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올 한 해 우리는 참으로 치열하게 교육의 민낯을 마주해 왔습니다. 무너진 교권, 위태로운 학생들의 인권 그리고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린 교육 공동체의 실태를 조명하며 변화를 촉구했습니다.
오늘은 을사년인 올해 마지막 칼럼인 만큼, 따뜻한 희망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 교육이 도달해야 할 종착역, 바로 ‘홀로 두지 않는 학교 문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다시 ‘협력’인가: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교육의 파고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고립’에서 옵니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을 홀로 감당하는 교사, 성적 경쟁 속에서 친구를 적으로 느껴야 하는 학생은 모두 섬처럼 고립되어 있습니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는 개인이 지닌 역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단효능감(Collective Efficacy)’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노력하면 어떤 난관도 극복하고 학생의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공동체의 확신과 같습니다.
교육 전문가 존 해티의 연구에 따르면, 교사들의 집단효능감이 학생의 학업 성취에 미치는 영향력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홀로 두지 않고 연결될 때, 학교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곳을 넘어 아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심리적 요새’가 됩니다.
비고츠키가 말한 ‘근접발달영역(ZPD)’ 역시 동료와 스승이라는 조력자가 곁에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사회학자 로버트 D. 퍼트넘이 강조한 ‘사회적 자본’ 역시 협력의 중요성을 뒷받침합니다.
구성원 간의 신뢰와 네트워크가 탄탄한 공동체일수록 교육적 성취가 높고 위기 대응 능력이 뛰어납니다. 우리가 서로를 홀로 두지 않을 때, 학교는 비로소 안전한 심리적 공간이 됩니다.
감동적인 협력 문화를 만드는 몇 가지 풍경
학교에는 경쟁적 구조 속에서도 굳건하게 협력의 문화를 가꾸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신규 교사 구하기’입니다.
얼마 전 현장 교사들과 교사 리더십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때 감동적인 학교 안 교사 리더십 사례를 들으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첫 학교로 발령받아 근무하는 신규 교사를 ‘구한’ 사례였습니다.
첫 발령을 받은 신규 교사는 학생 때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다른 학교와 교실 현실에 혼란과 절망을 느끼며 교직을 떠나려 했습니다. 그런데 선배 교사들이 격려하며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희망과 용기를 되찾은 ‘집단적 효능감’이 발휘된 이야기였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남부교육청의 ‘진심통심’ 정책사업으로 친구 간의 갈등을 대화와 조정으로 해결한 사례입니다.
진심통심 사업은 2023년 필자가 교육지원국장으로 근무할 당시, 학폭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담당 장학사와 함께 고안하여 남부교육청에서 시행한 사업입니다. 학폭이 접수되면 교육청에서 당사자들에게 화재·조정할 기회를 주고 절차를 진행하자 매우 큰 성과가 있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울시교육청은 물론 다른 교육지원청에도 소개하며 권했던 사업입니다. 얼마 전, 시범교육청 단계를 거쳐 모든 교육청에 적용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있듯이, 학교생활은 사회생활에 필수적 역량인 갈등조정능력을 기르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친구와 갈등이 생겼을 때 법적 대응을 하기 이전, 먼저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며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교육적 경험을 하게 해 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세 번째 사례는 방과후 지역사회협력 청소년 자치 배움터인 다가치학교 운영 사례입니다. 다른 지역의 청소년 활동 공간과 달리, 서울의 다가치학교는 방과후 학교 공간의 일부를 지역의 아동·청소년 및 지역교육기관과 공유하는 개념입니다.
오류중학교에서 개설된 1호를 시작으로 현재 4호까지, 그리고 다가치교실로 확장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도시인 서울에서 청소년 공간은 너무나 부족한데, 가장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인 학교 공간이 방과후에 활용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깝고 안타까워서 필자가 교장일 때 추진한 사업이었습니다.
다가치학교는 현재 4년 차 위탁 운영 중이며, 날로 발전하며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하여 학교 공간에서 청소년의 성장을 지원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모든 아이가 집 근처 가까이에서 이런 경험을 접할 수 있도록, 학교 공간을 활용한 더 많은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개인의 선의를 넘어 ‘제도적 동행’으로
학교 구성원들이 서로 손을 맞잡으려 해도, 그들을 ‘각자도생’의 링 위로 다시 몰아넣는 제도적 장벽이 있다면 협력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홀로 두지 않는 문화’는 구성원의 선의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교육청과 교육부의 과감한 정책 전환이 병행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첫째, 동료를 경쟁자로 만드는 ‘차등성과급제’, ‘학폭가산점’, ‘다면평가’ 등 경쟁 논리에 기반한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이런 제도는 교사의 교육활동을 수치화하여 등급을 매깁니다. 교육은 고도의 협력적 행위입니다. 한 아이의 변화는 담임교사 혼자의 공이 아니라, 교과 교사, 상담 교사, 동료 교사들의 보이지 않는 조력이 합쳐진 결과입니다.
저명한 경영 이론가인 에드워드 데밍은 “성과주의 보상 체계는 협력을 파괴하고 구성원의 내적 동기를 꺾는다”고 경고했습니다. 개인별 차등 보상보다 공동체인 ‘학교 단위’ 또는 ‘학년 단위’의 성과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여, 동료의 성공이 곧 나의 기쁨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정량 중심의 교원 평정’에서 ‘성장 중심의 동료 피드백’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현행 평정 시스템은 승진과 보직을 위해 동료보다 앞서 나가야 하는 구조를 고착화시켜 협력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사가 교실 문을 닫고 홀로 분투하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동료를 평가의 대상이 아닌 ‘성장의 파트너’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점수 위주의 평정을 지양하고 상호 컨설팅과 수업 나눔이 실질적인 협력과 지원으로 이어지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셋째, ‘고립된 교실’을 지원하는 ‘행정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교사가 문제 행동 학생이나 악성 민원을 홀로 감당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교육청 차원의 즉각적인 대응팀 운영을 실질화하고, 학교장 중심의 책임 기구가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법적·행정적 권한을 강화해야 합니다.
‘나의 뒤에 학교와 교육청이 있다’는 확신이 들 때, 교사는 비로소 안심하고 아이들 곁에 머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이 희망이다
비고츠키가 말한 ‘근접발달영역(ZPD)’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 교육 공동체 역시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동료의 지지가 있고, 정책이 그 뒤를 든든히 받쳐줄 때 높은 문턱을 넘을 수 있습니다.
올 한 해 우리는 많은 어려운 고비를 통과하며 지나왔습니다. 내년의 학교는 ‘나’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전쟁터가 아니라, ‘우리’라는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는 광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로를 환대하는, 작지만 위대한 실천이 교육을 다시 세우는 강한 동력이 될 것입니다. 희망은 우리가 연결되어 있기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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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남 = 강원도의 농부 집안에서 7녀 1남 중 3녀로 태어났다. 춘천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에 진학했으나 광주학살을 접하고 교육에 배신감을 느꼈고 학생운동에 뛰어 들었다. 이후 서울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며 2000년 마침내 과학교사로 임용된다.
2011년 서울 오류중학교에서 혁신부장을 맡아 혁신학교 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했으며, 2019년에는 오류중학교 공모교장이 된다. 2024년 2월 서울남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으로 명퇴하며 그는 “정치적 천민에서 탈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같은 해 8월 서울교육감 보궐선거에 예비후보로 등록, 민주진보진영 단일 후보 최종 경선까지 치렀으나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현재 '다같이배움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교육혁신을 주제로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교육정책전문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과학 톡톡 카페(공저, 2009),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학교혁명(공저, 2018), 교장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2024) 등이 있다.
홍제남 소장은 <더에듀> 연재를 결심하며 “교육자로서 24년의 시간을 보내며 학생, 동료교사와 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며 ”이 중 ‘교육다운 교육’, ‘진짜 교육’을 만드는 일을 학교 차원에서 집단지성으로 실천한 혁신학교 실천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학생, 교사, 보호자, 지역사회가 온전한 교육 주체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실천했다"고 평했다.
또 “과학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며 “이 과정에서 교육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은 교육이 교육의 논리가 아닌 신자유주의적 정치적 이해집단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라며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