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조선미 교수에게 실망한 까닭은 육아 교육 분야에서 한창 뜨고 있는 조선미 아주대 교수는 최근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라는 제목의 직무연수를 열었습니다. 마치 라디오 상담처럼 교사가 자신이 힘든 점을 적어 사연을 보내면, 조 교수가 그 사연 중 하나를 골라 조언해 주는 형식으로 꾸려진 연수였습니다. 한 교사가 ‘친절하지만 단호한’ 교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식의 사연을 보냈는데 조선미 교수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친절하지만 단호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건 이상적이며 비현실적 욕구이다. 친절과 단호함을 조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쁜 사람으로 비추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다. 다정할 땐 다정하게, 엄격할 땐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 일견 타당한 말이기도 합니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두려워 단호해야 할 때 단호하지 못하는 걸 꼬집는 것 같기도 합니다. 친절함과 단호함 둘 다를 잡고 싶어 우왕좌왕, 우물쭈물하면서 정작 둘 중 하나도 잡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친절하며 단호한’ 태도를 고작 저런 식으로밖에 해석하지 못하고 그 본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조 교수에게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친절하며 단호한’이라는 문구는 그렇게 가볍게 나온 게 아닙니다. 초등교육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학급긍정훈육법(Positive Dicipline in the Class) 그리고 육아 분야에서도 널리 알려진 긍정 훈육(Positive Discipline)의 핵심 철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는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와 그의 제자인 루돌프 드레이커스(Rudolf Dreikurs)의 민주적 육아 및 교육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친절하며 단호한’이라는 문구는 이미 미국 교육과 육아 분야 전반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인 겁니다. 이 표현의 기원이 어딘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섣불리 본인이 생각한 바대로만 협소하게 해석한 것에 실망한 것이 첫째요, 조 교수의 전문 분야인 육아 교육 전반에 널리 알려진 이 표현을 모르고 있다는 것에 실망한 것이 둘째입니다. 그러니까 조 교수는 ‘친절하며 단호한’이라는 표현 자체를 사실상 모르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조 교수의 책도 몇 권 읽었고, 그가 나온 인터뷰 등도 많이 보았고, 심지어 강연에도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친절하며 단호하다는 건 그럼 대체 친절하며 단호하다는 건 뭔가요? 제가 다른 글에서 적은 게 있어 잠시 그 내용을 빌려오겠습니다. “일단 친절하며 단호하다는 건, 쉽게 말해 ‘감정’에 친절하고, ‘행동’에 단호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아이들이 교실에서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가 준비물 중 하나인 케첩을 갖고 친구들을 향해 총 쏘는 흉내를 냅니다. 그러다가 실수로 진짜 케첩이 발사돼 친구 옷에 묻었습니다. 이때 친절하기만 한 교사라면 어떻게 할까요? 아마도 아이를 달래는 걸로 끝낼 겁니다. “에고, 괜찮아, 괜찮아. 친구한테 장난치려다가 실수로 그럴 수 있지. 다음부터 조심하면 돼.” 아이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받았지만 아이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자기 잘못에 책임을 지지 않아요. 아이는 이 정도의 잘못은 그냥 해도 되는 거구나, 생각할 겁니다. 반면 단호하기만 한 교사는 어떨까요? 아마도 호통을 치거나 화를 내겠죠. “곽노근, 지금 뭐하는 거야? 선생님이 먹는 거로 그런 장난치지 말라고 했지? 몇 번을 얘기해야 알겠어? 몇 번을!! 네가 친구 옷 다 물어줄 거야?!” 아이는 내가 잘못했다는 걸 알긴 알겠지만(모를 수도 있습니다), 마음은 충분히 공감받지 못했기 때문에 내면에 울분이 가득 찹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때론 책임을 전가하기도 합니다. 애꿎게 옆에 아이한테 책임을 돌리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친절하며 단호한 교사는 어떨까요? ‘감정’에 친절하지만(곧 공감해 주지만) ‘행동’에는 단호합니다. “노근아, 실수로 그런 거 알아. 노근이도 놀라고 당황스러웠지? 그렇지만 케첩이 묻은 혜림이는 어떤 기분일까? 혜림이한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지, 혜림이한테 사과하고 혜림이 옷에 묻은 건 네가 최선을 다해 지워줘야 해.” 그러고 나서 화장실에 가서 지울 수 있는 만큼 지울 수 있게 합니다. 어쩌면 정말로 친구 옷을 물어줘야 할 수도 있음을 알려줍니다. 아이 마음에 공감해 주되, 아이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건 반드시 일러주고 책임지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뻔한 말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이렇게 ‘친절하며 단호한’ 태도로 아이를 대하는 교사는 생각만큼 많지 않습니다. 아이의 잘못부터 지적하고 꾸중으로만 일관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항상 먼저 해야 할 건 감정에 대한 ‘공감’입니다. 당연히 ‘공감’으로만 끝내서는 안 됩니다. 놓치지 않고 해야 할 건 ‘꾸중’이 아니라 행동에 대한 ‘단호함’입니다. 네가 잘못한 행동에 있어서는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행동에 대한 단호함’. 잘못된 행동을 알려주고 책임지는 행동을 할 수 있게끔 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단호함. 그러나 윽박지르거나 화내지 않는 단호함. 우리 아이 감정은 읽어주셨나요? 먼저 감정에 공감을 해줘야 한다고 하니 많은 선생님께서 반감부터 가지실 것 같습니다. 아이의 잘못을 보호자에게 알리자, “우리 아이 감정은 읽어주셨나요?”라고 말하는 못난 보호자의 몹쓸 방어기제가 우리 교사의 심장을 찔렀던 직간접적 기억. 그 기억은 우리 교사들로 하여금 감정 읽기를 꺼리게 만들었지요. 정말 못난 일부 보호자들 때문에요. 그렇게 말한 본인들은 우리 교사들 마음은 먼저 읽어주고 그런 말 했던가요? 본인들도 전혀 실천하지 못하는 감정 읽기를 교사에게 강요하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건가요. 선생님들이 감정 읽기에 대해 노이로제에 가까운 거부감을 보이는 것이 이해는 됩니다.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로, 아니 그 전부터 우리는 몇몇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감정 읽기 트라우마입니다. 하도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일어나니, 감정 읽기는 사치라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친구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아이, 심지어 선생님을 때리는 아이에게 감정 읽기가 웬 말인가요. 교실 수업시간에 괴성을 지르고 친구에게 연필을 휘두르고 선생님 앞에 드러누워 핸드폰으로 교사를 촬영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아이에게 무슨 놈의 감정 읽기인가요. 그럼에도 힘겹게 얘기합니다. 감정 읽기는 필요하다고요. 이 세상 교실에는 그런 아이만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는 감정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쌓인 불같은 화가 눈 녹듯 스르륵 사라지니까요. 사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몇 막돼먹은 아이들한테도 감정 읽어주기는 필요하다고 한다면 너무 나간 걸까요? 그럼에도 저는 감정 읽기가 사실은 모든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는 것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감정‘만’ 읽어주는 데 있지요. 감정만 읽어주고 자기가 한 잘못된 행동에 책임지게 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자기 행동을 되돌아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감받았으니 내 행동은 해도 되는 행동이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줘 버립니다. 친절함과 단호함, 둘은 조화롭게 함께여야 합니다. 조 교수의 말처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함께 나타나야 합니다. 감정에 대한 공감 먼저, 잘못된 행동에 대한 단호함 나중에. 물론 때에 따라 순서는 바뀔 수 있겠지만요. 감정 읽어주기, 왜 필요한가 감정 읽어주기, 곧 공감하기는 왜 필요할까요? 첫째,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 준다는 것은 곧 그 아이를 존중해 주는 것이니까요.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으니까요.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아이는 자존감이 올라갈 겁니다. 자존감이 올라간 아이는 결국 이 세상에 주체적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겁니다. 그 자체로 교육자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 감정에 대한 존중이지, 아이가 한 잘못된 행동에 대한 존중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고 문제해결을 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아이를 보면 한바탕 큰소리로 샤우팅을 해버리고 싶은 마음, 교사로서 솔직히 많이 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소리 치고 나면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휘감아 은근히 꿀꿀하고 우울합니다. 때로 자괴감도 들고요. 게다가 내 샤우팅에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척이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간혹 더 반항적으로 나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그렇다면 감정 읽어주기가 문제해결을 더 쉽게 해 주는 것이 사실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씩씩거리던 아이도, 분노로 똘똘 뭉쳐 있던 아이도, 감정을 읽어주면 일차 저지선이 한 커플 벗겨지니까요. 아주 드라마틱하게 벗겨지진 않더라도 서서히 누그러집니다. 그러면서 교사와의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줄어들고 이내 아이는 교사의 말이 귀에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 화가 누그러지면 자기 잘못도 순순히 인정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이 감정 읽기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행동에 대한 단호함, 즉 아이가 잘못한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공감만 주구장창 했을 때 그 공감은 언젠가부터 힘을 잃어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니까요. 감정은 죄가 없다(Feelings are not wrong) 감정은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 줘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를 해치고 싶은 분노’도, 그런 감정을 가진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어찌 보면 감정이 생기는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난 그 자체만 가지고 죄가 되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행동’입니다. ‘누군가를 해치고 싶은 분노’라는 감정을 넘어, 실제 ‘누군가를 해치는 행동’은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해를 끼치는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되며 단호하게 교정되어야 합니다. ‘감정’과 ‘행동’은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런 ‘감정’이 든 것 자체는 수용하고 존중해 줘야 하지만 ‘행동’에 있어서는 단호해야 합니다. 내 행동으로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명백히 져야 합니다. “네가 친구를 때리고 싶을 만큼 화난 건 알겠어. 누구나 그런 감정을 가질 때가 있어. 그러나 그렇다고 진짜로 친구를 때리면 안 되는 거야. 그건 절대 안 되는 행동이야.” 더 구체적인 얘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계속>
더에듀 지성배 기자 | 이덕난 국회입법조사처 교육문화팀장(교육학박사)이 ‘2025년 강인수논문상’을 수상했다. 대한교육법학회는 지난 13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연차학술대회를 열고 이덕난 팀장에게 ‘2025년 강인수논문상’을 수여했다고 16일 밝혔다. 대상 논문은 지난 2023년 12월, 서이초 사건 직후에 발표한 ‘교권 보호 4법 개정의 의미와 교육활동 보호의 법적 과제 분석’이다. 논문은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보호와 학습권 보장을 위한 국회의 입법이 갖는 의미을 살피고, 개정 법률의 효과적 시행과 향후 교육활동 보호 강화를 위한 입법적·정책적 개선과제를 제시했다. 그동안 교권 보호를 위한 연구와 입법·정책 개선에 노력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팀장은 “교육은 대한민국 경제와 K콘텐츠 발전의 원동력”이라며 “교권 추락과 그로 인한 학습권 침해로 인해 학교 현장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어 앞으로도 교권 보호와 교육공동체 회복 등을 위한 교육법 연구 및 제도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할 계획”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강인수논문상은 대한교육법학회 창립 멤버로 한국 교육법학의 기틀을 다지는 데 공로가 큰 강인수 전 수원대 부총장이 교육법 발전을 위해 특별 출연한 금원으로 지난 2024년 제정된 논문상이다. 최근 5년 이상 논문의 양과 질을 모두 평가해 해당 위원회에서 수상자와 수상논문을 선정하고 있다. 이 팀장은 KCI 등재학술지와 국제학술지 등에 36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대한교육법학회 회장(2023년-2024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더에듀 |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변동불거’ 즉, 끊임없이 흘러가며 머무르지 않는 세태를 반영하는 표현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말은 단순한 철학적 명제가 아니다. 올해 한국 사회가 겪은 격렬한 진동을 정직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특히 교육 분야는 그 변동의 중심에서 정치 못지않은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올해 초 한 대학에서는 AI가 작성한 학위논문이 심사 과정에서 뒤늦게 발견돼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학생은 “AI를 쓰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절박함을 토로했고, 교수들은 “기술이 아니라 교육이 먼저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올해 초부터 실시한 인공지능(AI) 교과서 채택은 제동이 걸려 교과서의 지위를 잃고 참고 자료로 전락했다. 2025년 전격 의무적 시행에 들어간 고교학점제는 현재 수많은 반대에 부딪혀 향후 거취가 불투명한 상태다. 이런 사건들은 변화의 파도를 타고 귀추가 주목되고 규정 위반은 아닐지라도 배우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탄이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지방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령인구 감소로 한 학년 전체가 ‘10명 이하’ 로 떨어졌다. 교사는 “이 아이들이 서로 경쟁 상대조차 없어 성취감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수도권의 대형 학교에서는 급격한 전입 증가로 교실이 포화 상태가 되어, 학생들이 복도에서 조별 과제를 하고 교사는 수업 대신 관리 업무에 매달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교육 불균형이 양극단에서 동시에 폭발하는 현실, 이 모든 것이 바로 ‘변동불거’의 잔혹한 현재다. 이처럼 변화는 이미 우리의 일상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위험한 것은 변화보다 느린 우리의 대응이다. 교육 정책은 여전히 ‘몇 년 뒤 적용’을 전제로 설계되고, 대학은 위험을 우려해 새로운 실험을 미루기 일쑤다. 하지만 기술과 사회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10년 뒤를 준비해야 할 학교가 10년 전의 기준에 붙들려 있다면, 그 사이의 ‘잃어버린 세대’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은 무엇인가? 첫째, 변화를 따라가는 교육이 아니라, 변화를 선도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다. 단지 AI를 수업 보조 도구로 쓰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미 해외에서는 고등학생이 AI 모델을 직접 수정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수업이 확산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AI 사용 여부’만 따지고 있다. 기술을 통제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창조의 재료로 보아야 한다. 둘째, 교육 의사결정 구조의 ‘속도 혁신’이 필요하다. 정책 하나가 현장에 도달하는 데 수년이 걸리는 구조로는 미래를 따라잡을 수 없다. 실험적 학교 제도, 모듈형 학사제 등 빠른 시범 운영과 즉각적 피드백 체계를 확립해, 변화에 ‘적응’이 아니라 ‘추진’으로 대응해야 한다. 셋째, 교육의 중심을 다시 ‘사람’에 놓는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기술 도입과 제도 개편이 아무리 급해도, 결국 변화의 충격을 견디는 건 학생과 교사다. 그들의 피로를 외면한 혁신은 오래가지 못한다. 학생의 학습 경험, 교사의 수업 자율성, 학부모의 신뢰, 이 세 가지가 단단히 서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이제 ‘변동불거’의 해가 저물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흐름은 내년이라고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역사학자이지 미래학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는 “변화는 미래의 유일한 상수(常數)”라 했다. 세상은 이미 새로운 속도로 빠르게 달리고 있고, 교육이 따라오지 못하면 가장 큰 피해는 아이들 몫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변화의 파고가 밀려올 때마다 뒤로 밀려날 것인가? 아니면 그 파도 위에 올라타 새로운 길을 열 것인가? 지금처럼 흔들리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분명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어떤 변동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교육의 방향,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용기, 폐쇄가 아니라 개방, 과거의 답안지가 아니라 미래의 질문지를 선택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변동불거’는 우리에게 “변화 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지는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한다. 그 결정을 미루지 않는 용기, 그것이 다음 시대를 밝히는 첫걸음이라 믿는다.
더에듀 | 2022년 기준 학업중단학생이 매년 5만여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학업 중단 학생들은 대안교육기관을 통해 기초·기본 교육을 받으며 검정고시 등을 통해 학력 인정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교육기관에서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어떤 교육을 진행하고 있을까. 또 그 안에서 학생들은 어떤 성장의 과정을 거치고 있을까. <더에듀>는 지난해에 이어 금산간디학교 아이들이 작성한 자신의 성장 기록을 통해 대안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여러분 모두 3학년 교실 옆에 있는 클라이밍 벽 한 번씩 보셨죠? 네, 바로 제가 만든 벽이에요.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시도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지금부터 제가 클라이밍을 진심으로 즐기기 위해 만들어 온 과정들을 이야기 해드릴게요. 내가 진심으로 즐기고 싶었던 운동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에요. 혹시 여러분은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 때가 있었나요? 저는 클라이밍을 하면서 그것을 조금씩 느꼈어요. 4년 동안 클라이밍을 꾸준히 다녔지만 처음 클라이밍을 접했을 때의 그 열정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었죠. 제가 클라이밍을 처음 시작한 것은 4년 전이예요. 6학년 때 하기로 한 클라이밍 체험을 못 하게 된 게 한이 맺혀서 집 근처 클라이밍장을 다니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죠. 클라이밍을 시작하고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때 선생님도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높은 난도를 금방금방 쉽게 풀어내면서 ‘아!! 이 운동은 오래 하겠다’ 라는 감이 딱 왔거든요. 도전 과제마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각자의 장점과 방식을 이용해서 풀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그 점이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줘서 실력이 느는 속도를 더 붙여 주었죠. 하지만 클라이밍을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운동하는 시간에 비례해 실력이 함께 늘지 않고 정체기가 오는 것을 느꼈어요. 금산간디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같이 수업을 듣는 또래 친구들과 같은 시간대에 만나서 놀고 헤어지는 걸 반복해서 클라이밍장을 갈 때마다 어색할 일이 없었죠. 그런데 금산간디에 들어오고 난 이후부터는 클라이밍장을 갈 시간이 없다 보니 같이 할 사람이 없어졌어요. 주말에 가끔 가거나 방학에만 회원권을 끊어서 다녔는데 예전에 같이 놀던 애들은 전부 학원다니느라 잘 나오는 일이 없었고, 갈 때마다 어색한 사람들과 수업을 듣다 보니 같이 재밌게 수업하기보다는 남들의 클라이밍 실력을 자꾸 의식하기 시작했어요. 처음 초보자로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때는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도 늘 새로웠고 누가 잘하든 못하든 다 같이 고민도 해 보면서 문제를 풀었는데 자주 나오지 않으니까 문제보다 문제를 푸는 사람을 먼저 보게 되었어요. 그만큼 제가 느끼는 주변 시선들도 점점 많아졌고, 이런 방식으로 클라이밍장을 다니다 보니 흥미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혼자서 운동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는 시점이었죠. 그러다 어느 날, 친구랑 함께 클라이밍장을 다녀왔어요. 평소 편하게 지내던 친구와 같이 클라이밍을 하니 주변의 시선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제 취미를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정말 좋아하고, 또 잘하고 싶어 하는 운동을 주변 사람들과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올라왔어요. 제가 진심으로 즐기는 방법으로 모두와 같은 마음을 느끼고 싶었죠. 더 나아가서 아예 학교에 클라이밍 벽을 만들어서 친구나 후배들과 같이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클라이밍은 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벽을 만들어서 제대로 된 클라이밍 문화를 자리 잡게 하고 싶었죠. 그 바람은 곧 1년간의 장기 프로젝트가 되었어요. 무모하기도 한 도전이었지만 다 같이 클라이밍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힘차게 시작한 프로젝트였죠. 등산학교에서의 인연 벽을 만드는 작업을 설명하기 이전에 제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큰 동력을 불어넣어 준 경험을 하나 소개할게요. 바로 방학에 다녀온 코오롱등산학교예요. 6박 7일 동안 산 위의 깎아지른 바위를 등반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많은 배움을 얻었고 많은 인연을 맺었어요. 바위를 오르는 동안 의지하고 매달릴 줄을 묶는 매듭법, 먼저 올라가는 선등자와 뒤따라 올라가는 후등자 간의 신호법, 중간중간 쉬는 포인트에서 안전하게 쉬고 다시 올라가기 위해 준비하는 방법 등 안전을 위한 기술을 배웠어요. 모두 처음 해 보는 생소한 기술들이었지만 매일 벽을 타면서 기술을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과정이 정말 새롭고 재미있었기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높은 산에서 진행하는 만큼 낙석 같은 위험한 변수도 많았고,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 낯설기도 했지만 이런 점들은 같이 등반하는 사람들과의 동질감을 단시간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같은 목표를 보고 오른다는 것에서 클라이밍이 팀 스포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소속감과 동질감을 많이 느꼈고요. 어색한 공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벽을 타는 건데도 혼자 했던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혼자 허허벌판을 돌아다니다가 마을을 찾은 느낌이랄까요. 바위를 오르다 보면 가장 많이 듣고, 또 외치는 말이 있었어요. 먼저 올라간 선등자가 줄을 당겨주면서 바위를 올라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하늘을 보고 ‘줄당겨’라고 하면 위에서 듣고 줄을 당길 수 있었어요. 그래서 발 딛는 자리가 불안하거나 손을 놓치기 직전이라면 너나 할 거 없이 ‘줄당겨! 줄당겨!!’하고 다급하게 외치게 되어서 꽤 진풍경이 펼쳐졌죠. 이제 왜 사람들이 다 같이 산에 다니고 함께 클라이밍을 하러 가는지 깊이 실감할 수 있는 경험이었어요. 산에 다니는 사람들의 공통점인지 모르겠는데, 등산학교 사람들 모두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느새 인연이 되어 있었어요. 같은 팀원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분들과 같은 방을 함께 썼던 분들, 그리고 강사님들까지 연락처를 교환하고 서로 아쉬워하며 다음 등산학교 때 보자는 말을 남겼어요. 전 솔직히 이렇게 깊이 몰입하더라도 다시 집으로 오면 금방 잊힐 줄 알았는데 어느새, 제가 먼저 다시 만나고 싶었던 강사님에게 같이 산에 가자고 연락하고 있었죠. 그렇게 새삼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이렇게 반가운 일인지 몰랐어요. 어떤 선생님은 나중에 직장을 다니게 되더라도 산에 가게 되면 꼭 연락해달라는 말도 해주셨고 등산학교를 주최한 코오롱에서도 인터뷰를 요청해 주셨죠. 제가 보고 느끼던 클라이밍에서의 세상이 한층 넓어졌다는 것을 오래 여운이 남도록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작업 등산학교를 다녀온 뒤 방학부터는 벽을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어요.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합판을 전부 붙인 뒤에는 얼추 벽의 모양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저는 벌써 완성된 것 같은 겉모양에 신나서 바로 홀드 몇 개를 합판에 붙여 봤어요. 매달려 보니 클라이밍장에서 홀드를 잡고 매달릴 때와 똑같은 그립감에 저는 환호를 질렀어요. 먼 길을 달리고 있는 도중에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죠. 이제 드디어 학교에서도 클라이밍을 다 같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되니 텐션이 올라갔어요. 그래서 한동안 흥분한 상태로 매달려 있다가 다른 홀드도 붙여 보고 하면서 한동안 들떠 있었어요. 그동안 작업 중간에 힘 빠지는 시간이 있기도 했지만 벽이 완성되어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게 위로되는 느낌이었죠. 클라이밍이 단순히 혼자 잘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닌 함께할 때 진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만들어지는 학교 문화 벽을 만드는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면 클라이밍 문화를 학교에 스며들게 하는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어요.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수업을 개설하고 목요일 동아리에도 클라이밍 동아리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해야 했죠. 학생 개설 수업은 그런 제 활동의 중심이 되는 활동이었어요. 예준이와 함께 복싱과 클라이밍 수업 ‘오르락 때리락’을 열기로 하고 수업을 준비했어요. 수업할 때 서로의 수업을 보조 해주고, 앞으로 6차시 동안 진행할 수업의 세부 계획을 함께 짰어요. 학습분기가 시작된 뒤 수요일 건강교과에서 바로 첫 수업을 진행했어요. 3학년 교실에 모여 그날 할 수업 내용을 알려주고 예준이의 복싱 수업을 먼저 보조교사로 같이 진행했어요. 복싱 수업이 순조롭게 끝난 뒤로는 쉬는 시간을 가지고 바로 제 수업을 진행했죠. 먼저 클라이밍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 삼지점을 알려주고 쉬운 문제를 중심으로 레벨테스트를 했어요. 특히 삼지점은 다른 동작으로 나아갈 때도 잘 활용해야 해서 한 번씩 삼지점을 이용한 문제를 풀어본 뒤에 자유롭게 문제를 풀게 했어요. 한 명씩 벽에 붙어서 문제를 풀면 제가 뒤에서 자세를 봐주는 방식으로 쭉 진행했어요. 중간중간 긴 문제인 지구력 문제도 만들어 주면서 각자 난이도에 맞게 문제를 풀었어요. 애들한테 잘 설명하다가 저도 잘 모르겠어서 막히는 부분도 가끔 있었지만 대부분 잘 알아들어 주었고 재밌게 수업이 진행됐어요. 수업계획서를 쓸 때만 해도 제가 직접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실감이 잘 나지 않았는데 막상 수업을 진행해 보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동안 줄곧 저 혼자만 진심이었던 클라이밍에 다른 사람도 점점 진심이 되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었죠. 쉬는 시간 틈틈이, 심지어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밤에도 열정적으로 벽을 타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또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제 수업을 들은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배운 것을 가르쳐 주는 등 문화가 형성되는 것도 많이 보였고 덕분에 절로 뿌듯함이 들었어요. 벽이 완성되고 문제를 몇 개 만들어 놓자마자 와서 문제를 풀어보는 애들이 많았던 만큼 이미 클라이밍에 감을 잡은 친구들도 많이 있었어요. 쉬는 시간마다 벽에 모여서 이것저것 해 보고 벽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며 벌써 목표가 이루어진 것 같아서 저도 계속 들떴고요. 점심을 먹고 벽으로 가보면 항상 애들이 있었고, 저도 신나서 암벽화를 가지고 애들한테 달려갔어요. 문제 푸는 법을 알려주다가 수업에서 진행할 내용을 먼저 알려주기도 하면서 제가 설치한 벽이 만든 변화를 기쁘게 느꼈어요. 내가 주는 영향들 저는 서로 간의 갈등으로 관계를 외면하고 싶더라도 공동체 속에서 느끼는 것에 이끌려 금방 돌아오고 마는 사람이에요. 그만큼 예민하게 느끼는 것도 많았고 아쉬운 소리를 하기 힘들어하기도 하죠. 얼마 전까지는 제가 이뤄낸 것들의 주축이 저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벽을 만들고 수업과 동아리를 진행하면서 제가 주변에서 받은 영향만큼 제가 주는 영향도 얼마나 컸는지 체감할 수 있었어요. 벽을 만들기 위해 도움을 주신 많은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벽이 완성되자마자 찾아와서 벽을 탔던 친구들과 제가 연 수업에 들어와 준 친구들까지 넘치는 관심을 받으며 깨달은 것이었어요. 많은 깨달음 중에서 가장 기쁜 점은 어떤 것이 되었든 제가 한 만큼의 보답이 저에게 돌아왔다는 것이에요. 3년 동안 제게 많은 안정을 준 것은 저희의 공동체였기에 더 좋게 만들고 싶었고, 더 오랫동안 따듯했으면 했어요. 그 바람이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공동체에 더 열정을 기울이게 만들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보답 덕분에 저는 다시 무엇이든 할 힘이 생겨나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과 연결되는 동시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것 같아요. 하나의 취미로 끝날 수 있었던 이 운동을 논문으로 거쳐서 저에게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 내었으니까요. 논문 작업을 하면서 힘들고 싫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변화한 만큼 앞으로도 도움이 될 밑거름을 남겨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더 많이 들어요. 그동안 했던 작업의 마무리도 잘 되어가고 있는 만큼 이제는 벽이 단지 물리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앞으로도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이을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더에듀 전영진 기자 | 내년 시행을 앞둔 학생맞춤통합지원법(학맞통)의 원점 재검토 요구가 나왔다. 탁상행정의 절정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학맞통은 경제적 빈곤이나 기초학력 미달 등 복합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조기에 발굴하고 지원하려는 목적에서 올해 국회를 통과해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세부 사항 준비 과정에서 교사를 교육자가 아닌 복지 조사관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교사에게 학생의 가정환경과 경제상황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복합적 위기라는 표현도 문제로 제기됐다. 객관적 지표 없이 한정된 예산으로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 이는 교육부가 그간 추진한 학생에 대한 편견과 낙은 효과 방지 원칙과도 정면으로 배치한다. 교육부는 대표적으로 2013년 가정환경조사를 폐지하는 등 민감 정보 접근을 엄격히 제한해 왔다. 충북교사노조는 “교사가 학생들의 불행을 저울질하고 판단해야 해 민원의 최전선에 서게 될 수밖에 없다”며 “교육 공동체의 신뢰는 무너지고 학교는 갈등의 장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교육부는 맞춤형 지원이라는 미명 하에 교사에게 학생의 가난과 불행을 캐내라고 강요한다”며 “지원을 빌미로 학생을 선별하고 낙인찍는 행태이다.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법한 가이드라인과 시행령 즉각 폐기 ▲학맞통 시행 전면 유보 및 원점 재검토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요구했다. 한펴, 초등교사노조(초등노조)가 지난 11~15일 초등교사 88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생맞춤통합지원’ 긴급 설문조사 결과, 운영 과정에서 △교사의 행정 책임 및 비본질업무 증가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제도 개선을 위해선 △학교 역할은 의뢰에 한정하고 지역 학맞통 지원 센터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더에듀 |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교육부 정부 보고에서 서울대학교와 지방국립대의 정부 예산 격차를 지적하며 “산업화 시대에는 자원이 없으니 큰아들에 ‘몰빵’을 했다. 자원이 없으니 할 수 없이 한 군데 몰빵했지만 지금까지 그러고 있는 건 너무 잔인한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국립서울대학교에 대한 국가지원이 다른 지방대학들보다 근 3배나 많은 점을 지적하며 그 부당성을 비판한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후련한 말이다. 1인당 학생지원비가 연간 6000여만원과 2000여만원의 차이가 나는 사실을 교육부는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아마도 관행으로 굳어져 왔기에 문제의식이 마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더 환영할 만한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차별적인 지원을 어느 누구도 지적할 수 없다는 현실 속에서 대통령이 입을 연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대통령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공개된 장소에서 지적할 수 없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는 교육기관이기 이전에 이미 권력이 되었고 학벌이 되었다. 장관급 고위공직자 중 약 60%, 국회의원 중 약 40%, 전체 검사의 약 60%, 전체 4년제 대학교수의 약 30%, 전국규모의 7대 일간지 전체기고자의 약 50%를 서울대 출신이 차지한다. 그런 위상을 가진 대학에 누가 어떻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대통령은 그런 대학에 대한 국가 지원에 대해 날 선 지적을 했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울대라는 교육기관과 정치권력이 과거의 문벌처럼 그리고 얼마 전의 군벌처럼 강고하게 얽혀있는 권력의 담지자(擔持者)이기 때문이다. 공고화하는 대학 서열 체제와 그것을 뒷받침한 국가의 편향 지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대통령의 지적 전에 교육부장관이, 국회의원이, 논평가들이 이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말을 하지 않은 우리 사회가 불행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것은 개혁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대통령만이 우리나라 교육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을 현실화한 것은 더욱 안타깝지만 공론화한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특정 학벌이 이끌어가는 불행하고 불의하고 불안한 사회를 끝낼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더에듀 | 학교는 왜 가야 하는가. 이 짧은 질문은 늘 우리 교육의 뿌리를 건드린다. 아이들은 주저 없이 “공부하려고요”라고 말하지만, 그 대답은 언제나 절반만 빛난다. 학교는 성적을 쌓는 곳이기 전에 ‘사람을 빚는 곳’이다. 꽃이 피기 위해 뿌리가 먼저 자리 잡아야 하듯, 배움도 태도가 먼저 자라야 한다. 오늘의 문제는 지식이 과도해지고 태도가 가벼워졌다는 데 있다. 점수는 높아지는데 말투는 거칠고, 성적은 오르는데 책임감은 낮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결함이 용서되는 분위기 속에서 “얘는 성적이 좋으니까”라는 말이 어느새 면죄부처럼 쓰인다. 이는 가정과 학교가 함께 만들어 낸 왜곡된 신호이며, 아이들에게는 위험한 착시이다. 실태는 더 선명하다. 수학을 잘 풀어도 수업 중에 상대 말을 끊는 아이가 있고, 글짓기를 잘해도 친구 의견을 비웃는 아이가 있다. 지식만 자라면 언어는 칼이 되기도 하고, 논리는 타인을 꺾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세상은 그런 아이에게 “스펙은 뛰어나나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문제집은 해결했지만 사람 문제에서는 오답을 낸 셈이다. 통계도 이 현상을 뒷받침한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교사 10명 중 7명은 “학업 능력보다 기본 생활 태도 부족이 학교생활 문제의 주된 원인”이라고 답했다. 또 한 청소년 패널 조사에서는 ‘성적 부담’보다 ‘또래 관계 스트레스’가 학생 행복도를 더 크게 떨어뜨린다고 나타났다. 성적 중심 경쟁은 지식을 키웠지만, 관계와 태도에서는 허약해진 아이를 남겼다. 이제 필요한 것은 관점을 전환하는 일이다. 문제 푸는 법만 가르치는 교실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사는 법을 함께 배우는 교실을 만드는 것이다. 인사하는 습관, 경청하는 태도, 배려하는 마음, 규칙을 지키는 의지 같은 기본은 학습 능력을 떠받치는 기초 체력이다. ‘수신제가(修身齊家)’의 고전적 가르침처럼, 몸가짐이 단정해야 배움이 뿌리를 내린다. 현장에서 교사의 역할도 다시 세워야 한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보다 태도를 더 본다. 칼릴 지브란은 “아이들은 당신의 품이 아니라 시간을 향해 달려가는 화살”이라 했다. 화살이 곧게 날아가려면 활을 당기는 손이 먼저 안정되어야 한다. 교사의 태도는 그 활의 긴장과 같다. 교실 변화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책상을 스스로 정돈하고, 친구가 말할 때 눈을 맞추고, 잘못하면 인정하고, 약속은 지키려 애쓰는 아이는 배움의 토대를 단단히 갖춘 아이다. 이런 태도는 교사가 일상 속에서 조용히 보여주는 본보기와 일관된 메시지 속에서 자란다. 아이의 인격은 지식보다 천천히 자라지만, 자란 뒤에는 더 멀리 간다. 우리가 만들 교실의 미래는 결국 선택의 문제이다. 점수를 우선하는 교실을 택할 것인가, 사람됨을 함께 세우는 교실을 택할 것인가. 교육은 언제나 두 길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한쪽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 태도가 뿌리를 만들고, 지식이 가지를 확장하며, 둘이 조화를 이룰 때 아이는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된다. 결국 배움의 본질은 ‘사람됨’에서 시작한다. 교실이 아이의 인격을 세워주고, 지식은 그 위에서 더 큰 세상을 향해 자라난다. 우리 교육이 다시 질문해야 할 단 하나의 문장은 이것이다. 오늘의 교실은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더에듀 전영진 기자 | 김석준 부산교육감이 교육감직 상실형을 선고 받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직 교사 4명의 특별 채용 부당 지시 혐의가 인정됐다. 부산지법 형사3단독 심재남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행 혐의로 기소된 김 교육감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교육감직은 상실된다. 김 교육감은 지난 2018년 부산교육감으로 재직하며 전교조 통일학교 해직교사 4명을 특별 채용 대상자로 내정한 뒤 인사 담당 공무원들에게 공개경쟁 채용으로 가장해 특별 채용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채용자 내정 후 공개경쟁 방식으로 위장해 채용한 것. 채용된 4명의 해직교사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09년 해직됐으며, 2013년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이들은 2005년 전교조 부산지부에 통일학교를 개설하고 김일성과 공산당을 찬양하는 내용의 강의를 한 혐의를 받았다. 김 교육감은 재판부에 전교조 통일학교 해직교사 4명만을 위한 특혜 채용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김 교육감이 임용권을 남용해 실무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는 등 부당한 영향을 주는 행위를 했다고 인정했다. 구체적으로 지원자 4명 중 단 1명의 탈락자도 없이 모두 합격한 것을 두고 경쟁시험을 통한 공개 전형에 해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사익을 위함을 아닌 것으로 보인 점은 참작했다. 앞서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김 교육감은 1심 판결 직후 취재진을 만나 적법 절차에 따른 채용이었음을 강조하며 항소심에서 다투겠다고 불복의 뜻을 밝혔다.
더에듀 전영진 기자 | 내년 6월 진행될 경남교육감 선거에 나설 보수·중도 성향 후보가 4명으로 압축됐다. 단일화 밖에는 4선의 국회의원 출신 이군현 출마자가 버티고 있어 추후 분열과 통합의 방향성에 주목된다. 경남교육감 후보 단일화 연대는 지난 12일 창원컨벤션센터에서 1차 여론조사 통과자 권순기 전 경상국립대 총장, 김상권 전 경남교육청 교육국장, 김영곤 전 교육부 차관보, 최병헌 전 경남교육청 학교정책국장 등 4명을 발표했다. 권진택 전 경남과기대 총장과 김승오 전 청와대 교육행정관, 최해범 전 창원대 총장은 1차 관문을 넘지 못했다. 이번 단일화는 여론조사 기관 2곳이 지난 10~11일 이틀간 경남지역 만 18세 이상 도만 255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평균값을 반영한 것이다. 단일화 연대는 후보별 순위와 지지율은 공개하지 않았다. 1차 관문을 통과한 4명을 대상으로 2차 여론조사를 진행, 최종 후보를 결정할 예정이지만, 4선 국회의원 출신 이군현 출마자가 단일화 과정을 이탈한 상태라 추후 추가 단일화 진행 여부가 관건이다. 이 출마자는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토론회도 없이 진행하는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는 깜깜이라며 후보 간 교육철학과 정책, 도덕성과 청렴성, 교육행정 능력 검증을 위한 토론회 선행을 주장했다. 그러나 단일화 연대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결국 단일화 과정에서 이탈한 상태이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김희정 경기 정현고등학교 국어교사(전 경기교사노조 대변인)가 중등교사노조 제7대 위원장에 당선됐다. 러닝메이트인 수석부위원장엔 이정열 부산 정관고 역사교사(전 부산교사노조 대변인)가 함께 한다. 임기는 내년 3월 1일부터 3년이다. 중등교사노조는 지난 10~13일 오후 6시까지 제7대 위원장 선거 투표를 진행했으며, 이날 투표 종료 후 바로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투표율 55.12%에 득표율 52.36%로 기호 1번 원주현·강성 후보를 따돌렸다. 이 위원장 당선인은 ‘중등교사의 자부심, 전국중등교사노조의 새로운 리더’를 비전으로 ▲교사 안전·교권 강화 ▲교사 근무환경 혁신 ▲교육과정·대입 제도 개선 ▲조합원 소통 강화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퇴근 후 교사 시간 보장 △교사 대사 성·디지털 폭력 제로 추진 △교사 안전 체험활동 △교사 업무 경감 △수능 감독 처우 △교사 평가 자율권 보장 △고교학점제 폐지 및 2022 개정 교육과정 개편 △대입제도 개선 △조합원의 노동조합 시스템화 등을 담았다. 김희정 당선인은 “투명한, 조합원 중심 조합을 만들겠다”며 “특히 중등교사의 노동 값어치가 인정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당선인 약력 - 김희정 제7대 중등교사노조 위원장 경기 정현고 국어교사 경기교사노조 대변인(2024~2025) 교사노조연맹 고교학점제 TF 팀장(2025) 교육부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개선 협의회 참여920250 경기교사노조 중등정책TF 팀장(2023) - 이정열 제7대 중등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 부산 정관고 역사교사 부산교사노조 중등부위원장 겸 대변인(2023~2025) 전국중등교사노조 자문단(2025) 부산교육청 학력평가지원단(2022~2025) 부산교육청 역사교육지원단(2023~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