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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남의 진짜교육] 교육정책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②학교교육 과정만 방해하는 탁상공론 ‘선행학습규제법’ 적용

더에듀 | 교육자로 24년의 시간을 보내며 학생, 동료교사와 많은 일을 함께 했다. 과학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이다.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홍제남의 진짜교육’을 시작한다.

 

 

곧 4월이다. 대부분의 중·고등학교는 4월 하순이 중간평가 기간이다. 교사들은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수업 시간에 가르친 범위 안에서 시험문제를 출제한다. 그런데 선행학습이 넘쳐나는 학원이 아닌 국가교육과정에 맞게 시험 문제를 출제한 학교만 선행학습규제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험을 치른 후 학교는 교육청에 시험문제를 보고하는데, 교육청은 ‘연초에 세운 진도 순서를 바꿔 수업하고 시험문제를 출제’한 경우에 선행학습규제법을 어겼다고 지적한다.

 

선행학습규제법의 목적은 제1조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공교육을 담당하는 초·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교육 관련 기관의 선행교육 및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행위를 규제함으로써 ‘교육기본법’에서 정한 교육목적을 달성하고 학생의 건강한 심신발달을 도모하는 것이다.

 

선행교육 규제로 학생들의 건강한 심신발달을 도모하는 것이라 통상 ‘선행학습규제법’이라 부른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3월 제정됐다. 과연 10년이 지난 현재 이 법률로 학생들의 선행학습이 줄고 공교육이 정상화됐을까?

 

굳이 통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고 있듯 선행학습이 줄기는커녕 선행의 주범인 사교육에 지출하는 비용은 해마다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최근 한 방송에서 ‘7세 고시’가 방영되며 아동학대 수준의 사교육 실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인 충격이 큰 상태이다.

 

이렇게 선행학습규제법이 사문화된 이유는 제2조 1항에 훤히 드러나 있다.

 

교육 관련 기관이란 ‘초·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학교 중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각종학교(이하 학교)와 ‘고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학교 및 그 밖에 다른 법률에 따른 고등교육기관(이하 대학)을 말한다. 

 

법 적용 대상 교육기관에서 선행학습의 주범인 사교육 기관이 빠져있다. 또한 사교육의 근본적 이유인 수능시험은 해마다 ‘교과서만 잘 공부하면 된다’면서도 무슨 이유인지 이 법률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이 법률에 대한 경향신문 논설위원의 ‘있으나 마나 한 선행학습규제법’이라는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지난 3년간 전국 자사고·외고·과학고 등이 시행한 240여건의 입학 전형 평가에서 사교육 유발 요인이 적발된 사례는 1건에 불과했다. 정부의 사교육비 통계에 의하면 자사고·외고·과학고 진학 희망자는 일반고 진학 희망자보다 사교육비 지출이 50% 이상 많다. 그런데 자사고와 외고 입시는 선행학습 유발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으니 제도에 허점이 있거나 교육청의 관리·감독이 요식행위에 그쳤다고밖에 볼 수 없다. 교육당국이 자사고와 외고 입시에 오히려 면죄부만 준 꼴이다. (중략) 선행학습도 못 잡고 사교육비 절감 효과도 없는데 교사와 교육청 직원들은 유명무실한 법을 유지하느라 ‘서류 작업’에 헛심을 쓰고 있다. (중략) 실효성 없이 법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선행학습규제법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고쳐 쓸 수 없다면 폐지하는 게 옳다. - 경향신문 2023.5.3.

 

선행학습규제법은 선행학습은 규제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학교가 상황에 맞게 학교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교사일 때와 교장일 때 실제로 겪은 어이없는 일이다. 어느 해 연초에 세운 계획에는 2학기 진도에 나와 있던 부분을 1학기에 수업하고 학생과 보호자 모두에게 알린 후 시험문제로 출제했다. 1학기 임신과 출산 단원 내용이 가정 교과와 많이 겹쳐서 진도가 빨라져서 생긴 일이었다. 그런데 교육청은 연초 교육계획과 시험문제를 비교한 후 선행학습규제법을 어겼다며 교육계획 시정을 지시했다. 여름방학 중에 연락을 받고 출근해서 교과교육과정 계획을 수정해서 다시 결재를 받아야 했다. 교장일 때도 비슷한 건으로 지적을 받아 교사가 이미 진행한 수업에 맞게 교육계획을 수정해 재결재를 진행하고 학교 홈페이지에 다시 공시해야 했다. 극히 형식적이고 탁상공론 행정으로 교사들의 업무 부담과 더불어 삶과 연계된 유연한 학교교육과정 운영을 위축시키고 있다.

 

하멜과 프라할라드는 조직의 비전 연구에서 “창조적 전략이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연간 기획에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학기 초에 세운 연간 교육과정 계획이 1년간의 모든 변수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교육청은 현실 상황에 맞게 순서를 바꿔 수업한 것까지 실효성 없이 선행학습으로 규제해 학교교육을 방해하고 있다. 당장 법을 폐지하지 못한다면 법령 제8조에서 편성된 학교교육과정을 1년간의 교육과정으로 포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제8조(선행교육 및 선행학습 유발행위 금지 등)

① 학교는 국가교육과정 및 시·도교육 과정에 따라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하여야 하며, 편성된 학교교육과정을 앞서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서는 아니 된다. 방과 후 학교 과정도 또한 같다.

③ 학교에서는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지필평가, 수행평가 등 학교 시험에서 학생이 배운 학교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여 평가하는 행위

 

위 조항에 견줘보면 편성된 연간 ‘학교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고, 학생이 배운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내용으로 출제’해 평가했다. 없어져야 마땅한 법이지만 우선 교육청은 1년의 학교교육과정 안에서 순서를 바꿔 수업한 것을 선행학습이라고 기계적으로 단정하는 행위부터 시급하게 해소해야 한다. 그것이 학교와 교사가 유연하고 풍부한 교육과정을 더 적극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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