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교육정책은 정치권에서 교육부, 교육청을 거쳐 학교 현장으로 내려오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때문에 과거에는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 모든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주체로 여겨지면서 현장과의 괴리라는 문제가 나타났다. 결국 정책 수립 과정에 교사들의 참여 필요성이 대두했고, 교사들도 대학원 등을 진학해 정책적인 면모를 갖춰 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은 흔들리는 교육정책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에 <더에듀>는 교육정책을 공부하고 논의하고 제안하는 역할을 하는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회원들이 제안하는 교육정책을 살펴보면서 교사가 교육정책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
지금 학교 현장은 AIDT(AI 디지털교과서)의 열기로 뜨겁다.
AIDT는 공교육의 수십 년간 풀리지 않는 숙제였던 학생 맞춤형 수업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해결사로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학교가 될 것 같은 기대감과 함께 AIDT가 실제 현장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학교는 변화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뉴스 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를 활용하여 최근 AIDT 관련 국내 뉴스 기사 500건을 분석한 결과 ‘수업 혁신, 학교 인프라 개선, 디지털 튜터, 선도 교사, 무선인터넷 통합 유지관리’ 등이 가장 많이 등장한 연관어로 확인되었다.
이는 AIDT가 수업을 도와주는 교과서로서의 범위를 넘어 전에 없었던 복잡하고 새로운 과제들을 부여할 것이기에 이러한 의구심과 불안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한 디지털 전환 시대에 발맞추어 자발적으로 AI에 관하여 연구하며 학생 맞춤형 수업과 평가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교사들의 충분한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검증되지 않은 정책이 수업의 문턱을 넘어오는 것에 대한 저항이라 여겨진다.
디지털 교육혁신이 AIDT인가?
AI와 디지털 기술이 교육 현장에 도입되어 교육격차를 완화하고 초저출생 시대에 모든 학생을 인재로 키우는 맞춤 교육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이미 뉴노멀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학교의 디지털 전환은 유행이 아닌 필수적인 요건이고 디지털 네이티브인 우리 학생들이 디지털 소양을 키워야 하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단 ‘디지털 교육혁신이 AIDT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유의미한 데이터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는 교육부 지정 AI 교육 선도학교에 3년간 5~6학년 담임 교사로 근무하며 AI・디지털을 활용한 미래 융합 프로젝트 수업을 운영하였다.
일상적인 우리 반 수업 장면을 기술해 보면,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핵심 개념을 찾아보고 탐구 질문 발견하기, 탐구 주제가 가진 의미와 현재 문제 상황 탐색하기,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여 문제 상황 해결하기 등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 나아가 탐구 주제와 관련된 AI 블록 코딩이나 머신러닝 도구로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한다.
학습의 속도와 수준차가 현저한 수학 교과에서는 서책형 교과서로 진도를 나간 후 마무리 차시에 AI 기반 코스웨어를 활용하여 자기 주도적 문제 풀이와 피드백을 받는다.
쉬는 시간에는 자신의 노트북으로 코딩프로그램에 접속해 친구들과 놀거나 일러스트 도구로 나만의 작품을 그리며 포트폴리오를 쌓아가기도 한다.
AI 관련 선도학교가 아닌 학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 학교 교육은 학생들이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AI・디지털 기술은 수업의 적용・분석・창조하기 등의 창의적인 영역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으며 수업에 활기를 불어넣어 학생들이 개념 중심으로 탐구학습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 주는 훌륭한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AIDT는 반복적인 문제 풀이를 통해 창의성보다는 지식 습득의 도구, 포용성보다는 개인의 실력 향상 도구로의 디지털 기술 활용의 면이 더 두드러지기 때문에 학교 교육이 추구하는 목표와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학교 현장의 학생 맞춤형 학습 지원과 AI 기반 채점 및 평가에 대한 요구는 지속해서 있었다.
이를 반영하기 위하여 각 시도교육청은 뉴쌤(서울 외 10곳 연합), 하이러닝(경기), 아이톡톡(경남), 에듀원(부산), 다채움(충북) 등의 이름으로 2022년 하반기부터 지능형 맞춤 학습분석을 지원할 수 있는 AI 기반 교수학습 플랫폼을 구축하고 교사 연수 확대 및 선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플랫폼은 학생 학습 진단 및 분석, 콘텐츠 추천, 교사의 수업 설계 기능, 학생 학습 이력 관리 등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개발 중인 AIDT의 핵심 서비스와 비슷하다.
그런데 구혈미건(口血未乾: 서로 피를 마시며 맹세할 때 입에 묻은 피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사자성어처럼 기존의 교육 정책이 미처 자리 잡고 뿌리내리기도 전에 비슷한 모양의 또 하나의 정책이 던져지고, 그것을 해내야만 하는 이러한 상황이 AIDT가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이라는 선한 뜻을 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AIDT가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닌 백조가 되기 위해서는?
AIDT가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닌 교육 현장에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을 가져오는 백조가 되기를 기원하며 학교 현장의 교사로서 몇 가지 제언을 해본다.
첫째, AIDT 도입으로 인해 소외될 수 있는 학습 지원 대상자(학교의 장이 기초학력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판단하여 선정한 학생)에 대한 철저한 배려가 필요하다.
수학에서 AI 코스웨어의 활용은 학습 능력이 우수하거나 중간 정도에 있는 학생에게는 새로운 성취감을 주고 개별 맞춤형・심화형 문제 제시를 함으로써 좋은 학습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학습 지원 대상 학생들에게는 초반 수업 참여도를 잠시 올려 줄 수는 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책형 교과서와 같은 형태의 학습 부진이 반복된다.
이러한 학습 부진의 원인에는 인지적, 정서적, 교수・학습적, 가정・환경적 요인 등 수십 가지가 있지만 AIDT는 선수 학습 부족, 잘못된 공부법을 개선할 수 있는 학습 처방만을 제시하기 때문에 진정한 학생 맞춤형 개별 수업이 되기 어렵다.
실제로 우리 반 학습 지원 대상 학생들도 AI 코스웨어 활용 수학 문제 풀이 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전자기기 조작 행위에만 흥미를 느껴 아무 답이나 찍고 넘어가는 학습 형태를 반복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학생의 머릿속을 그대로 읽어낼 정도로 정교한 기술을 갖지 않는 이상 학습 지원 대상 학생에게는 ‘모니터와 마우스’가 아닌 ‘연필과 노트’가 필요하다. 교사와의 대화를 통해 교사가 학생의 풀이 과정을 지켜보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과정을 살핀 후 수시로 피드백해주는 학습 상담으로서의 수업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교사들이 수업 외적으로 많은 것을 준비하지 않도록 AIDT 수업 설계의 진입장벽을 낮춰주어야 한다.
AIDT는 공공이 개발한 포털 서비스 안에 민간 교과별 서비스를 결합하는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현재 디지털 튜터, 테크 매니저 등의 학교의 디지털 기기 관리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디지털 기기 관리 전담 인력을 지원 계획 중에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AIDT 자체가 디지털 역량 격차에 따른 교사들의 디지털 소외가 생기지 않도록 새로운 시스템의 개발보다는 현재 사용하는 시도교육청 개발 디지털 플랫폼의 기능 보완이나 사용하기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갖춘 학습데이터 플랫폼의 형태로 개발되어야 한다.
AIDT는 서책형 교과서처럼 과목별로 각기 다른 출판사의 AIDT를 선택하게 될 예정이므로 AIDT의 기능을 익히느라 수업이 결손 되어서는 안 된다. 사용자 친화적으로 원패스 로그인 서비스, 가시성 높은 대시보드 및 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도록 정교하고 수준 높은 기술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교사 누구나 손쉽게 접근하여 수업을 도와주는 도구로써 AIDT가 활용된다면 많은 교사의 공감을 얻으며 교실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셋째, AIDT를 활용하고 시행하게 될 학교와 교육청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7개 시도교육청 중 9개 시도교육청의 2024 주요 업무 계획 속 디지털 교육 추진 현황을 비교해 본 결과 AIDT에 대해 명시하고 있는 교육청은 3곳뿐이었다. 이는 교육부의 정책이 교육청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소통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정책이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되거나 변화되어 교육청에서 반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쿰스(F.Coombs)의 정책 불순응 이론에 따르면 정책 대상 집단에서 불응이 이루어지는 원인을 의사전달의 부족, 집행에 필요한 자원의 결핍, 정책 자체에 대한 불만, 행동화에서의 문제점, 정부의 정통성, 도덕성에 대한 불신 등으로 지목하고 있다.
AIDT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사전달의 부족은 없었는지, 혹은 예산, 기술, 시간, 에너지 자원의 부족은 없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2025년부터 AIDT가 실제 학교 현장에 적용되면서 생길 교사, 학부모, 학생의 다양한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피드백하여 모든 학생을 위한 디지털 교육혁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디지털 세상의 앨리스’를 위하여
그동안 공교육은 인공지능의 전면 등장이 임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느리게 변하고 있었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맞게 교육 내용·방식의 근본적 변화가 요구되었고 공교육에서 과감한 변화 노력과 시도가 필요하였으며 그 방안으로 AIDT가 개발되었다(교육부, 2023).
코로나19 이후 수업에 디지털 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을 때를 돌이켜 보면 지금과 같은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는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수업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의 목소리가 우세하였다.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수업은 학생들에게 디지털 소양과 미래 역량을 향상하게 하여 수업의 많은 장면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수업의 주인이 학생이 되도록 하고, 학생의 학습 결과물이 또 다른 수업의 자료가 되며, 수업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을 뿐인데 학생들은 교사의 생각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여주거나 더 좋은 방법을 제안해주는 수업 혁신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AIDT는 다른 디지털 기술처럼 디지털 혁신으로 가는 수많은 길 중 하나일 뿐이다. 절대적으로 맹신할 필요도 없고 무조건 불신하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급변하는 사회 속에 놓일 우리 학생들이 미래 역량을 갖춘 인재가 되도록 AI와 디지털 기술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수업을 설계할 수 있는 나만의 철학이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의 앨리스’로 디지털 세상 안에서 현실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될 우리 아이들이 헤매지 않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공동체 모두가 성찰하고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교육부. (2023). AI 디지털교과서 추진방안 - 교육부. (2023). 모두를 위한 맞춤 교육의 실현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 - 교육부. (2024).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역량 강화 지원방안 - 교육부. (2024). 초중등 디지털 인프라 개선계획 - 표준국어대사전 ‘구혈미건’(https://ko.dict.naver.com/#/entry/koko/60c1334438ae40b683b58d9f63e05922에서 인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