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인공지능(AI) 등 진보된 기술이 교육계에 본격 적용되는 시점을 맞이했다. 특히 AI 디지털교과서가 내년부터 본격 도입되고 이에 앞서 교육부는 올해 말까지 디지털 윤리 규범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진보된 기술의 도입은 학습환경의 혁신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지만, 사람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교육에의 도입에는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더에듀>는 <DX교육데이터협회>와 공동 기획 ‘AI와 디지털 교육’을 통해 교육부가 디지털 교육과 맞춤 교육 등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지 교사와 연구자, 기업인 등의 시선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
우리는 AI 시대를 살고 있다. 알파고와 ChatGPT는 이 시대의 슈퍼스타다.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할 것 없이 모두 인공지능 제품으로 출시되고 있으며, 이미 수천만이 사용 중인 스마트폰은 우리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정글로 안내한다. 사교육 시장은 AI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교육부도 AI 시대에 대응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취임부터 교육의 디지털 대전환을 천명하고 AI 디지털교과서를 개발하고 교사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했다. 내년부터는 민간기업과 함께 개발한 AI 디지털교과서가 전국 교실에 배포되어 사용될 예정이다. AI와의 동행은 대한민국 교육의 숙명으로 보인다.
그 숙명은 인공지능이 교육에서 맡는 역할에서 비롯된다. 인공지능은 교육계의 오랜 염원이었던 개별형, 맞춤형 수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인공지능은 학습자의 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개별화된 교육과정을 제공하는데 이를 통해 학습 경험이 긍정적으로 변화되며 궁극적으로 학업 성취도가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한 원리이다.
UN 교육특사 고든 브라운 전 영국총리도 “디지털 기술을 통해 학생들은 본인의 학습 역량과 속도에 맞게 나아갈 수 있으며, 모든 아이에게 포용적인,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현직 교사로서 그리고 에듀테크 연구자로서 인공지능을 통한 교육 혁신은 분명히 미래 교육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공지능교육과 관련한 담론에서 염려되는 점이 있어 이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인공지능은 대한민국 교육 혁신에 필요한 것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교육 담론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인공지능은 대한민국 교육 혁신에 필요한 것을 제공할 수 있는가?”
이제 담론을 들여다보자. AI 학습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광고 사례이다.
학생이 책상에 앉아 디지털 패드로 문제를 푸는 모습이 잠시 나온다. 디지털 기기와 소통하는 듯한 화면이 몇몇 지나간다. 잠시 후 어느덧 학생들이 손에 100점짜리 시험지를 손에 들고 자신만만하게 미소 짓는다. |
이런 설정은 물론 매력적이며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쉽다. 그러나 이는 어느 날 갑자기 무도회에서 왕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 신데렐라의 이야기의 서사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광고에 등장하는 학생들이 어떤 이유로 언제부터 학습에 흥미가 없었는지, 어떤 과목이 어느 정도 부족했는지, 얼마나 학습 시간이 필요한지,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그 과정에서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광고에 등장하지 않는다.
인공지능 교육 담론은 2011년 교육부의 스마트교육(SMART eduaction)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2010년대 초반은 스마트폰과 같은 휴대용 디지털 기기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새로운 디지털 문화가 급속히 발전하던 시기였다.
이 기술을 원동력 삼아 교육부는 스스로(Self-directed), 동기를 가지고(Motivated), 학생 개개인의 수준과 적성에 맞게(Adaptive), 풍부한 디지털 콘텐츠를 바탕으로 (Resource-free), 스마트 디바이스 등 정보 기술을 활용하여(Technology-embedded) 새로운 교육체제를 스마트(SMART) 교육으로 명명하였다.
특히 스마트교육의 주요 과제였던 교사 연수 강화와 디지털 교과서 개발 등은 십여년이 지난 오늘날 인공지능교육 정책과 판박이다. 뉴스미디어에서는 스마트교육이 얼마나 혁신적이며 효과적인지에 대해 연일 보도했다.
2020년 11월 교육부는 인공지능시대 교육정책방향과 핵심과제를 설정했다. 여기에는 ‘감성적 창조’, ‘초개인화 학습 환경’, ‘따뜻한 지능화 정책’이 3대 방향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는 기술만능주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사회에 형성된 담론과 실제 정책 개발 방향에는 기술만능주의적 담론이 도사리고 있어 교육을 기술 투입과 결과물 산출이라는 모델로 단순 치환한다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교사는 연수를 통해 낡은 교수 학습 신념과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대한 긍정적인 신념, 지식, 활용 방법으로 최신화되어야 하는 존재로 설정된다. 학생들에게 디지털 기기를 지급하면 개별형 콘텐츠를 통해 흥미가 유발되고, 이를 동력으로 열심히 공부해 성적이 향상되며 미래 사회의 일꾼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정도 깔려 있다.
그러나 교육은 주체와 객체, 그 둘 사이의 역학관계를 명쾌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현상이다.
교육에서 사람 개입 여부의 효용성 결과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등교가 중지되었던 2020년,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에듀테크와 멘토를 활용하여 기초학력을 보장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초학력이 부족하거나 취약계층 학생 4만명에게 학습 멘토와 함께 학습 지원 소프트웨어를 지원했다.
흥미롭게도 AI의 가이드에 중점을 둔 채 사람(멘토)이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학생들이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따라 개별적으로 수업 했을 때에는 학습에 성공적이지 않았다. 반대로 멘토가 학생의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진도와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지도했을 때는 학습이 성공적이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울교대 권정민 교수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과 관련한 난제를 밝힌다.
“AI 디지털 교과서의 작동은 정확한 학습자 분석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학습자를 분석하려면 외부 간섭이 없어야 한다. 인간 교사가 (학생의 학습 과정에) 관여하면 AI 분석 알고리즘이 혼탁해진다. 그러나 정작 사람의 개입이 줄면 학생은 학습 의지를 잃는다.”
인공지능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뗐다
현재 교육 담론에 널리 퍼진 ‘만병통치약’ 접근을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한다. 여러 가지 위험한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연수를 받고도 인공지능을 여느 인공지능 연수 강사처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경쟁력 있는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소위 실패한 교사로 오인되기 쉽다.
또한 기대와 달리 오류나 부족한 점을 자주 보여주는 인공지능에 실망하여 활용 자체에 관심이 적어지는 교사와 학생들도 생겨나는 점도 우려스럽다.
실제로 연수에 참여해서 배운 인공지능을 본인 교실에 적용하기는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연수에서 제공되는 내용은 요약된 내용이므로 적용에 필요한 아주 사소한 지식이나 기능 혹은 사용 여건(기기 최신 여부, 인터넷 연결 속도) 등 수많은 이유로 내 교실에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인공지능은 매스컴에서 나오는 보도와 달리 원하는 수준의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헤매거나 이상한 답을 내놓는 경우도 많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연구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직접 제작한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와 학생들이 소통하며 학습하는 수업을 기획했다. 활동 후에 학생들은 교사의 기대 혹은 사회의 기대와 다르게 ‘인공지능이 바보 같다’는 소감을 나눠 진땀을 뺐다. 사전 테스트와 달리 챗봇이 멈추기도 하는가 하면, 학생들의 질문에 엉뚱한 답변을 하거나 답변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불만족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 큰 법이다.
인공지능이 대한민국 교육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뗐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교육 혁신과 그 미래를 인공지능에 온전히 맡기기는 아직 이르다. 이와 관련해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개별화·맞춤형 교육을 가능케 하는 완성품으로서의 인공지능이라는 담론을 넘어 인공지능을 새롭게 설정하는 교육 담론을 설계하고 확산해야 한다.
둘째, 인공지능이 신뢰도와 타당도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때까지는 교사와 연구자, 정책 입안자, 민간기업들이 함께 그 성장을 주의 깊게 돌보고 지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교원 연수 흐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지금은 교육부와 시도 교육지원청의 역량이 교원의 디지털 및 인공지능 활용 역량 신장에 편중되어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교육에 더 충실하게 융합하기 위해서는 수십년 동안 축적된 현장의 지식과 기능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필요하다. 기존의 교수학적 지식과 교육학 연수 등을 다시 한번 정제하고 공고하게 다져두는 일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인공지능이라는 새싹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교육계에 뿌리내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