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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서 '길'을] ⑧런던 베이글 청년 사망- 사건 뒤 고통에는 누가 응답하는가

더에듀 | 한국은 자살률 1위라는 현실을 안고 있지만, 동시에 회복의 힘을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도 품고 있다. <더에듀>는 고통의 시간을 지내고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안신영 큐어링랩 대표의 ‘상처에서 길을’ 연재를 통해 조용히 상처를 견디고 있는 아이들에게 '너의 고통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세지를 전하고자 한다. 더불어 사회가 함께 공감하고 회복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여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오픈런의 성지로 불리는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에서 일하던 26살 청년 노동자가 과로사로 숨졌다. 입사 14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 7월 16일, 고인은 회사 숙소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스케줄표와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근거로 추정한 결과, 사망 직전 일주일 동안 그는 80시간을 일했다. 휴무일에도 동원되었고, 퇴근 후에는 각종 서류 업무에 시달렸다. 사망 하루 전, 아침 8시 58분에 출근한 그는 자정이 가까워서야 퇴근했다.

 

“한 끼도 못 먹었어.”

 

퇴근길에 연인에게 보낸 이 마지막 메시지가 그의 유언이 되었다.

 

유족은 고인의 죽음을 ‘과로로 인한 업무상 재해’로 보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그러나 회사는 사후 수정이 가능한 스케줄표 외에 근로시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 제공 자체를 거부했다. 과로사 의혹을 부인하며 산재 과정에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

 

과로사는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죽음이기에, 사업장이 협조하지 않으면 진실을 밝히기 어렵다. 고인은 지병이 없었고, 건장한 체격의 20대 청년이었다. 부검 결과에서도 사인으로 단정할 만한 기존 질병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회사는 여전히 이를 부인하고 있다.

 


죽을 확률은 높은데 다칠 확률은 낮다


한국은 노동자가 하루 200명씩 다치는 나라이다. 산재보험 자료를 기준으로 2020년 한 해 동안 매일 2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하다가 다쳤다. 이 숫자를 유럽 국가의 산재 수치와 비교해 보면 무언가 이상하다.

 

독일에서는 2019년 한 해 동안 노동자 10만명 중 0.79명이 일하다 사망했다. 독일 노동자는 한국 노동자와 비교할 때 일하다 사망할 위험이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작업장 안전 문제에 엄격한 독일과 그렇지 않은 한국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독일 노동자가 일하다 다칠 확률은 10만명당 1651명으로, 한국 노동자 보다 약 3배 가량 높다.

 

독일 노동자와 비교할 때 한국 노동자는 일하다가 죽을 위험은 높지만, 작업장에서 일하다 다칠 위험은 압도적으로 낮다. 국가별로 통계 산출 방식이나 산업구조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수치는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이다.

 

이 통계 수치들이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한국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숨기기 어려운 사망 사건에 비해 숨기기 쉬운 부상이 더 자주 은폐된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통계에 보이지 않는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한국의 산재 예방 정책은 ‘사고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보고되는 사고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보험료 개별실적요율제’이다.

 

사업장에서 재해가 많이 발생하면, 사업주가 부담하는 보험료가 올라간다. 제도 설계의 취지는 명확했다. 보험료 인상을 막기 위해 사업주가 적극적으로 산재 예방에 힘쓸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다.

 

2017년 강병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제도 덕분에 2015년 삼성은 1009억원, 현대자동차는 785억원, SK와 LG는 각각 379억 원의 산재보험료를 할인받았다.

 

힘 있는 기업일수록 산재보험료 감면을 위해, 노동자가 다치면 산재 대신 ‘공상처리’를 선택한다. 그 결과, 노동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건강보험 기금으로 치료를 받고, 기업은 안전보건공단에 산재를 적게 신고한 덕에 보험료를 할인받는다.

 

대기업이 산재 발생을 줄이는 방법은 공상처리 만이 아니다. 다치기 쉬운 작업일수록 하청 노동자에게 넘겨 그 위험 부담을 줄이곤 한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하청 노동자들은 다쳐도 산재보험을 신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2014년 ‘산재 위험직종 실태조사’을 보면, 조선소 하청 노동자 125명 중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았던 이는 9명(7.2%)에 불과했다.

 

산재처리를 하지 못했던 가장 흔한 이유는 ‘원/하청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였다. 현장에서는 산재보험 신청 자체가 해고 사유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은 자본이 살아있는 노동자를 빨아들이며 성장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AI)의 빠른 발전에 따라, 기본 소득을 논의하는 시대에 이제는 ‘인간다움’, ‘품위 있는 일자리’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아직도, 노동자의 고통에 대해 구조적인 무감각증을 가지고 있다. 절대로 아프다고 말하지 말라며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대한민국에는 아픈 사람이 없다고 발표한다.

 

큐어링랩은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범죄 피해 생존자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 렌즈로 보면, 이 사건은 단지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응답 부재의 문제다.

 

사건 뒤의 고통에는 누가 응답하는가. 그리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사람을 자원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보고 있는가.

 

사건이 끝난 뒤에도, 당사자의 삶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HR의 개념이 Human Resource에서 Human Relationship으로 확장되었듯, 이제는 경제 ‘성장’의 의미 역시 다시 정의해야 할 때이다. 죽은 자본이 살아있는 사람의 삶을 소모하며 성장하는 사회의 결말은 죽음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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