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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남의 진짜교육] 교육정책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①너무 다른 두 학교, 교육청의 책임

더에듀 | 교육자로 24년의 시간을 보내며 학생, 동료교사와 많은 일을 함께 했다. 과학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이다.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홍제남의 진짜교육’을 시작한다.

 

 

3월 학교가 개학했다. 그런데 개학 후 가까이 같은 지역에 있는 두 학교 모습이 너무 다르다. 한 학교는 학생 수가 넘쳐나서 교실당 대여비 1억이 넘는 예산을 들여 모듈러 교실을 추가 설치해야 했고, 다른 한 학교는 학생 수 부족으로 남아서 잠겨있는 공간이 넘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두 학교 모두 교육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3월 첫 주에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개교한 지 10년 된 이 학교는 학생 배정에 대한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안 그래도 작은 운동장 한편에 다시 모듈러 교실을 추가로 설치했다.

 

교장선생님은 “1년 대여비만 7억이 넘어요”라며 “교실만 있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특별실, 운동장, 여유 공간 등등 다 추가로 필요한데 학교가 너무 공간이 없고 학생 밀도가 너무 높아서 걱정이에요” 하고 한숨을 쉬었다.

 

비좁은 학교환경은 제대로 된 교육활동을 진행하기 어렵고 학생들의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진다.

 

학생 수가 적은 학교는 또 다른 차원에서 어려움이 크다. 교육활동의 역동성은 크게 낮아지고 교사 수도 같이 줄어들어 개별 교사당 업무가 폭증한다. 모든 학교가 학생 수와 무관하게 학교 업무 꼭지는 같기 때문에 적은 수의 교사가 많은 업무를 나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화장실 갈 새도 없을 정도로 수업과 업무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 상황에서 교사들은 정체성에 깊은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작은 학교는 교사들도 기피하는 학교가 되어 경력교사 비중이 낮다.


아파트 단지에 장악 당한 학교


필자가 교장 임기 동안 교육청에 지속해서 해결을 요구한 것이 학생배정 불균형 문제였다. 근처의 두 학교 모두 통학이 가능한 학교인데도 학교 위치에 따라 학생 수 차이가 2~3배 이상 너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주요 요소는 아파트단지 여부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학교의 전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서울을 보면 가장 큰 원인은 학부모 민원으로 시작된다. 주택단지였던 곳이 재개발사업으로 아파트가 들어서면 학부모 민원에 따라 학생 배정 학교가 달라지기도 한다. 필자가 근무한 오류중학교도 그런 일이 일어난 대표적인 경우이다.

 

2010년경 주택가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새로 입주한 학부모들은 통학의 어려움을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우며 다른 학교 배정을 요구했다. 이때 교육장실을 점거하고 며칠씩 농성을 벌였는데 지역의 의원들 또한 같은 입장으로 교육청에 압력을 행사했다. 결국 교육청은 학생배정 학부모 민원에 굴복했다. 그 후 마을버스 노선을 신설해 통학문제를 해결했음에도 여전히 학생 배정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2019년 교장으로 다시 오류중에 온 후 교직원과 학부모 서명, 교육청 간담회, 지역의원 간담회 등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 결과 2019년 말 지역교육청은 내년에는 학생을 추가로 배정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2020년이 되니 약속했던 담당자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없고 새로운 담당자는 잘 모르는 일이라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 후에도 시교육청은 지역교육청 결정사항이라 하고, 지역교육청은 시교육청 지침이 필요한 일이라며 미루어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말았다. 학생배정업무는 담당부서인 교육청 행정지원국에서도 가장 기피하는 업무로 민원발생이 일어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내 새끼 지상주의


2023년 서이초 사건 때 소설가 김훈은 ‘내 새끼 지상주의’라는 용어로 우리나라 학부모 민원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내 새끼 지상주의’는 계층의 차이가 없이 고루 퍼져 있지만, 부유층 밀집 지역의 ‘악성 민원’이 더욱 잦고 사납고, 위압적이라는 일선 교사들의 고백은 이들을 행세하게 하는 부(富)의 천민성을 증언하고 있다.

 

사실, 이 ‘내 새끼 지상주의’는 이 나라 수많은 권귀(權貴)들에 의해 완성됐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온 고위 공직자 후보들은 너도나도 그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내기 위해 실정법을 위반해 가며 학원 좋고 학군 좋은 동네로 거듭 위장 전입을 해왔는데, 이 정도 범죄는 매우 경미한 사안이다.(중앙일보. 2024.8.4.)

 

김훈은 내 새끼 지상주의가 사회관계망 전체를 뒤흔들어 버릴 지경이 된 데에는 권력 위에 있는 자들이 함께 했고, 더불어 교육청이나 관리자들이 이 문제해결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모호한 문구 뒤에 숨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민원을 키운 원인을 결코 학부모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이다. 교육청은 이러한 사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민원을 세게 내면 승리한다는 ‘잘못된 학습 경험’을 심어줘서 결과적으로 학부모 민원을 점점 키우게 된 결과로 나타났다. 학생배정 문제의 경우에 교육청은 ‘학부모 만족도’, ‘통학 거리’, ‘집값 하락에 대한 항의 문제’ 등의 논리 뒤로 숨는다. 작은 학교에 속한 적은 수의 학부모 목소리는 다수가 주도하는 ‘만족도라는 괴물’에 묻혀버린다.

 

통학 거리는 공동학군 또는 급별 통학 시간 기준을 충족해서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도 교육청은 오히려 이현령비현령이다. 한 예로 아파트단지 내에 학교가 있는 경우 아파트 거주 학생들을 우선 배정해서 아파트단지 외 학생들은 아파트단지를 건너 반대편 학교로 멀리 배정되기도 한다. 부동산업체가 주장하는 집값 문제까지 학생배정 시에 교육청이 휘둘려서야 되겠는가?

 

학생배정 불균형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교육청이 내세우는 기치와 배치된다는 점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그동안 ‘다양성이 꽃피는 공존의 혁신미래교육’을 지향했고, 작년 교육감이 바뀌면서 ‘미래를 여는 협력교육’을 내세우고 있다.

 

공존과 협력은 서로의 만남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상가 마르틴 부버는 ‘만남이 교육에 선행’하며, 사람은 ‘너’를 통해 진정한 ‘나’를 완성한다고 하였다.

 

어릴 때부터 같이 생활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경험해야, 공존과 협력의 가치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학교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을 배우는 통합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현재 실상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점점 더 보호자의 생활 수준에 따라 학생 배정이 극단적으로 나누어지면서, 계층분화가 심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흔히‘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국가 차원의 교육정책을 소리높여 비판하는 것만이 우리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능사가 아니다. 교육청이 듣기 좋은 구호만 양산하는 것은 ‘유체이탈식 교육정책’이다.

 

학교현장에서 공존과 협력교육을 방해하는 근원적 문제 중 하나는 학생배정 문제이다. 학생배정 문제는 교육청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문제이다. 공존과 협력이라는 교육적 기준을 원칙으로, 교육적 필요성에 더해 학부모를 설득하고 지역의 협력을 구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교육청은 메아리 없는 유체이탈식 정책구호로 남아있는 교육정책의 실태에서 벗어나, 세심하고 구체적인 정책구현으로 학교를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학교교육이 교육청의 지향과 가치에 맞는 교육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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