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26일 공개한 고위공직자 재산 신고 내역은 우리 사회 양극화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번 발표는 단순한 숫자 보고를 넘어 대한민국 권력층의 경제적 위상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전년 대비 18억 원 증가한 49억 원 신고로 주목을 받았다. 18억 원이라는 증식분은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일해도 만져보지 못할 ‘꿈의 숫자’이지만, 지도층에게는 단 일 년 만에 일구어낸 ‘성실한 성적표’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여의도 ‘금배지’들이 내놓은 성적표는 서민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국회의원 중 재산 상위 10명은 안철수 의원의 1257억 원을 필두로 박덕흠(547억 원), 박정(374억 원), 고동진(373억 원), 백종헌(318억 원), 김은혜(294억 원), 서명옥(270억 원), 윤상현(218억 원), 최은식(111억 원), 양부남(88억) 의원 순으로 나타났다.
입법부뿐만 아니라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 공직자들 또한 그 위세와 재산 규모가 매우 화려하고 강력하다. 한성숙(223억 원) 장관, 최휘영(177억 원) 장관, 이장형(134억 원) 청와대비서관 등 수백억 대 자산가들이 포진해 있다.
법의 저울을 든 사법부 또한 이 화려한 자산의 무게 앞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법관들 역시 임해지(388억 원), 이형근(365억 원), 이숙연(243억 원), 이승련(202억 원), 윤승은(186억 원) 법관 등 압도적인 재산 규모를 자랑한다.
이 화려한 숫자 행렬 속에서 오히려 생경하게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다. 3억 원을 신고한 천대엽 대법관과 18억 원의 조희대 대법원장이다. 이들의 담백한 숫자는 수백억의 자산가들 사이에서 오히려 고결한 품격으로 다가온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부의 축적은 인간의 원초적 욕구이다.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사업가는 성실한 세금 납부로, 자산가는 충실한 보유세 납부로 이미 국가 재정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들이 부를 쌓기 위해 흘린 땀과 노력을 무조건 폄하하거나 비하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가진 부와 명예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조선시대 문신 채제공은 “재물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모으기보다 나누기가 어렵다”고 했다.
나는 묻는다. 대한민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풍경을 마주한다. 하나는 연말정산 때 기부금 세액공제를 받으며 소박한 나눔을 실천하는 평범한 봉급생활자들의 모습이다.
지인 중 한 명인 기능직 공무원은 부모님을 모시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가장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임에도 그는 매달 2~3만 원씩 떼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한다. 거창한 명분도, 드러내기 위한 의도도 없다. 그저 ‘조금 가진 사람이 조금 나눈다’는 소박한 실천일 뿐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공직 생활을 거치며 나름의 소명을 다해왔다고 자부했으나, 정작 이웃을 향한 마음의 크기는 이 소박한 직원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수백억 자산가들의 화려한 숫자보다, 매달 떼어내는 그 2만 원의 무게가 필자의 양심을 더 무겁게 짓눌렀다. 가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눌 용기가 부족했던 스스로의 초라함에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또 하나의 장면은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폐지 줍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이다. 새벽 어스름을 뚫고 손수레를 끌며 하루 몇천 원을 벌어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 굽은 허리와 굳어버린 손마디로 삶의 끝자락을 버티면서도, 그들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선뜻 지갑을 연다.
평생 허드렛일로 모은 전 재산을 장학금이나 복지단체에 기부했다는 소식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이름도 없이 남기고 떠난 ‘익명의 기부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그런 분들이다. 가진 것이 없어서 나누고, 그래서 더 크게 나누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오직 사전 속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던 ‘이웃사촌’의 진정한 화신(化身)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과연 누가 이 사회의 진짜 ‘노블레스’인가. 수백억의 자산을 가진 이들인가, 아니면 하루를 겨우 버티면서도 타인을 위해 손을 내미는 이들인가.”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쥔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는 과연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이에 대해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인간은 타인에게 기여할 때 비로소 인간다운 품격을 갖춘다”고 역설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구호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숫자가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다. 결코 부의 크기로 증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결핍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책임이 커진다는 단순한 명제가, 오늘의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