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지성배 기자·김우영 수습기자 |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사고 1주년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이에 맞춰 ‘선생님의 안부를 묻습니다’를 출간했다.
현직교사 6명이 집필에 참여한 이 책에는 ‘교사’로서 또 ‘나’로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겼다. 또 이들은 학교가 교사들에게 살아 남아야 하는 공간이 되어 버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 속에서 교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더에듀>는 집필에 참여한 교사들 중 4명과 함께 서이초 사건 1년을 돌아보며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었으며, 어떤 변화가 진행 중인지 특히 교사들이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좌담에는 (가명)윤미소, 루서, 김미주, 강은우 교사가 참여했으며, 총 2편으로 나눠 전한다. |
▲ 아동학대처벌법 등 교권보호를 위한 다양한 법이 개정됐다. 학교에서는 어떤 변화를 체감할 수가 있나.
김미주=학생으로부터 교권 침해를 당한 교사가 원할 경우 반드시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해야 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청하면 보호자로부터 보복성 아동학대 신고를 당할까 하는 두려움은 그대로입니다.
교권을 침해한 당사자가 보호자일 경우 조치를 취하도록 개정했으나 서면사과, 과태료 부과 정도로 그친 것은 아쉽습니다. 심지어 멱살을 잡거나 뺨을 때리는 일도 있는데, 그런 학부모들에게는 서면사과나 과태료 부과 정도의 처분이 두렵지 않을 테니까요.
개정된 법은 시작 수준에 불과하고 앞으로 현장 교사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체감할 수 있는 법 제·개정이 필요합니다. 그 예로 ‘정서행동 위기학생’과 그 학생의 가정을 개선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조기 발견 및 지원에 관한 법이 필요합니다. 또한 현장학습 등 안전사고와 관련한 교사의 무한 책임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루서=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아 아동학대처벌법이 개정되었으나 정서적 학대와 관련하여 아동복지법까지 개정되지는 않았어요. 어느 정도 인식의 전환은 되었고 막무가내 신고도 사라진 측면도 있겠으나 실효성이 적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아동을 위해 여러 조치를 하고 싶어도 가정에 막혀서 못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모가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만큼 교권은 힘이 없습니다.
해외의 경우 문제 부모에 대한 교사의 권한이 강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교사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것이죠.
아동 지도와 관련하여 실질적으로 교사에게 권한을 주어서 교권을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교권을 강화해야 현재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동학대처벌법 개정됐지만, 아동복지법 미개정으로 한계 뚜렷
보복성 신고, 무한 책임 시스템은 여전..."교사에게 실질적 권한 필요"
▲ 말씀처럼 아동복지법 상의 아동학대 면책권 부여 여부는 아직 미정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루서=정당한 생활지도를 위해서 아동학대 면책권은 필요하다고 보는 편이에요. 당연히 교사가 악용할 수 있는 부분은 주의해야겠지만,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면책권’에 대해서 인정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주 극소수의 불미스러운 일들은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으니 다수의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동학대 면책권이 부여되더라도 교사들이 학생을 정서적으로 학대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김미주=교사의 생활지도나 학교를 겁박할 수 있는 소지가 많아 면책권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공감해요.
‘정서적 아동학대’라는 부분이 애매하잖아요. 정신 건강 발달에 어떤,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쳐야 구성 요건이 되는지도 그렇고요. 의심만으로 신고할 수 있는지, 만약 신고당해서 무혐의가 나오더라도 제가 무고로 어떤 조치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잖아요.
실제 의심만으로 신고할 수 있고, 악의적인 신고에 따른 무혐의 처분이 나와도 교사는 신고자를 무고로 처벌할 수 없어 교사를 공격하고 생활지도 시스템을 파괴하는 무기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저도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지만 무고성 신고로 인해 교사의 삶이 무너지고 교실 붕괴를 일으킬 수 있는 현행 아동복지법 개정은 필요해요.
루서=예전에 저희 학교에 정서학대라고 주장했던 학부모가 내용증명을 보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관리자가 ‘정서학대는 성추행과 같아서 느끼는 사람이 학대로 느끼면 정서학대에 해당한다’라고 하더군요. 법이 이렇게 애매해서 되겠나요.
대부분 교사가 친절하게 교육 활동을 하니 조금만 친절함이 덜해도 정서학대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마치 영화나 만화에 나오듯이 아주 친절하게 아이를 대해야 하고 약간의 싸늘한 표정만 지어도 정서학대라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아이 기분이 나쁘면 정서학대를 받았다는 거죠. 이에 대한 보호 장치가 있어야 해요.
교권 추락, 학생인권조례가 주 원인 아냐...
"서로 존중하는 문화 속에 인권의 전체 파이 키워야"
▲ 학생인권조례는 교권 하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루서=‘단군 할아버지가 와도 우리나라 교육이나 입시는 해결 못 한다. 그래서 교육 문제는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어요. 오죽하면 ‘정치인들이 교육 문제를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건 해결이 안 되면서 욕만 먹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있죠.
인권은 전체 파이가 같이 커지는 일이지 ‘내가 많이 먹으면 얘가 조금 먹을 거야’라는 사고는 잘못된 것 같아요. 그래서 체벌이 금지되고 학생인권조례가 나오면서 교권이 추락한 거라고 끼워 맞추듯 합리화하는 건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
교권 하락은 학생인권조례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사회적인 분위기와 이슈에서 교권 침해가 강화된 거라고 생각해요. 학생인권조례로 인해서 이런 문화가 생겨났다고 보지 않아요.
특히 이 문제는 학부모와의 충돌이지, 학생과의 충돌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본질적으로 교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윤미소=저도 인권의 파이가 같이 커져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제로섬 게임이 아니잖아요. 학생인권조례는 인권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나오게 됐는데, 학생인권조례와 교권 추락을 단순하게 연결해 교권에 문제가 생긴 것을 학생인권조례에 떠넘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학생인권조례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지금 교권 추락에 좀 더 집중해야 하는데, 그 이유를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 하는 것은 말장난 같았어요. 결론은, 우리는 교권과 학생 인권, 다 존중하는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미주=꼭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추락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취지를 봐야 할 것 같아요. 학생 인권과 교사의 인권, 학부모 인권까지 다 같이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취지를 살리되 아까 말했던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한 면책권이라든가 교원 평가 등을 다시 조정해서 같이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힘든 상황, 혼자서 버티지 마세요"...최선을 다했음을 알고 있어
완벽해지려는 마음이 더 힘들게 해..."실수도 인정하는 문화 필요"
▲ 오늘도 교실에서 고민에 쌓인 교사들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나.
김미주=저도 23년 동안 교직 생활을 하면서 힘든 적이 많았어요. 동료 교사한테도 가족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힘들어도 속으로만 끙끙 앓았어요.
우리 선생님들은 그러지 말고 퇴근하면 산책도 하고 자기를 위한 시간을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주변 동료 교사들과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시고요.
강은우=먼저 ‘정말 애썼다’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아, 그때 그걸 해야 했나’ ‘정말 그 결정이 최선이었나?’ 이렇게 되묻게 되잖아요.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나친 자책은 자신을 힘들게 하더라고요. 당시 최선을 다했고 지금 고민하는 과정 역시 유의미한 시간이라 생각하면 좋겠어요. 저희가 응원하는 마음이 선생님들 마음에 닿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루서=선생님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착한 모범생으로 성실하게 생활하다 보니 실수하면 마치 큰일이 생긴 것처럼 아는 분들이 많아요. 완벽해지려 애쓰지 말고 힘들면 좀 힘들다고, 사람들과 대화도 하셨으면 좋겠어요. 온전히 자기가 다 책임지려 하다 보니 과부하가 걸리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별다른 얘기가 없는데, 알고 보면 따로 상담도 받고 정신 치료도 받는 선생님들이 늘고 있어요. 저도 나이 들어 보니까 구멍투성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나도 좀 실수한다. 너희들도 실수해 줘라’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윤미소=하루를 돌아보면 잘한 것보다 부족했던 게 더 많이 기억나는데요. 그런데 지나고 보면 아이들은 좋게 기억해 주고 선생님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주더라고요.
“선생님이 그때 애써주셨잖아요. 우리 때문에 힘드셨죠.” 이렇게 말하는 학생들을 보면 미안하고 또 정말 고마워요.
물론 힘들게 하는 학부모나 아이들도 있지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나를 믿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내일도, 모레도 늘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집필을 마친 소감과 앞으로 어떻게 교직 생활을 하고 싶나.
김미주=‘자녀 같은 책’이에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선생님과 함께 고민하며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정말 의미 있었어요. 그래서 감개무량하고 뭉클한 마음이 드는 책입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마감 맞추기 힘들다, 다시는 안 쓰겠다고 했는데 번복될 것 같아요.
강은우=모니터로만 작업하던 글이 실제 만져볼 수 있는 책으로 나와서 좋았어요. 계속 보고 작성한 원고인데도 책을 받아 읽는데 좀 울컥하더라고요. 마치 책 속에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책 속의 나는 이 길을 잘 갈 것이라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선생님들과 함께 공동으로 집필하며 제가 글로 쓰기 어려운 부분을 대신 표현해 주시기도 하고, 제가 느꼈지만 미처 말하지 못했던 점을 선생님들이 잘 말씀해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곧 출간기념회도 있는데 차근차근 일정을 잘 밟아가고 싶어요. 지금은 휴직 중이지만 교실에 대한 생각도 꾸준히 하며 묵묵히 걷다 보면 고민이 털어질 것 같아요. 또 그 과정에서 새로운 즐거움이 있으면 찾아가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루서=매주 리포트를 쓰는 기분으로 썼어요. 막상 출간할 때 책이 실물로 나온다고 생각하니 혹시 ‘내 기억이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도 됐어요. 그 정도로 제가 너무 쉽게 썼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사하게도 책에 등장하는 친구나 동료 교사들이 너무 잘했다고 얘기해주더라고요.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인데 함께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책을 쓰는 일이 제게 뜻밖의 일로 찾아온 것처럼 당장 어떤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책을 내면서 느꼈던 생각들, 즐거움을 재밌게 누리며 살아가고 싶어요.
윤미소=제 오랜 꿈을 이뤄낸 것에 기쁨도 잠시, 허탈함도 있었어요. 그만큼 진심으로 임했고 정말 20년 교직 인생을 다 녹여냈어요. 마치 저의 교직 인생의 자서전을 쓰는 것처럼 다 털어놨거든요.
이제는 새로운 챕터를 쓰고 싶어요. 이 책은 마무리됐고, 앞으로 새로운 10년을 향해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제게 주어진 일상을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려 합니다. 감사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