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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아이들 성장 기록] 김휘동 학생, 친구와 부모님에게..."너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았나 봅니다"

유화로 표현한 내 마음

더에듀 | 2022년 기준 학업중단학생이 매년 5만여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학업 중단 학생들은 대안교육기관을 통해 기초·기본 교육을 받으며 검정고시 등을 통해 학력 인정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교육기관에서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어떤 교육을 진행하고 있을까. 또 그 안에서 학생들은 어떤 성장의 과정을 거치고 있을까. <더에듀>는 금산간디학교 아이들이 작성한 자신의 성장기록을 통해 대안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그림으로 주제를 잡은 이유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4살 무렵, 머릿속의 상상이 종이에 그려진다는 게 신기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아요. 여느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것을 좋아해 어릴 때 그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움직이는 사물을 그렸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도 그리는 것이 좋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학원을 다니기도 했지요.

 

나에게 그림은 다른 아이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이었고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죠. 답답하거나 심심할 때도 자주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하지만 끈기가 부족했거나 아니면 그림보다 친구들이랑 노는 것이 더 좋고 재미있어서인지 미술 학원을 다니다가 그림에 흥미를 잃고 중학교 입학 후 3학년이 될 때까지 그림을 한 점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낙서조차 하지 않았어도 내 마음에 있던 것은 언제나 미술이었던 것 같습니다. 논문의 주제를 정하려고 긴 시간 고민을 하면서 처음엔 목공으로 하려고도 생각했지만 결국엔 그림 그리는 내 모습에 멈추어 서게 되었습니다. 그림으로 주제를 정하고, 어떻게 그림 그리기라는 논문에 내 마음을 담아낼지 고민을 수없이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유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여름 방학 때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뭉크 전시회를 방문, 유화 작품들을 보고 온 다음부터는 유화라는 장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뭉크 전시회에서 본 그림들은 하나같이 강렬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감을 층층이 쌓은 입체감과 여러 번 덧칠해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 보이는 유화만의 특징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표현하려 하는 것들을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고 또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와닿을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유화밖에 없는 것 같아 그 많은 그림 장르 중 유화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내 고민이 나오기 까지


‘그림 그리기’로 논문을 쓰기로 결정한 후 첫 작업은 나 자신과 내 감정을 유화로 표현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고민, ‘난 뭘 좋아하지’, ‘내 성격은 어떠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 등등 나를 표현하기 위해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 방학 때 한예종 회화과 송준하쌤 인터뷰를 할 때였어요.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그림을 그리냐는 질문에 송 쌤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답을 주셨는데요. 이 답은 제가 논문 주제를 다시 구체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터뷰 이후에 ‘나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니, 내가 올해 가장 많이 고민한 것들이더라고요. 그것은 ‘친구관계’와 ‘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친구관계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해 논문에 담기로 했습니다.

 


친구관계


지금까지 금산간디학교를 다니면서 친구관계에 대해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애초 친구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평생 갈 친구들과 함께 잘 지내겠다는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중학교에 입학해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 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겠지’, ‘필리핀 이동학습에 가면 좁은 곳에서 늘 함께 생활하니 자연스럽게 친해질 거야’, ‘졸업하면 그만이고 어차피 볼 사람만 보겠지’라는 생각으로 친구 관계에 신경 쓰지 않았고 노력하지도 않았었습니다.

 

9박 10일의 도보기행을 다녀오고, 필리핀 이동학습도 다녀왔지만 우리가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 3학년이 되어 점점 졸업할 시간이 다가오자 ‘졸업하고 나서 동기들을 다시 못 보면 어쩌지?’, ‘연락이 되지 않아 그냥 헤어지면 어쩌지?’라는 걱정과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이런 고민을 나눌 기회는 많았지만, 서로 비슷한 생각들을 가슴에 품기만 한 채 누구도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동석쌤이 3학년 담임을 맡으신 후로 “너희는 왜 이렇게 개인적이냐”, “바로 옆에 있는 친구도 챙기지 않는 것 아니야?”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뮤지컬 주간에 연범쌤도 하셨던 말이기도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15기가 뿔뿔이 흩어져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나니 3년간 15기들이 더 친해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이런 고민들을 왜 진즉에 알아차리지 못했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지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15기가 너무 개인적이고, 비활동적이며, 그저 빨리 학교를 떠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나의 고민을 담임쌤과 나눴습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이러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았고, 나 혼자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초조하고 불안해졌습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을 때, 15기와 라이프 스토리를 할 기회가 생겼어요. 친구들에게 조금 더 서로를 생각하고 진심으로 위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솔직한 바람을 이야기했고, 좀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자고 이야기했어요.

 

지금까지 친구들과 이야기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런 자리를 만들 용기가 나지 않았고 친구들이 먼저 행동에 나서주길 기다리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라이프 스토리를 하고 나서 늦었지만 이번 학기 목표를 정했습니다. 아침에 모두에게 매일 인사하기, 안 친한 친구들과 한 마디씩이라도 대화를 시도하며 가까워지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이렇게 소소한 것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이런 나의 15기에 대한 생각을 담은 작품으로 우리 15기가 더 뭉쳤으면 좋겠는 바람과 동기 친구들을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중간에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는 우리를 묵묵하게 잘 받쳐주고 도와주시는 두 분의 담임선생님을 의미하며, 하늘의 수많은 별은 우리가 1학기 때 정했던 ‘15기는 구상성단’이라는 슬로건을 의미합니다. 서로 떨어져 있는 별들은 각자만의 별자리로 크게 한 공동체 안에서 자기 만의 빛깔을 내는 것을 표현하였습니다.

 

각자의 개성을 은은하게 내보이면서 뭉쳤을 때 더 큰 빛이 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우리 15기 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가족이란?


다음으로는 또 다른 내 고민이었던 가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 보면 ‘나에게’ 가족이란 무조건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고, 죄송하며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집니다.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부모님께도 하나뿐인 내가 더 각별하고, 형제 없이 자란 나도 부모님에게 많이 의지하게 됩니다. 이런 점들이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게 하고, 서로를 더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에게 나라는 존재는, 아마 공부를 잘해야 한다거나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야 한다기 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바라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금산간디를 온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부모님은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갖고 평생을 사신 분들일 거에요. 나에게는 당신들이 살아오신 길과 똑같은 길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자유롭게 살길 바라고 계신 것 같아요. 그래서 일반 학교에서 강요된 공부보다 다양한 경험과 여유로움 속에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길 원하고 있으시다고 생각해요.

 


심란한 마음


내가 아주 어릴 때 엄마 건강에 이상이 생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 잘 몰랐고, 어느 정도 크고 나서 엄마가 아팠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도 다른 친구 부모님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커가면서 ‘엄마가 다시 아프시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마음속에 항상 자리 잡게 되었고 그러던 중 1학년 겨울, 엄마 건강이 다시 안 좋아지셨다는 말을 듣고 나서 마음속에 있던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엄마는 심장 관련 건강문제를 가지고 계신 데 다른 큰 병들처럼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지속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이 그림은 제 1학년 때의 그런 불안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담은 것입니다.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나서의 심란한 마음과 생각들을 계속 밀려오는 파도들로 표현했고, 내가 어떻게 해드리고 싶지만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답답함과 무력함,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을 꽉 막히고 어두운 하늘로 표현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감정들을 이 그림에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는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걸까?’ 하고 자책을 하기도 했고, 이런 상황을 알고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학교를 잘 다니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과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오기도 했었습니다. 기도밖에 하지 못하는 저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고, 엄마에게도 미안해졌었습니다.

 

난 지금까지 엄마를 다른 한 사람이 아닌 내 ‘엄마’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엄마의 다른 면들은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엄마도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텐데 나는 나만 생각하고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엄마 건강에 다시 문제가 생기자 이제야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늦었다면 늦은 것이고 빠르다면 빠른 것이지만 이 계기로 앞으로는 가족과, 부모님과 더 많은 추억을 쌓으며 지내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미래를 표현하려고 그렸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어쩌면 내가 가족을 그냥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5~6학년 때 부모님과 갈등이 있었고 좀 멀리하려 했습니다. 엄마는 나에게 책을 읽히고 싶어 하셨고 나는 놀고만 싶었습니다. 다른 아이들 부모님과 비교해서 더 나이가 많은 것은 부끄럽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가족은 내가 힘들 때, 슬플 때, 무너질 때 등 모든 순간에 무조건 내 편입니다. 그래서 지금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 추억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림에서 보이는 하늘과 구름은 나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요소로, 가로수와 쭉 뻗어 있는 길은 나에게 안정감과 미래를 상징합니다. 또한 중간에 있는 집은 포근한 느낌이 드는 빨간색으로 칠해 나에게 화목함이라는 느낌을 주는 요소들과 결합해 표현하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부모님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 스스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해나가고 가족들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 간다면 우리 가족이 앞으로 더 화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끼는 가족과 함께 먹기, 매일 아침 인사 하기, 오늘 어땠냐고 안부 물어보기,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표현하기, 생일 챙겨드리기 등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3학년 생활 중 가장 큰 고민거리는 친구들과 가족이었습니다. 논문을 쓰며 처음에는 내 고민을 꺼내, 글과 그림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해야 한다고 하니 사실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고민들을 더 깊이 들어가 생각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다른 것으로 주제를 잡았다면 3학년 생활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안일하고 가볍게만 여겼던 친구 관계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고 또한 더 끈끈한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작은 움직임을 실천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3학년 생활 중 정말 큰 고민이었는데 해결되어 좋습니다. 우리는 더 뭉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가족은 힘들었던 내 마음과 생각들을 그림에 담아 위로할 수 있어서 정서적으로 많은 위안이 되었고, 아직도 가족들과 사람들 앞에서 마음을 표현한다는 게 어색하고 부끄럽지만 하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졌으며 마음들을 조금씩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림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이유도 어느 정도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좋아하긴 했지만 잠깐 스쳐 지나간 취미로만 여겼던 그림이 깊은 내면의 이야기 소재로서 친구들과 가족들을 다시금 깊게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어 소중한 취미로 남게 되었습니다.

 

나는 세상을 보고 싶은 것만 봤나 봅니다. 늘 해 주는 밥을 먹고, 주는 사랑을 받고, 내게 필요한 것들은 당연히 받을 수 있다 생각했던 자신이 지금은 부끄러워집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힘들고 쉽지 않지만 이제부터는 표현하면서 살아야지 다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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