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교육자로 24년의 시간을 보내며 학생, 동료교사와 많은 일을 함께 했다. 과학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이다.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홍제남의 진짜교육’을 시작한다. |
“당신은 사랑하는 청소년 자녀에게 자동차키를 주시겠습니까?”
2024년 9월 서울교육감보궐선거 민주진보진영 후보경선 토론회가 있었다. AIDT(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주제 토론 때 예비후보였던 본인의 시작 발언이었다. 아마 청소년 자녀에게 자동차키를 넘겨줄 부모는 없을 것이다. AIDT는 청소년의 자동차운전에 비유될 만큼 청소년 건강에 위험하다.
정부는 AIDT를 막무가내로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을 펴고자 하는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AIDT에 대해 교육주체들은 교사 88%, 학부모 70%가 반대하고 있다.1) 국회는 이런 교육계의 의견을 수용하여 지난해 12월 26일 AIDT를 ‘교과용 도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규정한다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에 반대하여 재의요구권을 행사하기로 당·정협의를 마쳤고 오는 21일 국무회의에서 안건으로 다뤄질 예정이라 한다.
운전면허 취득 가능 나이가 우리나라는 만 18세이고 해외도 대부분 만 16세를 넘어야 한다. 신체적으로 성인 못지않은 청소년들에게 자동차운전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바로 청소년의 특징 때문으로 이는 청소년 시기 뇌의 발달단계와 관련이 있다. 청소년 시기의 뇌는 급속하게 발달하는 단계로 미완성상태이며 불안정하다. 그 정점은 단연 ‘중2병’까지 언급되는 시기인데 청소년들 스스로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한다.
본인은 중학교 과학교사로 근무했는데 고2, 고3이 되어 찾아온 제자들 말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말썽꾸러기였던 학생들이 “선생님 중학교 때 정말 죄송했습니다. 저도 그때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하면 잘 모르겠는데 정말 죄송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학생들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에 따른 것이라 무작정 학생들을 나무랄 수는 없고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뇌에서 사람의 감정적 변화를 담당하는 변연계와 의사결정과 행동을 통제하는 전두엽의 발달속도가 달라서 나타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중2병의 원인은 호르몬이 아니라 뇌 때문이다. 본능에 관계된 부분이 먼저, 이성을 관장하는 부위가 나중에 발달한다. 이마 맨 앞쪽에 있는 전전두엽은 계획·이해·반성·이성적 생각 등 고차적 사고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제일 진화된 부분인데, 가장 늦게 성숙한다. 뇌 안쪽에 자리한 변연계는 감정적 반응 및 정서·동기를 담당하며 청소년기에 완성 단계에 이른다. 변연계의 일부인 편도체는 즉각적이고 강렬한 감정·분노·공포·공격성·흥분 등을 처리한다. 변연계는 전두엽이 성숙하기 전까지 의사결정과 행동을 지배한다.
사춘기 뇌는 편도체에 비해 전전두엽이 미성숙하다. 편도체와 전두엽의 발달속도 차이에 의한 불균형이 충동적인 행동, 공격적인 성향을 초래한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고 감정조절을 못해 예측할 수 없게 흥분하고 쉽게 좌절한다. 무엇에든 잘 빠져들며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청소년은 몸은 성인이지만 두뇌는 아직 미숙하고 전전두엽과 변연계의 연결은 완전하지 않다.”2)
변연계와 전두엽의 성숙도 차이가 클수록 감정적, 충동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져 사고위험도(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운전 가능 나이를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를 피하도록 정한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기기 등이 가진 강한 중독 가능성을 생각하면 스마트폰 사용 또한 자동차운전과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는 “스마트폰은 자동차키와 같다”며 청소년 시기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두 아이를 기르는 본인도 이런 점을 고려해 사춘기를 지나 스마트폰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해 어릴 때부터 미리 이야기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졸랐는데 조목조목 설득해 중2 때부터 2G폰을 사용하고 고등학교 수능시험을 마친 뒤에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스마트기기 활용 정도가 청소년의 발달에 미치는 학술연구결과도 “전통적인 활동, 즉 스포츠 활동이나 독서는 청소년의 감성 지능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반면, 스마트 기기의 사용은 청소년의 감성 지능 발전에 저해 요인이 된다”고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3)
어린 학생들이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는 문제는 학습 효율성과 청소년 인권 차원보다 먼저 청소년의 안전측면을 검토해야 한다. 과학적으로 사람의 신체발달단계를 고려해 청소년 건강을 최우선으로 교육적 차원에서 결정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어린이·청소년 시기에 스마트기기 사용문제는 규제가 엄격하며 점차 더 강화하고 확대하는 추세이다. 프랑스 정부는 2018년부터 인터넷과 연결되는 스마트기기를 학교에서 사용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24년 9월부터는 법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200개 중학교에서, 2025년부터는 전국적으로 물리적으로 ‘디지털쉼표’를 시행하기로 하였다. 이 조치에 대해 담당 장관은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청소년의 건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디지털 쉼표’에 참여한 학교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오고 있다. 학생들이 학습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유럽 곳곳에서 휴대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규제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데, 영국 정부는 2024년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도록 지침을 내려 대부분 학교에서 이 조치가 시행 중이다. 이어서 이 지침은 ‘더 안전한 전화 법안’으로 제출되었는데 이 법안은 모든 학교가 ‘휴대전화 없는 지대’가 돼야 한다는 법적 의무를 담고 있다.4)
유럽 외에도 미국이나 대만 등 많은 나라가 비슷한 차원에서 청소년 스마트기기 사용문제를 바라보면서 스마트기기 사용을 법적, 물리적으로 제한하는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청소년 스마트기기 중독문제는 이미 매우 심각하다. 그런데 정부는 교육계의 높은 반대 목소리와 전 세계적인 흐름과 반대로 스마트기기를 종일 사용해야 하는 AIDT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교육당국이 교육정책 결정에서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어린이·청소년 시기의 심신의 건강을 지키고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학습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AIDT를 반대하는 여러 교육적 논거 중에도 가장 큰 이유인 까닭이다.
1) 한국교육신문(2024.8.8.). ‘AIDT 도입 동의’ 교사 12%, 학부모 30%. https://www.hangyo.com/news/article.html?no=102319 2) 자유일보(2023.5.22.). 중2병은 호르몬 아닌 뇌 때문. https://www.jay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606. 3) 권미란(2014). 스마트 기기 사용 시간과 스포츠 활동 시간이 청소년의 감성지능에 미치는 영향. 한국인터넷방송통신학회 논문지 14(1). 211–217. Web. 4) 한경(2024.10.28.). "내년 9월부터 초·중학교 스마트폰 금지"…프랑스 '초강수'.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102846347. |
홍제남 = 강원도의 농부 집안에서 7녀 1남 중 3녀로 태어났다. 춘천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에 진학했으나 광주학살을 접하고 교육에 배신감을 느꼈고 학생운동에 뛰어 들었다. 이후 서울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며 2000년 마침내 과학교사로 임용된다.
2011년 서울 오류중학교에서 혁신부장을 맡아 혁신학교 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했으며, 2019년에는 오류중학교 공모교장이 된다. 2024년 2월 서울남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으로 명퇴하며 그는 "정치적 천민에서 탈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같은 해 8월 서울교육감 보궐선거에 예비후보로 등록, 민주진보진영 단일 후보 최종 경선까지 치렀으나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현재 '다같이배움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교육혁신을 주제로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교육정책전문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과학 톡톡 카페(공저, 2009),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학교혁명(공저, 2018), 교장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2024) 등이 있다.
홍제남 소장은 <더에듀> 연재를 결심하며 "교육자로서 24년의 시간을 보내며 학생, 동료교사와 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며 "이 중 ‘교육다운 교육’, ‘진짜 교육’을 만드는 일을 학교 차원에서 집단지성으로 실천한 혁신학교 실천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학생, 교사, 보호자, 지역사회가 온전한 교육 주체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실천했다"고 평했다.
또 "과학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며 "이 과정에서 교육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은 교육이 교육의 논리가 아닌 신자유주의적 정치적 이해집단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라며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