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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교사의 한 해 살이] ⑥'흥미와 보상'...문해력 수업에 들어 온 게임의 매력

권희린 사서교사의 '나를 바꾸는 15분, 릴레이 독서'와 '필사적으로 읽기'

[더에듀] 사서교사들은 독서교육, 정보활용교육,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도서관 활용 및 협력 수업처럼 직접적인 교육활동에 더해 신간도서 수서, 도서관 행사 등을 함께 추진하는 등 교육과정 안팎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사서교사에게는 도서관 운영뿐만 아니라 교육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있으나 2024년 사서교사의 배치율은 15.4%로 매우 낮은 게 현실이다.

 

이에 <더에듀>와 <전국사서교사노동조합>은 기획 ‘사서교사의 한 해 살이’를 통해 이들이 어떤 교육 활동들을 하는지, 장서 및 환경 관리를 통해 어떻게 교육적 기반을 다지는지 등을 알리고자 한다.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학교도서관, 사서교사를 통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코로나 이후로 ‘문해력’이라는 말은 모든 교육의 관심사가 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사흘과 나흘을 구분하지 못하고, (전학 가는 학생에게) 쓰던 교과서를 사서 선생님께 반납하라고 하자 실제로 새 책을 사서(buy) 반납했다는 이야기는 웃지 못할 실화다.

 

사실 이런 상황이 학생들만의 문제일까? 학교에서 ‘중식 제공’ 한다는 안내를 받았을 때 한식은 안 되냐고 묻는 학부모나, ‘교내 검진’이라고 했더니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나요?”라고 묻는 어른들도 있다.

 

글자는 읽지만 내용과 문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이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이런 심각성에 대해서는 모두 인지하고 있고 그 해결책이 결국 ‘읽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줄글을 보면 겁부터 먹는 학생들을 보며 사서교사로서 문해력 교육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 시간에 책을 베개 삼아 자고 있는 학생을 깨우며 “맨날 자면 어떡하니?”라고 말했더니 다른 학생들이 옆에서 말했다.

 

“쟤 게임할 때는 안 자요!”

 

사실이었다. 게임할 때 졸거나 자는 학생은 본 적이 없으니까. 게임이 왜 이렇게 학생들을 끌어당기는지 분석했다.

 

‘흥미로운 콘텐츠’, ‘끊임없는 보상’, ‘현실 도피 수단’.

 

그래서 나는 이런 게임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문해력 교육과 접목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사서교사로서 나의 문해력 교육은 시작되었다.


흥미로운 콘텐츠, 맞춤형 추천도서로!


학생들에게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으로 독서토론 수업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학생은 열심히 적으며 신나게 종알대는 반면, 다른 한 학생은 몇 글자만 겨우 끄적이고 있었다.

 

‘왜 같은 책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읽었는데 이렇게 다를까?’

 

바로 내 흥미를 잡아끄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책은 게임처럼 재미있다고 권하려면 ‘개인의 흥미와 수준을 고려한 책’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수준별 추천도서 목록과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추천도서 목록은 검색 창에서 언제든 쉽게 찾아낼 수 있지만, ‘서울대생이 추천하는~’, ‘하버드생이 가장 많이 읽은~’ 같은 목록은 대부분 카더라 식이다. 목록에 올라간 책들이 모두 훌륭한 책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학생들에게 개개인별로 추천해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내가 추천하는 것은 바로 ‘물꼬방 추천도서 목록’이다. 이 목록은 전국국어교사모임 독서교육분과에 속해있는 물꼬방 선생님들이 매년 직접 읽고 수업에 적용할 수 있거나 학생 수준에 맞는 책을 다양한 주제에 맞게 분류해 둔 목록이다.

 

읽기 수준의 세분화가 정말 촘촘하게 되어 있어서 다양한 독서 스펙트럼의 학생들에게 문해력 교육을 해야 하는 사서교사에게는 엄청 유용한 자료가 된다.

 

이런 좋은 재료가 마련되었다면 이제는 학생들에게 다가가야 할 차례다.

 

“너 무슨 책 좋아해?”, “이 책 읽어봤어?”, “어떤 진로 쪽에 관심이 있니?”

 

이렇게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 학생에게 필요한 책들을 탐색해 볼 수 있고, 어느 정도의 라포 형성이 된 상태에서 내미는 책은 책 추천 성공 확률이 높다.

 

물론 가끔 ‘저는 그런 류의 책 별로예요’라고 시크하게 말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소통의 시행착오 속에서 학생이 진흙 속 진주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 학생은 영원한 독자로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문해력 교육의 첫 단추가 된다.

 


끊임없는 보상? 독서 쿠폰이 딱!


사서교사로서 매달 도서관 이용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며 마음 한구석에 항상 물음표를 두고 있었다.

 

'도서관 행사의 궁극적 목적은 학생들의 지속적인 독서 습관을 정착시키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 잘하고 있나?'

 

문해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일정 시간의 꾸준한 독서를 강조하지만 학생들에게 그런 실천을 위한 가이드라인 보다는 일회성 이벤트에 포커스를 맞출 때가 많았다.

 

'꾸준한 독서를 위한 동기부여 프로그램은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한때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쿠폰 도장을 찍는 마케팅이 떠올랐다.

 

'맞아, 그때 내가 도장을 모아 치즈볼 먹으려고 그 치킨집에서 또 치킨을 시켰었지!'
'도장 10개 모으려고 일부러 동네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셨지.'

 

그 심리를 떠올리며 탄생한 프로그램이 바로 '나를 바꾸는 15분, 릴레이 독서'다.

 

 

프로그램 운영은 간단하다. 15분 독서의 시각화를 위해 15분 모래시계를 구입하고, 우리 학교 상황에 맞춰 쿠폰을 제작했다. 매일 15분씩 독서를 하는 학생에게 뽑기판을 1회 뽑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뽑기판에는 꽝 없이 포춘쿠키나 초코바, 젤리 등 학생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적어두어 도서관에서 15분 독서를 한 누구든지 간식을 받아갈 수 있었다. 게다가 도장 5개는 노트, 도장 10개는 학용품 세트, 도장 15개는 클립보드, 도장 20개는 독서대 등 학생들의 도장이 누적될 때마다 그 보상으로 학생들에게 선물이 제공되었다.

 

학생들은 마치 게임의 보상을 받듯이 도장을 찍기 위해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에 오는 일상의 루틴을 갖게 되었고 도서관은 책 읽는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매일 15분의 독서 루틴 만들기, 이만큼 이상적인 문해력 교육이 있을까?


현실도피? 게임 말고 책으로!


학부 시절에 고전문학강독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고전문학을 좋아해서 들은 수업이었는데 교수님은 ‘강독’은 시키지 않으시고 한 학기 내내 필사를 과제로 내주시고 그것으로 한 학기 성적을 매기셨다.

 

처음에는 두꺼운 스프링 노트에 꾸역꾸역 글자를 써넣으면서 의미 없이 시간 낭비만 하는 수업이라며 담당 교수님 욕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한 학기가 끝나 스프링 노트가 내 글씨로 가득 채워졌을 즈음, 나는 어느 순간 필사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한 번 읽고 쓰고, 잘 쓰고 있는지 다시 읽고, 제대로 썼는지 확인하며 의미를 읽는 정독의 순간들을 통해 손이 글을 만나 마음과 생각이 차오르는 과정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무엇보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어떤 곳에도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집중하면서 마음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경험을 떠올리니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게임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심리를 생각하며 도서부 학생들에게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필사를 해보자고 제안하게 되었다. 동아리 활동명은 바로 ‘필사적으로 읽기’다.

 

 

“필사로 어떤 책이 좋을 것 같아? 어린 왕자로 해볼까? 어때?”라고 묻자 한 학생이 당차게 대답했다.

 

“제가 필사할 책인데 제가 원하는 책으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들어보니 맞는 말이었기에 학생들에게 각자 필사 도서의 선택권을 주었고 나는 책과 노트, 필기도구 등 필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처음 목표였던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참여’도 처음에는 힘들어하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주 2회를 넘어서서 도서관에서 필사를 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도서부 학생들이 필사하는 모습을 본 다른 학생들이 내게 물었다.

 

“도서부만 할 수 있나요? 저도 하고 싶은데요!”

 

도서관에 있는 필사존을 본 선생님들도 물었다.

 

“교사도 참여할 수 있나요?”

 

그래서 올해는 모든 학생과 교직원이 ‘필사적으로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마음이 건강해야 학교생활도, 친구 관계도, 공부도 그리고 문해력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학생의 현실 도피 수단이 게임이 아니라 책, 필사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많은 사서교사들이 ‘문해력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학생들의 문해력을 높일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심심한 사과’와 같은 오해가 발생하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문해력 교육이 단순히 학습도구어를 익히며 어휘력을 키우고 지문을 잘 읽어 내려가는 연습이 아니라 학생들이 책을 가까이하는 그 과정 자체이며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현재 학교도서관에서 사서교사들이 학생들을 만나며 하나하나 쏟는 애정 어린 눈빛과 대화는 분명 독서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갖게 될 것이며 그것이 학생들의 문해력을 움직일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그 과정 자체가 문해력 교육이기 때문이다.

전국사서교사노동조합 = 사서교사 배치와 근로여건 개선을 위해 교육부와 단체교섭에 나서며 사서교사의 전문성 신장과 학교도서관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의 독서교육 발전에 기여하고, 학생들을 성숙한 시민으로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서교사 배치율 증가를 가장 큰 사안으로 두고 있으며 전문 인력 부족으로 인해 일어나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사서교사의 교육활동을 홍보하고 연수 및 연구 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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