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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리터러시] ②김호진 교사 : 깊이 있는 학습의 꽃을 꺾는 '고교 5등급 상대평가'

[더에듀] 교육정책은 정치권에서 교육부, 교육청을 거쳐 학교 현장으로 내려오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때문에 과거에는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 모든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주체로 여겨지면서 현장과의 괴리라는 문제가 나타났다. 결국 정책 수립 과정에 교사들의 참여 필요성이 대두했고, 교사들도 대학원 등을 진학해 정책적인 면모를 갖춰 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은 흔들리는 교육정책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에 <더에듀>는 교육정책을 공부하고 논의하고 제안하는 역할을 하는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회원들이 제안하는 교육정책을 살펴보면서 교사가 교육정책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 들어가며 - 정성평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 자본이 없는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

 

교육부는 2023년 12월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확정안’을 발표하였다.1)

1) 교육부,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확정안, 2023

 

확정안에 따르면 고교 내신체제는 기존의 9등급에서 5등급제로 개편되었고, 상대평가의 적용을 받는 교과는 고시 과목 총 151과목 중 체육, 예술, 교양, 사회·과학 융합선택과목 9과목을 제외한 모든 교과, 125과목(82.7%)으로 확대되었다.

 

지난 5~6년간 성취평가제의 전면도입을 전제로 준비해 온 고교학점제의 실체는 결국 상대평가의 양적 확대라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모습으로 귀결되었다.

 

모순적이다.

 

취임 초기 “일부 과목에서 상대평가가 남아 있다면 고교학점제를 안하는 것이 낫다”며 상대평가 폐지 검토 지시를 내렸던 교육부 장관의 초반 인식2)으로부터 가장 먼 지점에 있는 것이 최종안으로 결정된 것이 그렇다.

2) 한겨레, 2022년 12월 12일, 이주호 “고교 내신, 1학년도 절대평가로 바꾸는 안 검토” 지시 https://m.hani.co.kr/arti/society/schooling/1071286.html?_fr=nv

 

또한 2023년 6월에 공식 문서로 발표했던 고등학교 내신 평가 방식(공통과목만 9등급 상대평가)을 단 6개월 만에 사회적 합의와 체계적 연구 없이 번복한 것이 그렇다.

 

기만적이다.

 

교육부가 밝힌 5등급 평가 체제 결정의 이유는 “세계 주요국 대부분 5등급제 평가를 실시하며, 학교 내신에서 주제 글쓰기, 보고서 평가 등 논·서술형 평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주요국 대부분은 5등급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실시한다. 미국, 유럽 등 서구권은 그렇다 쳐도, 입시에 대한 사회적 열망과 문화적 토양이 비슷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우리와 비슷하게 하지 않을까?

 

전혀 아니다. 중국과 일본 역시 고등학교 내신 평가의 방식은 절대평가이다. 이것이야말로 ‘K-평가’ 시스템이라 부를 만하지 않을까?

 

 

 

 

차라리, ‘아직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전면 절대평가(성취도평가)를 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준비가 미흡하여 입시에서의 혼란이 예상되니 그냥 하던 대로 합시다’라는 식의 설명이었다면 수긍이 되었을까?

 

우리는 일부 학부모로부터 ‘우리 아이 뭐가 부족한지 알아야 학원을 보내니 성적이나 등수를 정확하게 알려달라’는 요구를 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과학고 재학생의 의대 진학을 막고자 여러 제도를 덧대야 하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수능 시험 날 무려 ‘영어 듣기’를 위해 비행기 운항을 멈추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런 ‘정성평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 자본이 없는 이상한 나라’는 몇몇 악마의 얼굴을 한 빌런이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일정 지분 책임이 있다.

 

◆ 문제는? - 2022 개정교육과정의 ‘깊이 있는 학습’은 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교과 교육과정 개발 방향의 핵심은 ‘깊이 있는 학습’이다.

 

깊이 있는 학습이란 ‘학생의 삶과 연계하여 유의미한 맥락 속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할 수 있도록 삶과 연계한 학습, 교과 간 연계와 통합, 학습과정에 대한 성찰 등을 통해 역량 함양을 가능하게 하는 학습’으로 정의할 수 있다.

 

즉 ‘깊이 있는 학습’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수업과 평가의 혁신의 지향점이 응축되어 있는 슬로건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교육부 및 전국 시도교육청은 <교수학습평가> 관련 공문에서 열외 없이 ‘미래 역량 함양’, ‘자기 주도성’, ‘개념 기반 탐구 학습’, ‘서논술형 기반 생각을 꺼내는 평가’, ‘백워드 설계’와 같은 개념을 강조하고 있고, 현장에서의 교수학습 혁신을 주도할 교사의 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연수와 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다. 최근 IB 교육과정이 주목 받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역량, 탐구, 생각과 질문하는 힘, 삶과 연계한 학습, 학습에 대한 성찰’ 따위의 것들은 관련된 특정 몇몇 과목을 배운다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교수학습 및 평가의 일관된 가치 속에서 학생들이 자연스러운 생활 양식으로,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5등급 상대평가 결정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요소는 이 지점에 있다.

 

현장에서 15년간 수집하여 체화된 필자만의 빅데이터에 기반해 추측해 보자면, 상대평가가 유지되는 2025년 이후의 일반적인 수업 역시 현재의 수업 및 평가 형태와 대동소이하게 진행될 것이라 판단한다.

 

즉, 수업 시간 중 역량 함양을 위한 수행평가 및 탐구활동은 분절적으로 진행되고 결국에는 날카로운 선다형 객관식 문항 혹은 정답 시비 및 민원의 요소가 가장 적은 방식(명확한 지식 측정)의 논·서술형 방식으로 평가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상대평가란 태생적으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보다 내가 0.1점이 부족하기 때문에 낮은 등급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학생과 학부모가 받아들여야 하고, 그 차이는 교사의 전문성에 의한 판단이 아닌 것일수록(객관식 선다형 평가) 민원의 요소가 적어진다.

 

상대평가는 한 학생의 성장을 다른 누군가의 실패와 맞교환해야만 굴러가는 시스템이고, 우리 사회는 그것을 용인하고 선택했다.

 

그렇기에 ‘정성평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 자본이 없는 이상한 나라’에서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민원 방지 지상주의’라는 제초제(除草劑)는 학교의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교수학습평가 개선의 작은 새싹을 오랜 시간에 걸쳐 말라 죽게 만들고 있다.

 

◆ 대안은? - 지성으로 비관을 의지로 낙관을

 

지금까지 논의에 기반해 판단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교수학습평가개선 전망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금껏 그래왔듯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있는 교육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들은 그저 문서상에만 존재하는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은 ‘지성으로 비관을, 의지로 낙관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에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고등학교 내신 평가와 대입 제도 개선안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6~7년 동안 성취평가제에 기반한 고교학점제, 고등학교 교수학습평가 혁신 방향에 대해 수많은 연구 기관에서 보고서를 만들었으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속해서 논의해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교육부에서 스스로 밝혔듯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상대평가 기반의 토양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물론 절대평가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고등학교 전체 교과를 절대 평가하는 방안 자체만으로 우리 교육의 모든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평가는 ‘단순 지식 주입 교육’을 해결할 수 있는 평가상의 선결 조건이며, ‘미래 역량 함양 교육’을 위한 교실 수업 혁신의 토양이다.

 

둘째, 교사 공동체 스스로 ‘정성평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미래형 교수학습평가 역량을 내·외부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그동안 수능과 상대평가의 장벽 뒤에서 기존의 교수학습평가 방식을 안전하게 유지하려했던 관성을 버리고 교수학습 평가 전문가로서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선생님들의 노력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

 

2022 개정교육과정의 고시 과목 165개 중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 대상 과목은 18개(10.9%)에 불과하다. 이제 정말 달라져야 한다.

 

셋째, 한 번 정해진 제도가 쉽게 바뀌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여, 현행 제도 내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깊이 있는 학습’을 구현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작은 전략들을 실행해 나아가야 한다.

 

이는 각 시도교육청의 지침 수정 보완, 지역 상황을 반영한 역량 강화 전략, 교수학습자료 개발,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가고 있는 현장 교사들의 마음에 작은 불씨로 남아 있는 ‘좋은 수업에 대한 열망’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한 경험과 시간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고등학교에서의 상대평가가 어색해지는 임계점이 올 것이라 믿고 싶다.

 

◆ 나가며

 

마지막으로 수업 시간에 겪었던 개인적인 일화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학습자료를 활용해 ‘요즘 너희를 힘들게 하는 것’과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앞 질문에 대한 답변 중 대다수는 ‘시험, 성적, 내신, 수행평가’, 뒷 질문에 대한 답변 중 대다수는 ‘타임머신, 자퇴, 자살’이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이제 곧 시작된다. 그 자리에 꽃이 필지, 그대로 시들지는 봄이 되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일단 씨앗은 뿌려졌다. 부디 무사히 개화(開花)하길, 그리고 만개한 꽃밭에서 서로의 생각을 말로, 글로 자유롭게 나누는 ‘깊이 있는 학습’을 통해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수업이 일상적인 모습으로 실현되길 기원한다.

 

무척이나 힘들겠지만 좋지 않은 토양에서 새싹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국의 수많은 선생님이 지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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