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디지털 기기가 아이들의 일상과 교육의 중심에 자리 잡은 시대, 부모의 디지털 리터러시는 자녀의 건강하고 균형 잡힌 디지털 생활을 위한 필수 역량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는 자녀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허용하거나 통제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고, 디지털 기기 과용, 중독, 부적절한 사용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더에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부모의 역할 재정립을 위해 ‘디지털리터러시협회’(CDL)와 '부모를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연재를 시작 ▲자녀의 디지털 기기 관리법 ▲디지털 활용 학습법 ▲디지털 시대 자녀의 진로 교육법 ▲디지털 디톡스 실천법 등 부모가 알아야 할 핵심 내용을 소개한다.
디지털 시대 진정한 조력자가 되고싶은 부모들에게 꼭 필요한 나침반이 되어 자녀와 부모 간 신뢰와 소통을 강화하고, 자녀가 디지털 기술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디지털 세상에서도 홍익인간의 가치를 실현하는 인재 양성의 꿈을 꿔본다. |

“엄마, 이모부한테 카톡 왔어요.”
“뭐라고 왔어?”
“애니팡 하재요.”
한때는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가족과 친척들이 가득했고,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마다 삼촌, 이모의 ‘좋아요’가 달렸다. 처음 스마트폰을 사줬을 때만 해도 온 가족이 함께 디지털 공간을 공유하며 소통하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가족의 메시지를 읽지 않거나 답하지 않고, SNS에서는 부모와 친척을 차단하기 시작한다.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만들어 부모 몰래 활동하거나, 단체 채팅방에서는 말없이 빠져나가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부모는 당황스럽다.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혹시 뭔가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이대로 아이와 멀어지는 건 아닐까?’
이 낯선 거리감 앞에서 부모는 고민에 빠진다.
‘아이의 디지털 프라이버시, 어디까지 존중해야 할까?’
많은 부모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아이의 심리는 나이에 따라 달라지고, 그에 따라 디지털 공간이 갖는 의미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생 시기까지, 아이들은 자아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형성하기 시작하며, 친구 관계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커진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디지털 공간은 단순한 오락이나 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실험하고, 또래와 관계를 맺으며, 자율성을 확인하는 ‘심리적 방’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독일 출신의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H. Erikson)은 청소년기를 ‘정체성 대 역할 혼란’의 시기라고 보았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그 여정을 부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시도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디지털 공간에서만큼은 자신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려는 마음이 강해진다.
그런데 이 디지털 공간에 부모가 무단으로 들어가려 하거나, 사소한 것까지 간섭하려 들면, 아이는 자신의 영역이 침해당했다고 느낀다. 이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건강한 심리적 반응이며 성장의 일부일 수 있다.

부모가 무심코 던진 “친구들 카톡엔 바로 답하면서 왜 엄마 카톡은 씹어?”, “SNS 자주 하는 것 같은데 왜 엄마 SNS에선 너의 게시글이 안 보여?” 같은 말이 아이에게는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침범당했다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때, 아이는 심리적 방어를 위해 더 단절된 방향으로 행동하거나, 디지털 공간에서 부모를 철저히 차단하려 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부모가 자녀를 통제하려는 마음만 있는 건 아니다. 많은 경우, 자녀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지만, 접근 방식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메이 르윈(May Lwin)은 ‘부모가 자녀의 디지털 활동을 지시적 또는 제한적으로 감시할수록, 청소년은 부모에게 자신의 온라인 활동을 숨기고 회피 전략을 사용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라고 지적한다.
반면, ‘자녀와의 대화를 통해 기준을 함께 세우는 방식. 즉 ‘능동적이고 소통 중심의 개입’은 오히려 자녀가 디지털 공간에서도 부모를 신뢰하며 솔직하게 소통하게 만든다’라고 한다.
이러한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부모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할수록, 아이는 자신만의 세계로 숨고, 부모로부터 멀어진다. 반면, 아이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함께 원칙을 만들어 가는 대화 중심의 접근은 아이에게 신뢰의 기반을 만들어 주고,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길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녀를 전적으로 믿고 완전히 내버려 두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디지털 공간은 자유로운 만큼 위험도 많은 세계이다. SNS를 비롯한 디지털 생활 속에는 아이들이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수많은 위험 요소가 숨어 있다. 개인정보 노출, 사생활 공유로 인한 2차 피해, 저작권 침해, 무분별한 콘텐츠 소비, 온라인 괴롭힘 등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위험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다.
물론 학교에서도 디지털 윤리나 정보보호 교육을 한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이를 시험 과목이 아닌 ‘딱딱한 이론’으로 받아들이기 쉽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정에서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부모는 아이의 디지털 생활을 통제하는 감시자가 아니라, 함께 원칙을 만들어 가는 동반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나 SNS 계정을 처음 만들 때 함께 사용하는 원칙을 정하고, 실제 사례를 함께 찾아보며 위험 상황을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다. 아이가 만든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고, 저작권이나 표현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해 보는 것도 하나의 교육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지 마’라는 금지보다, ‘왜 그런 선택이 중요한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태도이다. 대화를 통해 기준을 함께 세우는 과정 자체가 교육이며, 그것이 아이가 스스로 올바른 디지털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결국, 아이의 디지털 프라이버시는 어디까지 존중해야 할까?
‘아이의 스마트폰을 절대 들여다보지 않는다’도, ‘언제든 확인할 수 있도록 감시한다’도 정답은 아니다.
자녀의 연령, 디지털 경험, 책임감 수준에 따라 다르게 접근하되, 핵심은 신뢰를 바탕으로 ‘조율 가능한 존중’을 실천하는 것이다.
프라이버시 영역은 인정하되, 가족 간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은 반드시 함께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사용 시간이나 비상시 연락 원칙처럼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약속을 만드는 것이다. 초등 고학년 시기에는 부모의 안내가 더 필요할 수 있고, 중·고등학생이 되면 자율성을 조금 더 보장하되, 정기적으로 상황을 함께 점검하고 대화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프라이버시는 곧 자율성이고, 자율성은 책임과 함께 자란다. 아이의 디지털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것은 그들의 성장을 돕는 일이다.
디지털 시대의 부모는 기술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대화자여야 한다. 때로는 ‘기다림’이 가장 좋은 통제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