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교육자로 24년의 시간을 보내며 학생, 동료교사와 많은 일을 함께 했다. 과학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이다.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홍제남의 진짜교육’을 시작한다. |

12.3 계엄 이후 ‘윤석열’에 대한 분석들이 쏟아졌다. 강조하는 부분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현재의 학교 교육으로는 또 다른 ‘윤석열’을 만들어 낼 것이라 쓰고 있다. 대체로 아래와 같은 논조와 주장이다.
최근 전남교육통에 실린 ‘괴물을 낳고 만 교육제도여!’라는 제목의 기사 일부이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의식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지금의 교육은...(중략)...경쟁에서 이기는 법과 성적 중심의 평가만을 강조하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인간다움, 책임, 배려, 공감, 연대, 비판적 사고, 협의와 같은 중요한 가치를 배우지 못한다. 이는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 내는 토양이 될 뿐이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얼마 전 열린 한 토론회에서 “한국 교육은 파시스트 교육”이라고 지적하며 “한국에서 12년 교육받으면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되는 게 아니라 잠재적 파시스트가 된다”고 말했다. 12년을 언급한 걸 보면 초중고 교육과정을 말한 것이리라.

이런 평가를 보면서 나는 현재 우리 교육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왠지 불편하다. 학교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교육을 위해 매일매일 실천하는 교육자라면 일정 정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학교 교육을 ‘지나치게 악마화’하고 ‘괴물을 길러내는 온상’인 것처럼 여기는 듯해 이들을 대표해 학교 교육을 변론하고 싶다.
12.3 계엄으로 우리 사회가 받은 충격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80년대에 대학 생활을 하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그 결과 많이 민주화가 되었다고 생각해 오던 필자 또한 큰 충격을 받았다. 더불어 교육자로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괴물 윤석열’이 나타난 근본적 원인이 초중등 학교 교육이고 현재 학교 교육이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 내는 토양이자 잠재적 파시스트를 길러내는 ‘파시스트 교육’이라는 주장에는 허탈감과 함께 억울한 마음마저 든다.
필자 또한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모르지 않는다. 오히려 책상에서 교육정책을 주무르고 연구하는 그 누구보다 현재의 문제점과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교사가 된 이후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실천해 온 이유이다.
한 가지 묻고 싶다. 만약 윤석열처럼 ‘괴물 같은’ 사람이 검사가 되지 않았다면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지 않았을까?.
윤석열은 사법고시에 9수 만에 합격했다. 9수 합격에 도전 의지와 끈기 등을 높게 평가하기도 하지만 의지가 있더라도 모든 사람이 이렇게 긴 시간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9번이나 시험을 치를 여건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느긋하게’ 10여 년의 세월을 먹고 살 걱정 없이 시험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소수의 특권층 금수저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검사 윤석열, 그리고 ‘괴물 윤석열’을 만든 것은 그의 이런 9수가 가능한 우리 사회실태가 근본적 문제이다.
출발점부터 공정하지 않은 사회, 갈수록 계층 간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는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괴물 윤석열’을 만든 가장 근본적 원인이다.
12.3 계엄 이후 탄핵을 찬성하는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집회에 참석하며 점차 달라지는 새로운 집회문화가 너무나 신선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젊은 2030 청년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다. 다양한 응원봉, 신나는 노래와 흥겨운 춤은 80년대 시위 문화를 거쳐온 필자로선 정말 새로운 장면이었다. 이제는 이 멋진 청년들이 우리 사회를 잘 이끌어 가겠구나 하는 믿음에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멋지고 바른 상식을 가진 새로운 세대를 길러낸 곳은 어디인가? 이들도 12년간 우리나라 학교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들이다.
학교는 사회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로 인해 여러 제약을 받고 있다. 틀에 짜인 국가교육과정부터 학교를 오히려 힘들게 하는 교육정책과 지식 위주의 경쟁적 입시까지 여러 문제가 산재해 있다.
그러나 학교는 이러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진 미래세대를 길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개별 학교 현실에 맞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학생들의 삶과 연계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의 존재 이유인 학생이 학교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학생주도수업과 학생자치 활동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이런 학교문화 속에서 ‘키세스 시위대’인 청년들이 자라난 것이다.

12년 초중등 학교교육은 오히려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도 정의롭고 상식적 의식을 가진 건전한 민주시민을 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도 무슨 문제만 생기면 가장 손쉬운 처방전으로 ‘동네북’처럼 학교 교육을 탓하곤 한다. 그 후폭풍으로 학교에는 온갖 처방전과 공문들이 넘쳐나서 더 힘들어지기 일쑤이다.
교육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고 해결할 수 있는 일반인인 교사들은 여전히 정치적 기본권도 없는 ‘정치 천민’ 신세이다. 역량 있는 교사라도 국회 교육위원회에 들어가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이런 비상식적이고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구조가 ‘괴물 윤석열’을 만들어 낸 가장 근본적 원인이다.
학교는 이런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여러 제약 속에서도, 여전히 평등과 자유의 가치를 가르치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소중한 성장공간으로서 그 소임을 다하고 있다. ‘키세스 시위대’의 출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키세스 시위대 = 2025년 1월 초,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를 촉구하며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지칭하는 별칭이다. 당시 시위대는 한파와 눈 속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두른 은박 담요 모습이 마치 은박지로 포장된 초콜릿 브랜드 '키세스'를 연상시켜 '키세스 시위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