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학문의 세계는 끊임없이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평생 배우는 전문직이자 평생학습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교육자가 이런 연구를 계속 접하면 좋겠지만, 매일의 업무로 바쁜 일상에서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독자를 위해 주말 취미가 논문인 객원기자, 주취논객이 격주로 흥미롭고, 재미있고, 때로는 도발적인 시사점이 있는 연구를 주관적 칼럼을 통해 소개한다. |

지난 회에 스크린 타임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 더 읽어보자.
스크린 타임이 근시를 그만큼 증가시킨다는 인과가 입증된 게 아닌데도 언론이 호들갑인 건 큰일은 아니다. 그 정도 상관이면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런데 근시는 그렇고 스크린 타임이 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돈다. 심지어 유전 소인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인 ADHD나 자폐가 스마트폰 때문에 증가했다는 낭설까지 종종 들을 수 있다.
스크린 타임 때문에 ADHD 증가?
현재까지 할 수 있는 말은 증세 발현에 다소 상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수준인데도 그렇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조금 된 연구지만, 우리나라 한 의학 포털에 '스크린 타임 늘어날수록 청소년 우울증 증가…SNS보다 위험한 주요 원인은?'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사실 이 기사는 다른 곳의 보도를 받아 쓴 게 아니라면 논문을 요약만이 아닌 최소 결론부까지 읽고 의미 있는 포인트는 웬만큼 짚어서 잘 쓴 기사다.
논문을 함께 읽으면서 쓸 내용 중 기사에서 빠진 내용은 없을 정도라 그냥 이 기사 늘여 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그러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논문의 내용이야 기사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쓰는 정도겠지만,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오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의외로 스크린 타임 관련 종단 연구 적어
오늘 읽어볼 논문은 지난해 7월 ‘BMC 공중보건(BMC Public Health)’지에 실린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의대 등 연구팀이 참여한 ‘스크린 타임과 정신 건강: 청소년 뇌인지 발달 연구 데이터를 활용한 장기 분석(Screen time and mental health: a prospective analysis of the Adolescent Brain Cognitive Development (ABCD) Study)’이다.
연구 방법은 시작 시점에 9~10세였던 청소년 9538명에 대해 2년간 추적 조사를 해 청소년의 자기보고 스크린 타임과 부모가 체크리스트를 통해 보고한 정신 건강 증상 간의 관계를 분석했다.
사실 그간에 스크린 타임에 대한 우려와 악영향에 대한 연구 보고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에 살펴본 근시 연구처럼 단면 연구가 많고 장기간에 걸친 영향을 분석한 연구는 많지 않기에 이 연구는 꽤 의미 있는 연구다.
장애나 질환의 ‘발생’이 아닌 ‘증상의 정도’만 조사
상세하게 방법론을 다 살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짚어 보자.
독립 변인인 스크린 타임은 학교에서의 스크린 사용은 제외하고 매체가 아닌 상호작용 내용을 중심으로 △TV나 영화 시청 △유튜브 등 영상 시청 △게임 △문자 △영상통화 △소셜 미디어 등 6개 영역에 걸쳐 조사했다. 또한, 주중과 주말을 별도로 산정해 가중치를 뒀다.
종속 변인인 증상을 위해 부모가 사용한 체크리스트는 아동 행동 체크리스트(Child Behavior Checklist, CBCL)다. 여기에는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을 기준으로 한 △우울 △불안 △신체화 △집중력결핍/과잉행동 △반항 △문제행동 등 여섯 영역의 증상을 3점 척도로 평가하도록 구성됐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부모가 보는 증상의 정도를 본 것이지 실제 장애나 질환을 확인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기사의 제목과 달리 실제로 우울증, ADHD, 반항 장애 등의 발생 정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연구다.
그래서 종속변인을 설명할 때 장애나 질환의 진단명은 언급되지 않았다. 반면 기사에서는 “연구 결과, 스크린 사용 시간이 증가할수록 우울증, 불안,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장애(ADHD), 반항적 장애(ODD), 공격성 등의 정신 건강 문제가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진단명으로 표현해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그래도 너무 기자 탓하지 마시라. 지난 회에서 말한 대로 대중이 익숙한 간략한 표현을 쓰다 보면 생길 수도 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이번엔 연구자 몫도 있다. 초록의 키워드와 서론에는 진단명으로 언급했으니까. 게다가 CBCL도 나름 진단의 보조 자료로는 사용되는 질문지고.
다만, 전문가가 내린 진단도 아닌 부모의 체크리스트로 일부 증상만 보는 걸로는 장애나 질환의 실제 발생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요약과 결론에도 진단명은 언급하지 않았다.
동료 검토가 이뤄지는 저명한 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학사가 지적하는 것은 좀 무리일 수도 있지만, 필자가 검토자라면 요약과 결론에 없는 진단명을 키워드로 사용한 부분은 지적했을 것 같다. 물론 검토자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 독자를 일반인이 아닌 학자로 생각해 일반인이 할 오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 두 변인의 관계를 제대로 보기 위해 교란 변인은 연령, 성별, 인종, 가계소득, 부모 학력, 학습 장소(팬데믹의 영향 반영)로 보고 통계적으로 통제했다. 이 외에도 수면과 신체 활동이 스크린 타임과 정신 건강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도 확인했다.
인종, 스크린 타임 종류 따라서도 연관성 달라
대상의 평균 일일 스크린 타임은 꽤 많은 4시간이었다. TV나 영화 시청이 1.3시간, 유튜브 등 영상 시청이 1.3시간, 게임이 1.2시간이었다. 편차는 큰 편이었다. 총 스크린 타임은 4시간을 기준으로 ± 3.2시간에 걸쳐 있었다.
6가지 영역의 증상에 대한 부모 응답은 신체화 증상이 55.4로 가장 높았다. 우울, 불안, 반항,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증상이 뒤를 이었다.

이들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스크린 타임은 여섯 가지 영역 모두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특히 우울 증상에 가장 높은 연관성을 보였고, 이어 문제행동, 신체화,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순이었다. 불안이나 반항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수면과 신체 활동의 영향을 제거하고 봤더니 연관성은 다소 감소했지만,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교란 변인의 영향을 살폈을 때 인종에 따른 차이는 다소 났고 성별에 따른 차이는 드러나지 않았다. 백인이 아시아인보다 우울 증상에 높은 연관성을 보였고, 흑인보다 우울, 주의력결핍/과잉행동, 반항 증상에 높은 연관성을 보였다.

스크린 타임 종류에 따른 영향은 꽤 흥미로운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부분만 비교했을 때 우울 증상과 가장 강한 연관성을 보이는 스크린 타임 종류는 영상 통화이며, 그다음은 문자, 온라인 동영상, 게임 순이다. 문제행동의 경우도 비슷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증상에서는 마찬가지로 가장 높은 건 영상 통화였지만, 그다음은 게임, 온라인 동영상 순으로 조금 달랐다. 신체화 증상에서는 종류별로는 온라인 동영상만 유의미하게 나왔다.
그렇다고 여기서 게임보다 영상 통화가 위험하다는 식으로 해석해버리면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딱 분석한 데까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뭔가 시사점을 얻었다고 해도 후속 연구로 증명하기 전까지는 혼자만의 느낌일 뿐이다. 아래에 논의를 살피면서 이런 결과에 대해 다시 한 번 언급하겠다.
스크린 타임 효과 크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어
그러면 어떻게 봐야 하나? 지난 회에 말한 대로 논의 부분을 살펴보자.
연구진은 “약하지만 유의미한” 연관성을 밝혀냈다고 설명하고 있다. 무슨 말이냐면, 스크린 타임의 영향이 큰 건 아닌데, 영향이 적게나마 있는 건 꽤 확실하다는 얘기다.
물론 작은 효과의 크기에 대해서는 여러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연구진은 증가하는 청소년 정신건강 증상에 대한 스크린 타임의 영향이 무시해도 될 정도로 미미하다고 보는 시각과 전체 인구로 봤을 때 작은 효과라도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학계에 공존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또한, 종단 연구의 특성상 효과 크기가 단면 연구보다 작아질 수 있다는 점과 코로나 팬데믹 기간이 겹쳐 급격히 늘어난 스크린 타임 때문에 효과가 커졌을 수도 있다는 점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제한점에서는 스크린 타임과 정신 건강 증상 사이에 인과가 역전이 됐거나 스크린 타임과 정신 건강이 악순환으로 이어져 있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말하자면 어느 쪽이 어느 쪽을 증가시킨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스크린 타임의 종류와 증상 간 연관성을 읽으면서 필자도 들었던 생각일 정도로 교육자로서 들만한 의문이기는 했다.
스크린 타임과 증상을 살폈던 자기보고나 부모 체크리스트라는 수단의 한계, 고려하지 않은 교란 변인이 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종속 변인과 제한점에서 언급한 내용을 고려한다면 정확히 말하면 스크린 타임과 ‘우울 증상’,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증상’의 ‘연관성’을 본 것이지 ‘우울증’이라는 질환이나 ‘ADHD’라는 장애가 ‘증가’하는지를 살핀 게 아닌 건 더 분명해진다.
이는 스크린 타임이 ADHD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정도’와 관계있는 것이지 장애 자체를 발생시키는 건 아니라는 기존 연구의 입장과 일치한다.
스크린 타임이 앗아가는 유익한 시간: 대체 가설 지지
몇 가지 더 의미 있는 논의가 있다. 우울 증상이 가장 연관성이 높게 나온 부분에 대해서는 신체 활동, 수면, 대면 상호작용 등 우울증이나 불안 증상에 유익한 다른 활동을 스크린 타임이 대체한다는 ‘대체 가설’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수면과 신체활동의 효과를 제거했을 때 효과 크기가 줄어든 점이 대체 가설의 영향을 어느 정도 입증한다고 봤지만, 여전히 모든 효과를 설명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의외로 최근 우울증과 관련해 지속해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소셜 미디어의 부정적 영향은 드러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표본이 공식적으로 소셜 미디어 계정을 만들 수 있는 나이보다 어리기 때문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도 스크린 타임 중 소셜 미디어 비중이 가장 낮았다.
스크린 타임의 긍정적 효과도 시사
또 한 가지 이 연구의 특징적인 점은 인종에 따른 스크린 타임 효과의 차이를 살폈다는 점인데,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나는 백인이 흑인이나 아시아인보다 우울 증상과 연관성이 높은 이유가 차별을 당하는 흑인이나 아시아인에게는 스크린 타임이 오히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조절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또 다른 가능성은 문화적 차이로 진단 체계가 문화적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부모가 CBCL을 작성하는 동안 기준이 다르거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낙인을 두려워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해를 부추기는 또 다른 범인은 ‘장삿속’
여기까지 길게 논문을 전반적으로 훑어봤지만, 사실 애초에 제목에 낚이지 않고 기사 본문만 비판적으로 자세히 읽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스크린 타임 때문에 우울증이나 ADHD가 늘어난다는 오해까지 생길 이유는 없다.
기사의 본문을 잘 읽어보면 비록 쓰지 말아야 할 진단명을 쓴 건 아쉽지만 “정신건강 문제가 악화될 수 있다”고 했지, 없던 질환이나 장애가 새로 생긴다고는 하지 않았다.
‘증상’에 영향이 있는 것이지 ‘발생’이나 ‘진단’에 영향이 있다는 내용이 아닐 가능성을 얼마든지 엿볼 수 있다.
기사를 주의 깊게 읽지 못한 데서, 오독하도록 쓴 데서 사실이 낭설로 둔갑하기도 하겠지만, 이런 오해가 퍼지는 데는 의도적으로 관련 장사를 하는 사기꾼들이 이를 부추긴다는 사실도 크게 작용한다.
안 그래도 지지난주 봄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도서관을 갔다가 그런 책을 발견했다. 저자는 의학박사다. 그러니 일반인 부모는 혹하기 쉽다. 게다가 ‘전자 스크린 신드롬’이라는 새로운 진단명까지 지어내서 의학 전문지에 기고까지 했다.
그런데 책을 보면 수많은 전문 서적과 논문의 인용이 있지만, 신드롬의 실제 존재와 치료법의 효과에 대해서는 단 한 건의 실험 연구 근거도 없다. 그 부분은 전부 체험담뿐이다.
결론은? 돈 내고 내 책 사고, 돈 내고 내 요법 해보라는 거다. 이런 사기의 전형적인 행태다.
이런 사례를 다룬 논문이 보인다면 한 번 다루고 싶을 정도다. 그러니 독자, 기자, 연구자 모두 너무 자책하지 말자. 이 오해의 큰 책임이 당사자한테만 있은 것은 아니니까.
이번 논문을 더 자세히 읽고 싶은 독자를 위한 링크는 아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