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교육자로 24년의 세월을 보내며 학생, 동료 교사와 많은 일을 함께 했다. 과학 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이다.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홍제남의 진짜교육’을 시작한다. |

독일과 네덜란드, 신뢰와 존중의 교육 시스템
4월 말경 한 대학의 교육연구소에서 주최하는 교육포럼에서 발표하게 되어 다녀왔다. 그때 함께한 교수로부터 독일에서 자신이 경험한 학교 교육 이야기를 들었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학교 교사 의견을 들어 학생의 진로를 정하는데, 별다른 이견 없이 직업계, 실업계, 인문계 등으로 진학이 결정된다고 했다.
그만큼 교사에 대한 신뢰가 높고, 교사가 존중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놀랍기도 하고, 교육자로서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두 나라에서 판이한 상황이 나타나는 주요인은 사회구조의 차이다.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경제적 격차와 사회적 차별의식이 크지 않은 사회라 가능한 일이다.
네덜란드 또한 학생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진로에 따라 다른 중·고등학교로 진학하기 때문에 대학 진학 단계에서는 경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의사와 변호사는 선호 직업이라 경쟁이 있고 추첨제로 뽑다가 지금은 대학별 선발로 바뀌었다. 그러나 성적보다는 학생의 열의를 중심으로 선발하고 있어 우리나라처럼 극단적인 경쟁이 필요 없다.
이런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이유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먹고사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학력별 임금 격차는 있지만, 누진세가 적용돼 실소득은 큰 차이가 없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도로공사는 할 수 없고, 아무리 똑똑한 대학교수라도 제빵사가 없으면 빵을 사 먹을 수 없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각자의 역할을 하는 모든 직업을 소중히 생각하게 만들고 그 결과, 경제적 격차도 크지 않음을 보여준다.
7세 고시와 사교육 광풍의 민낯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영유아 대상의 ‘7세 고시’가 방영됐다. 우리 사회 사교육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내 큰 충격을 줬다.
이런 극단적인 사교육 현상은 우리 사회의 직업에 따른 차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학생 희망 직업 조사 결과도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1~3위 희망 직업은 교사, 운동선수, 의사·크리에이터 등으로 2023년과 비슷한 순위를 기록했다.

직업 차별과 교육 경쟁, 악순환의 고리
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군을 보면 고소득 직종인 의사나 안정적인 직업으로 평가받는 공무원, 전문직 등이 상위를 차지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다양한 기술직이나 다수의 성인이 종사하는 직업군은 희망 직업 상위권에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는 직업군은 제과·제빵원이나 요리사 외에는 10위권 내에 없다.
필자 또한 담임 시절 학생들과 대화할 때, 장래희망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거나 공무원처럼 안정적인 직업을 원한다는 답변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이 같은 직업들은 대부분 높은 성적과 학벌을 요구한다.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만 고소득 직업이나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회구조 때문이다. 이런 사회가 바로 ‘7세 고시’, ‘4세 고시’ 같은 괴물 같은 현상을 탄생시킨 배경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4년 7~9월 영유아 사교육비 총액은 8154억원에 달하며, 사교육 참여율은 47.6%로 나타났다. 만 2세 이하 사교육 참여율은 24.6%, 만 3세는 50.3%, 만 4세는 68.9%, 만 5세는 무려 81.2%였다. 영유아의 주당 평균 사교육 참여 시간은 5.6시간으로 집계됐다.
만약 독일이나 네덜란드처럼 자신의 적성과 특성에 맞는 직업을 택해도 경제적 불안과 직업적 차별이 없다면, 이렇게 어릴 때부터 자녀를 사교육에 몰아넣을 부모가 얼마나 될까 싶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은 자녀 교육에 대한 부담과 걱정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사상 초유의 0.7명대 초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학생 수 감소와 인구 감소로 이어져 이제는 국가 소멸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며,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다.

노동 인식의 대전환이 교육 문제 해결의 열쇠
얼마 전 5월 1일은 노동절이었다. 1886년 5월 1일 미국에서 있었던 총파업을 기념하는 날로, 올해로 139번째를 맞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달력에는 여전히 이날을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 날’로 표기하고 있다. 과거에는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기념해 오다 노동계의 요구로 1994년부터 국제적 기준에 맞춰 5월 1일로 변경했지만, 명칭은 그대로다. 이 모습은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과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씁쓸함을 자아낸다.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러 교육 의제가 쏟아지고 있다.
경쟁 교육 완화, 대학 서열화 해소, 사교육비 문제 해결 등은 그간 교육계에서 오랫동안 요구해 온 핵심 의제들이다.
그러나 교육 문제는 점점 더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상처에 연고만 덧바르는 땜질식 처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도려내는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해법은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어떤 직업에 종사하더라도 생계의 불안을 느끼지 않고, 사회적 차별 없이 당당하게 모든 노동이 존중받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뿌리 깊은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전이다.
곧 출범할 6월의 새 정부에 바란다. ‘노동 문제와 교육 문제의 함수관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그것이 바로 ‘7세 고시’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유일한 해법이다.
참고자료:「교육개혁은 없다」(박정훈 저, 2024), 「공교육 천국 네덜란드」(정현숙 저, 2019)

홍제남 = 강원도의 농부 집안에서 7녀 1남 중 3녀로 태어났다. 춘천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에 진학했으나 광주학살을 접하고 교육에 배신감을 느꼈고 학생운동에 뛰어 들었다. 이후 서울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며 2000년 마침내 과학교사로 임용된다.
2011년 서울 오류중학교에서 혁신부장을 맡아 혁신학교 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했으며, 2019년에는 오류중학교 공모교장이 된다. 2024년 2월 서울남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으로 명퇴하며 그는 “정치적 천민에서 탈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같은 해 8월 서울교육감 보궐선거에 예비후보로 등록, 민주진보진영 단일 후보 최종 경선까지 치렀으나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현재 '다같이배움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교육혁신을 주제로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교육정책전문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과학 톡톡 카페(공저, 2009),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학교혁명(공저, 2018), 교장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2024) 등이 있다.
홍제남 소장은 <더에듀> 연재를 결심하며 “교육자로서 24년의 시간을 보내며 학생, 동료교사와 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며 ”이 중 ‘교육다운 교육’, ‘진짜 교육’을 만드는 일을 학교 차원에서 집단지성으로 실천한 혁신학교 실천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학생, 교사, 보호자, 지역사회가 온전한 교육 주체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실천했다"고 평했다.
또 “과학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며 “이 과정에서 교육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은 교육이 교육의 논리가 아닌 신자유주의적 정치적 이해집단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라며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