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선거연령 16세 하향 논의는 단순한 제도 변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우리는 학생을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볼 것인가,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로 볼 것인가?”
청소년을 보호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권을 가진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이미 ‘책무’를 다하는 세대에게 ‘권리’를 되돌려주는 법적 정의입니다
만 16세 청소년은 대한민국 법체계 안에서 이미 많은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근로가 가능하여 경제 활동을 하고 세금을 납부합니다. 법 개정으로 이미 정당의 당원이 되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학교 안에서는 고교학점제를 통해 자신의 교육과정과 진로를 스스로 설계합니다.
국가는 이미 이들에게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 능력이 있음을 법적으로 공인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일상을 결정하는 교육감 선거권만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권리의 불균형’입니다.
교육감은 교실 구조, 학생 자치, 평가 체계 등 학생의 삶에 직결된 환경을 결정합니다. 투표권 부여는 시혜가 아니라, 빼앗긴 주권을 되찾아 주는 형평의 회복입니다.
둘째, 선거권 하향은 정치화가 아니라 ‘교육 당사자주의’의 완성입니다
학생은 교육 정책의 가장 핵심적인 이해당사자입니다. 정치인은 교육을 말하지만, 학생은 교육을 살고 있습니다. 16세는 이미 고등학교 현장에서 교실 갈등, 수업 환경, 평가 부담을 직접 체감하는 나이입니다.
이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면 후보는 학생의 실제 삶을 개선하는 공약에 집중하게 되고, 학생은 자신의 선택이 환경을 바꾼다는 정치적 효능감을 갖게 됩니다.
민주시민교육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경험을 통해 완성됩니다. 제가 강조해 온 ‘삶의 실천으로 배우는 민주시민교육’ 역시 특정 이념 주입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협력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입니다. 선거 참여는 가장 효과적인 실천 방법입니다.
셋째, 보이텔스바흐 원칙에 기반한 시민교육과 함께 갈 때, 학교는 더 성숙해집니다
가장 많이 제기되는 우려는 이것입니다.
“교실이 정치판이 되는 것 아니냐.”
정치를 금지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올바르게 다루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성숙한 정치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①특정 관점 주입 금지 ②쟁점은 다양한 관점으로 다루기 ③학생의 판단 능력 육성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선거권 하향과 동시에 이 원칙을 민주시민교육의 표준으로 제도화해야 합니다.
정치를 교실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교실이 정치적 선동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자는 것입니다.
# 반대 칼럼 관련기사 참조 : [16세 선거권-반대] 조전혁 “아이들 지킬 ‘교육적 안전장치’ 먼저”(https://www.te.co.kr/news/article.html?no=280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