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2022년 기준 학업중단학생이 매년 5만여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학업 중단 학생들은 대안교육기관을 통해 기초·기본 교육을 받으며 검정고시 등을 통해 학력 인정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교육기관에서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어떤 교육을 진행하고 있을까. 또 그 안에서 학생들은 어떤 성장의 과정을 거치고 있을까. <더에듀>는 금산간디학교 아이들이 작성한 자신의 성장기록을 통해 대안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
Part. 1 “디자인 속의 나를 발견하다”
여러분께 질문 한 가지를 드리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계신가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해 항상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였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전부인 줄만 알았죠.
그런 저도 어릴 적부터 꾸준히 해 온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림이에요.
제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유치원 때였습니다. 그림으로 제가 상상하는 것을 펼쳐내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었죠.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그림이 제 재능이자 취미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 스스로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보다 훨씬 더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좌절을 겪으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정말 그림 그리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는 걸까? 아니면 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은 걸까?”
저는 지금까지 그림뿐만 아니라 사진, 조형미술, 패션 디자인, 웹 디자인 등 창작과 관련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왔습니다. 온 세상을 뒤져도 단 하나뿐인 내 것을 만든다는 것이 좋았고, 작업하는 과정도 즐거웠어요. 완성된 작품을 볼 때면 성취감과 자부심도 느꼈죠.
그러나 이제 와 돌이켜보니 창작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보다는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 칭찬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그림, 더 넓게는 창작이 내게 가지는 의미를 찾았지만,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의미에 대한 고민은 오랫동안 저를 괴롭히며 제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죠. 보편적인 미의 기준과 대중적인 디자인에 맞추려다 보니 어느새 창작을 시작한 이유조차 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활동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고,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졌어요.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한 상태로, 저는 금산간디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무렵,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순간에 몰입해 즐기는 금산간디학교 선배들과 친구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서툴지만 매일 기타를 들고 즐겁게 연주하던 한 친구의 모습은 제 기억에 깊게 남았습니다.
“왜 나는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고만 했을까? 왜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했을까?”
스스로를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던 중, 금산간디학교의 자립교과인 재봉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기본적인 재봉 기법을 배웠는데, 단순히 천을 박음질하는 것만으로 입체적으로 변하는 과정이 너무 신기했어요. 오랜만에 순수하게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죠. 저는 자연스럽게 패션 디자인에 빠져들었습니다.
저는 느린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차근차근 배워야 실력이 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활동에서는 항상 포기가 빨랐어요. 그런데 재봉실에서는 그 모든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매 순간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느끼며,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되었죠. 처음에는 손에 익지 않았던 작업들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작은 경험들이 쌓여 결과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큰 만족을 얻었습니다. 결국, 그 과정을 통해 완성된 작품은 하나의 완벽한 결과물을 만든 것 같은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재봉실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이 즐거웠어요. 그곳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오직 나만의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었죠.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밥때를 놓치는 일도 잦았어요. 하지만 배가 고파도 단 한 번도 ‘그냥 밥 먹을걸’ 하고 후회한 적은 없었습니다. 저도 그런 제가 신기했죠.
재봉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나만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문득 집에 쌓여 있는 입지 않는 옷들과 학교 곳곳에 버려진 옷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 옷들을 활용하면 더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아이디어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고민을 이어가던 중, 지구시 시간에 ‘업사이클링 의류’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어요. 버려진 자원을 재조합하거나 변형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었죠. 이후, 의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책들을 읽으며, 제 작업이 단순히 옷을 만드는 것을 넘어 더 큰 의미를 담기를 바랐어요.
저는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 업사이클링 의류 사업과 지속 가능한 의류 브랜드에 관심을 확장했고, 직접 답사를 다녀왔어요. 그리고 새로운 꿈이 생겼는데, 바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실력과 지식은 부족했지만, 사람들에게 업사이클링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은 무엇보다 컸어요. 그래서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가며 도전했죠. 처음에는 사업용 브랜드로 기획하며 큰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결국 브랜드는 단순한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축소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명확했어요. 업사이클링을 통해 환경과 연결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버려진 소재에 새로운 가치를 더할 수 있는 패션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죠. 비록 현재는 브랜드 운영을 잠시 멈추었지만, 그 꿈은 여전히 제 마음속에 남아 있어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끝은 맺지 않으려 합니다.
Part. 2 “나만의 디자인을 하다”
이제 제가 겪어온 여정을 바탕으로 만든 작업물들을 소개할게요.
첫 번째 작품은 ‘WHO. A. U 데님 오버롤’로 만든 가방입니다. 입지 않던 새 옷을 활용해 만든 이 가방은 부드러운 데님 소재와 거친 요소를 활용한 디자인이 균형을 이루어요. 오버룰 특유의 투박한 멜빵과 단추, 실밥이 풀린 듯한 프린지 기법으로 부드러움과 거침이 조화롭도록 디자인했어요.
이 작품을 만들며 부드러움과 거침의 균형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 꼭 나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자기주장을 잘 못 하는 사람이었어요. 점점 시간이 지나고 제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노력했어요. 그러나 어느 순간, 너무 제 주장만 내세우는 저 자신을 보게 되었어요. 부드러움과 단단함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죠.
이 작품의 이름은 [균형]이에요. 가방을 만들며 느꼈던 것처럼, 제 삶에서도 균형을 이루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작품이었죠.
두 번째 작품은 [균형]과 같은 재료로 만든 바인더 커버예요. [균형]이 부드러움과 거친 감각 사이의 균형을 맞추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부드러움이 거친 감각에 의해 균열이 일어나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바인더 덮개로 사용되는 커버였기 때문에 각을 잡을 수 있었고, 찢어진 청바지에서 사용하는 디스트로이드 기법을 활용해 찢어진 듯한 느낌을 만들었어요. 작은 스크래치와 멜빵의 투박한 요소들로 강렬한 느낌을 더했습니다.
저는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었어요. 때때로 사람들에게 더 차갑고 매정하게 행동하기도 했죠. 이 작품은 제 안의 작은 상처들이 커져 균열로 변해가는 과정을 표현했습니다. 마치 작은 균열들이 누적되어 더 크게 번져가는 것처럼, 감정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크게 드러나는 과정을 담고 싶었어요.
그 과정이 담긴 이 작품의 이름은 [균열]입니다. 더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지도, 주지도 않겠다는 제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죠.
세 번째 작품은 [H&M 흑청바지]로 만든 바지입니다. 저는 일상에서 쉽게 녹여낼 수 있는 디자인을 목표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 작품은 너무 디자인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된 '작품'이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디자인 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바지예요.
흑청바지에 다른 색의 청바지를 덧붙여 통을 넓히고, 그 안에서 색상의 대비를 강조하려 했어요. 빛과 어둠이라는 주제를 통해 작업을 시작했죠.
보통 사람들은 빛과 어둠을 흑백으로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 대비를 흑백으로 표현하지 않았어요. 빛과 어둠의 대비는 마치 사람들이 내면에서 겪는 갈등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두 색 대신, 두 색이 섞여 나오는 회색을 메인 색으로 사용했습니다.
저에게 빛과 어둠은 너무 극명해요. 밝고 즐거울 때도 있지만, 한순간에 침울해지고 어두워지죠. 그 균형을 맞추려 애쓰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빛나고, 반대로 어둠은 밝은 빛을 삼켜버리기도 해요.
‘대비’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개념이에요. 이 개념을 빛과 어둠에 빗대어 표현하면서, 간결하면서도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승화시키려고 했어요. 블랙진과 그레이진의 대비를 활용해 간결하면서도 트렌디한 요소를 담은 이 작품의 이름은 [대비]입니다.
마지막 작품은 세트 의류로 구성되어 있어요. 세트인 만큼 많은 재료가 활용되었지만, 메인으로 사용된 재료는 화이트진이었어요.
색이 바랜 화이트진을 다시 활용하려고 염색을 시도했지만, 예상치 못한 실패로 심한 얼룩이 생기고 말았죠. 상실하고 있던 와중 다시 본 바지는 다채롭고 자연스러운 패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동안 사용해 왔던 방식이 아닌, 저만의 방식을 사용했어요. 바로 계획 없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실현해 보는 방식이었죠.
저는 원래 계획을 세우지도, 지키지도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 졸업 작품을 시작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정해진 틀 안에서만 움직이려 했죠. 그러다 보니 즐거움을 느끼기 힘들었어요. 작은 실수에도 큰 죄책감을 느꼈고요. 그래서 마지막 작품에서는 원래의 내가 되어 자유롭게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푸른색, 주황색, 갈색, 흰색 등은 저에게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색들이었어요. 천에 있는 패턴은 일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죠. 비가 온 후 흙탕물이 섞여 있는 호수와, 희뿌옇게 안개가 낀 숲, 파란색의 모르코 나비가 떠올랐습니다. 간단한 컨셉 디자인과 디자인 스케치가 끝난 후, 바로 작업에 들어갔어요.
계획 없이 작업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시간이 오래 걸렸죠. 하지만 전혀 틀 안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움이 저를 즐겁게 만들었어요.
이번 작품의 이름은 ‘흐름’을 뜻하는 ‘flow’와 과정을 의미하는 ‘-ing’을 결합하여 ‘FLOW:ing’이라고 붙였어요. 이는 ‘흐름의 상태’ 또는 ‘몰입의 상태’를 의미하죠.
이 작업은 실용성보다는 예술성을 중심으로 두고 진행했어요. 재봉 마네킹과 핀을 활용해 계속해서 변하는 자연의 움직임을 표현하려 했죠. 또 업사이클링 의류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제게 1년간의 개인 졸업작품 과정은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마주 하고 싶지 않았던 저 자신과 마주하며 이를 극복해 나가는 시간이었죠.
part. 3 “나를 보다”
저는 항상 결과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외면하고, 제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죠.
처음에는 단순히 칭찬받는 것이 좋아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돌아보니, 그것은 제가 제 노력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했기에 자존감을 채우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음을 깨달았어요.
결과만을 쫓던 저는 그동안 작업의 본질적인 즐거움과 과정속에서 얻을 수 있는 배움을 놓치고 있었지만, 이번 개인졸업작품 과정을 통해,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서 느끼는 성장과 깨달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어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실패는 더 이상 저를 괴롭게 만들지 않았고, 오히려 저를 성장하게 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제 졸업작품은 화려하거나 완벽한 결과물을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대신 저만의 색을 찾아가려는 진심 어린 노력이 담긴 작품을 보였죠.
이번 과정은 앞으로 ‘오민경’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부족한 점도 많지만,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했던 노력과 배운 점들이 앞으로의 저의 여정에서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제 여정이 담긴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발표를 마치며.
모두들, 지금 당장은 결과가 없어도, 그건 더 멋진 결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을 믿으며 살아가길 바라요. 제 개인졸업작품을 위해 수고해 주신 모든 선생님과 16기, 17기, 그리고 함께 고생한 사랑하는 15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