의 교원 자격증 표시 과목 제도가 유연하지 않아서 다양한 개설이 어려울 것 같다.
이곳에서도 기회 보장을 위해 분화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있긴 하고 실제로 9학년 기본 교과는 통합을 진행 중이지만, 이미 계열이 고정적으로 편성되는 것이 아니라 각 교과 선택 때마다 선수 과목 제한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계열별로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심화 과목 문제는 교과 전문성보다 교수 전문성을 중요시하는 교직 사회의 시선과 자격 연수를 바탕으로 쉽게 추가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로 극복이 된다.
물론 추가 자격 연수를 받기 위한 조건이 있는데, 부전공의 경우 우리나라의 3학점 정도에 해당하는 과목을 4개 들었으면 수강 자격이 주어진다. 일부 과목은 시험으로 학점 요건이 대체되기도 하고, 학점제로 요건을 채울 수도 있다.
중등 교사는 자격 요건 자체가 표시 과목 두 개를 갖고 있어야 하고 취업 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계열의 과목을 두 개 이상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학교에서 필요한 심화 자격이 있으면 추가로 방학 때 취득하는 방식이다.
물론 우리도 부전공 연수가 존재하지만, 450시간을 요구하는 데다 대면 강의 비중도 높은 데다 학교장 추천서도 필요하기에 접근이 쉽지 않다. 이곳에서는 125시간이면 되고 개별적으로 신청하고 전 과정 온라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훨씬 접근이 쉽다. 그래서 방학 때 연수를 듣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학기 중에 듣는 경우까지 종종 있다.
일부 심화 과목은 온라인으로 운영
그래도 세부 심화 과목을 수요만큼 개설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보통 초등학교보다 훨씬 대규모 학교로 운영하기도 한다. 애초에 학교급별 학교 규모가 학점제와 함께 발전한 것이다. 게다가 그걸로도 부족하면 온라인 강의를 이용하기도 한다.
상지고 영어과에서는 문학 심화로 작가로서 창작하기, 문학 탐구, 영화 탐구 등을 개설하고 있는데 이 중 영화 탐구는 온라인 강의다.
이런 온라인 강의는 일단 졸업 요건 중 온라인 학점이 포함돼 있으니 일거양득이 되기도 하지만, 11, 12학년쯤 되면 하루에 한두 교시(보통 75분) 수업이 없는 시간도 있을 수 있어 더욱 부담이 없다. 보통 학생들은 이 시간에 필수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또래 학습 도우미 등 교내 사회봉사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자습 시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어 이때 온라인 강좌 수강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제공 과목의 다양성을 위해 온라인을 포함한 공동 교육과정 운영 등의 대책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는 해도 학생들의 생활 여건 자체가 다르기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운영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사우나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꽤 옆길로 샜지만, 이곳 심화 과목 운영의 모습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고교학점제가 정착되려면 우리와 다른 나라는 토양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대책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