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교육정책은 정치권에서 교육부, 교육청을 거쳐 학교 현장으로 내려오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때문에 과거에는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 모든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주체로 여겨지면서 현장과의 괴리라는 문제가 나타났다. 결국 정책 수립 과정에 교사들의 참여 필요성이 대두했고, 교사들도 대학원 등을 진학해 정책적인 면모를 갖춰 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은 흔들리는 교육정책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에 <더에듀>는 교육정책을 공부하고 논의하고 제안하는 역할을 하는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회원들이 제안하는 교육정책을 살펴보면서 교사가 교육정책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
1. 들어가며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십여 년 전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진이 술에 취한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외친 이 대사는 당시 최고의 유행어였다. 이 유행어는 학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모두가 학교의 일인자인 교장에만 주목한다.
학교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대다수가 학교장을 꼽을 것이다. 교장은 자신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학교를 이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장이 누구인가에 따라 학교는 이전과 180도 다른 새로운 모습(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반면 이인자인 교감은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교감에게 관심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교감의 직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1)
1) 초중등교육법 제20조 2항.
이 법령대로라면 교감의 주요 직무는 학교장 보좌이다. 따라서 교장의 경영방식에 따라 교감의 역할은 저마다 달라지게 된다. 즉, 교감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학교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수 없기에 학교 구성원들은 최종결정권자인 학교장만 바라보게 된다.
Ⅱ. 교감(交感)하기 어려운 교감(校監)
“교사로 돌아가게 해주세요.”2)
2) 동아일보(2024.2.23.). [단독]민원 대응에 늘봄 업무까지 맡는 교감들… “평교사로 강등” 요청도.
몇 달 전, 한 교감이 다시 교사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요청은 현장에서 고통받고 있는 교감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교감은 대체로 20년 이상 교육경력을 지닌 베테랑 교원이다. 그러나 교감의 업무가 얼마나 힘들기에 베테랑 교원인 교감이 승진을 포기하고 다시 교사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일까?
2020년 7월, 교총이 전국 초·중·고 교감 16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3)에 따르면 교감 업무 중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업무는 ‘교감업무 절대량의 증가 및 관리책임 증가(23.9%)’, ‘학교행정실 업무 협조, 중재 등의 어려움(21.9%)’, ‘학부모 대응 업무(13.9%)’, ‘28개에 달하는 각종 위원회 위원장으로서의 관리 업무(13.7%)’ 순이었다.
3) 한국교총(2020.9.23.). 교감 지원정책 발굴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 발표.
학교 또한 조직이기에 여러 법령4)에 의거하여 각종 위원회를 운영해야 한다.
4)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정부조직법 제5조,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8조 제1항 제5호 및 제9호 등.
다면평가관리위원회, 조기진급·졸업·진학평가위원회 등 학교 운영을 위한 법정 의무 위원회뿐만 아니라 교원인사자문위원회,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학교교육과정위원회 등 비법정 위원회도 조직 및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은 당연직으로 교감이 맡고 있어 교감에게 큰 업무 부담으로 다가오게 된다.
한편 현직 교감으로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무 다수의 공통점은 ‘사람과의 관계’라는 점이다. 교사, 학부모, 공무직, 행정실 등 학교 내 다양한 구성원과 소통해야 하는 교감의 업무 특성상 겪게 되는 어려움이 상당하다.
먼저 교장과의 관계에서 ‘근평 C를 주겠다, 섬으로 날려버리겠다’ 등 폭언을 겪기도 한다.5)
5) 에듀프레스(2021.11.9.). “교감 당신 섬으로 날려버리겠어” 술취해 폭언 ..내부형 공모교장 갑질 의혹.
학교장 보좌라는 불분명한 교감의 직무에 따라 교장의 명을 받들어야 하는 교감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행정실과의 관계에서도 여러 갈등을 겪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누구의 업무인가에 관한 갈등이 상당하다. ‘CCTV 관리 등 시설 유지보수 업무’, ‘미세먼지 관리·정수기 관리 등 환경 개선 업무’, ‘화장실 불법 카메라 단속’ 등과 같은 업무는 교사와 일반 행정직 공무원 중 누가 담당해야 하는가로 갈등이 빈번한 업무들이다. 이때 가운데 끼어있는 사람이 바로 교감이다. 교무 담당자인 교감과 행정 담당자인 행정실장과의 관계는 ‘한 지붕 두 가족’의 모양새다.
교사와의 관계는 어떨까?
학년말이 되면 학교는 긴장 상태로 돌입한다. 교사들은 보직교사, 학교폭력 등과 같은 기피 업무를 맡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실제로 한 연구6)에 따르면 학교운영을 위해 보직교사가 필요한지에 대해 전체 교사 4648명 중 3425명(73.7%)은 ‘보직교사가 필요하다’라고 응답한 반면, 보직교사를 희망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662명(78.8%)에 달한다.
6)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2023.). 초등학교 보직교사 제도 개선 방안 연구. 서교연 2023-83.
즉, 다수의 교사는 학교 행정 및 교육활동과 관련된 제반 업무 수행, 학교 교육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보직교사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과중한 업무와 책임, 낮은 처우(보직 수당, 혜택 등), 워라밸 추구 등의 이유로 보직교사를 희망하지 않는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감은 학년말 학교를 돌아다니며 보직교사 구하기 전쟁을 치르고 있다. 보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는 교감과 보직을 거부하는 교사 간 창과 방패의 싸움이 매년 벌어지고 있다.
Ⅲ. 학교의 어머니 ‘교감’
“가정으로 말하면 교장선생님은 할아버지나 아버지 그런 어른이고, 교감은 어머니입니다. 선생님들 하고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되고 부장들 모아서 무엇을 한다든지 할 때 챙겨주고 하는 것이 교감 역할입니다.”7)
7) 박상완(2011). 교감의 역할과 교감직의 특성에 대한 질적 분석. 한국교원교육연구, 28(2), 365-389.
이는 한 교감이 언급한 내용으로 교사를 배려하며 지원하는 교감의 역할을 어머니로 비유한 것이다. 학교에서 교감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기에, 학교의 어머니로 비유한 것일까?
첫째, 정서적 지지자의 역할이다. 교사들은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 교무실로 가 교감과 상의한다. 학급 내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 과도한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 민원 문제 등에 대해 교감과 함께 해결책을 함께 모색한다. 교감은 선배교사로서, 동료교원으로서, 때로는 상급자로서 교사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이들을 위로한다.
둘째, 최종 실무자의 역할이다. 교사들은 교육활동 및 행정업무와 관련된 논의를 교감과 우선하고 필요한 경우 조정의 과정을 거친다. 교감은 각종 계획서를 살피며 잘못된 내용은 없는지, 더 고민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를 고심하며 학교가 원활히 운영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인사 관리자의 역할이다. 교감은 교사들의 복무상태를 관리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전결 규정을 통해 조퇴, 지각, 출장 등과 같은 복무는 교감에게 상신하여 결재를 받는다. 이러한 교감은 교직원의 인사(휴직, 전보, 보직교사 임명 등)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학교조직 운영의 내실을 다진다.
넷째, 소통자의 역할이다. 교감은 교장과 교사를 잇는 가교역할을 맡고 있다. 교감은 교무부장, 연구부장 등 여러 보직교사와 활발한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소통창구의 역할을 담당한다. 교사, 공무직 등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교무실에서 근무하며 교무의 제반 사항을 직접 관장한다.
담임교사가 학급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상담하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과 같이 교감은 교사가 학급운영과 수업,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교감은 학교 의사결정의 중요한 한 축으로써 하루하루 묵묵히 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Ⅳ. 개선방안
학교에서 교감과 교장은 흔히 관리자로 불리며, 학교 운영의 책임을 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교감은 학교장과 함께 구성원을 살피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교감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교사는 물론, 학생들까지도 안정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 이에 교감을 위한 몇 가지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교감의 직무를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지금의 학교장 보좌와 같은 교감의 직무로는 교감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교감의 직무를 교육과정 및 수업운영, 교직원 관리, 학교경영 관리, 학부모 및 대외협력 지원, 전문성 신장 지원8) 등 구체적으로 직무를 제시하여 교감이 보다 주도적으로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8) 신현석, 조대연, 김종윤(2020). 직무분석을 통한 교장·교감 직무특성 비교 서울시 초·중·고교를 중심으로. 한국교육학연구(구 안암교육학연구), 26(2), 147-168.
둘째, 교감을 위한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는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일하는 조직이며, 그만큼 구성원 간의 갈등도 빈번하다. 교감은 이러한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이를 위해 조직 운영 역량을 강화하는 연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한, 과도한 업무량과 관리책임으로 인한 교감의 정서적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는 연수와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되어야 한다. 교감의 정서적 안정은 학교 전체 분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셋째, 승진에 대한 인식 변화와 더불어 교감의 처우도 개선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 승진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승진은 개인의 전문성 신장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중요한 동인이다. 승진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해 교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교감의 실질적인 처우 개선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교감이 사용할 수 있는 업무추진비를 확보하여 교감이 교직원 간담회나 학부모와의 소통 등 직무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Ⅴ. 나가며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인 제리 포라스(Jerry I. Porras)는 그의 저서 위대한 2인자들에서 “지속해서 위대한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통찰력 있는 최고경영자와 그를 보조할 위대한 2인자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원칙은 학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학교가 지속해서 발전하고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통찰력 있는 학교장과 그를 보조하는 훌륭한 교감이 필요하다.
교감은 다양한 업무와 갈등 속에서도 학교 구성원들이 원활하게 협력할 수 있도록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들의 노고와 어려움은 종종 간과되곤 한다. 이제는 학교가 더 건강한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해 교감의 역할과 직무를 재정의하여 교감이 주체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하시는 교감 선생님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그분들의 매일이 평안하고 무탈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의 연재 '교육정책 리터러시'는 내부 사정으로 잠시 쉽니다. 곧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