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교사들은 엄하고 무섭습니다. 요즘은 선생님들이 너무 친절해서 문제 아니냐고요? 그 또한 맞습니다. 너무 친절하거나, 친절하기‘만’ 한 건 분명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 전 글(‘친구 같은 교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에서 충분히 다뤘으니 넘어가도록 할게요. 그런데 정말 학교에는 친절한 선생님이 넘쳐날까요?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교권 사태는 정말 선생님들의 친절함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요? 제가 직접 보고 느낀 바로 학교에는 두 부류의 교사가 공존합니다. 무서운 선생님과 친절한 선생님 모두 있습니다. 학교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절반 정도는 무섭고 절반 정도는 친절합니다. 물론 무서운 선생님도 때로 친절하고, 친절한 선생님도 때로 무서울 때도 있어서 칼로 무 자르듯 딱 나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어떤 성향을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비해 친절한 선생님이 많아진 건 맞습니다. 요새 사람들 심성이 갑자기 여리고 착해져서 그런 건 아닐 겁니다. 학생 인권과 학부모 민원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작용했을 겁니다. 친절한 선생님이 과거보다 많아진 건 좋은 일일까요? 긍정적인 측면이 없진 않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 친절함은 독입니다. 고로 친절한 선생님 자체가 언제나 선이고 옳은 방향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무서운 선생님 과거에는 온통 무서운 선생님 천지였습니다. 체벌이 난무하던 시절에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 무서운 교사 전통은 현재까지도 이어집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렸을 때 무서운 교사 밑에서 배운 경험이 많기 때문에 그런 모습에 익숙하고 그 모습은 어느새 내 모습이 됩니다. 무섭게 하는 건 아이에게 괜찮을까요? 아이가 잘못을 했다면 무섭게 하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언제나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만 만나지는 않을 터입니다. ‘내가 잘못했을 때 이렇게 무섭게 혼나기도 하는구나’ 하는 걸 때로 느끼기도 하며 견디기도 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문제는, 매사 무섭게‘만’ 하거나 너무 과도하게 무섭게 하는 경우입니다. 무섭게만 했을 경우 ‘통제’는 비교적 쉬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과 잘못에도 무섭게 반응한다면 아이들은 선생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선생님 눈치를 보고 한껏 움츠러듭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매사 무섭게 하는 게 나빠 보입니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아이들은 크게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고 서로 간의 다툼도 많지 않습니다. 매번 통제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고로 안전상 사고도 많지 않고 학폭 사태도 많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잘만 한다면 아이들이 교사에게 ‘개길 일’도 없습니다. 엄한 규율이 지배하는 군대에서 총기와 무기류를 다룸에도 큰 사건사고 없이 관리되는 것과 같습니다. 안전사고와 학폭, 교사에 대한 반항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점에서, 무서운 교사는 아주 큰 이점이 있고 교사들이 그 끈을 놓지 못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무서움과 엄함만이 지배하는 교실은 군대와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교육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교육의 목표가 ‘통제’와 ‘순응’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그래도 상관없지만 군사정권 시절에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 교육의 목표는 그게 아닌 건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는 걸 그 목적으로 합니다. 저는 지금 ‘통제’와 ‘순응’이라는 목표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그러니까 군대, 전쟁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그 목표가 정당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교육이라는 걸 행하는 교실에서 ‘통제’와 ‘순응’ 자체를 목표로 삼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때로 몇몇 교사들은 ‘통제’하고 ‘순응’시키는 데 몰입해 그것 자체가 교육의 목표인 양 아이들을 대하기도 합니다. 화내는 교사, 그 부작용에 대하여 교사의 무서움에 꼭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화내고 혼내는 것이지요. 어떤 분들은 화내는 것과 혼내는 것을 구별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 둘이 어떻게 크게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둘은 사실상 붙어 다닙니다. 혼낸다는 건 보통 화내면서 아이를 다그치는 걸 의미하니까요. 무섭게 하는 것, 즉 화내는 것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습니다. 첫째, 아이의 자아존중감이 떨어집니다. 즉,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모두 존중받아야 합니다. 피부색이 달라도, 장애가 있어도 모두 존중받아야 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잘못을 저질렀어도 존중받아야 하냐고요? 네, 맞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어도 기본적으로 그 아이 자체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 동의 못 하는 분도 있겠지요. 예컨대, 범죄자에게도 인권을 보장해야 하냐는 질문이 연관되어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범죄자도 기본적인 인권은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범죄자를 앞에 두고 때리거나 화내지 않습니다. 다만 범죄자의 잘못을 법에 의거해 밝히고 그에 따른 책임으로 물리적인 제지와 구속을 할 뿐입니다. 공적으로 그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할 수 없고, 화내거나 다그쳐 그 인격을 훼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책임을 지게 할 뿐입니다. 제가 얘기하는 ‘인권’과 ‘존중’이라는 건 딱 그 정도 수준입니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잘못한 것에 대해 알게 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교사가 화를 내고 다그치면서 아이의 자아존중감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둘째, 아이가 상처를 받습니다. 자아존중감이 떨어지면서 아이들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 상처가 자기 성장의 밑거름으로 작용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상처는 자기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때로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인 행동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셋째, 아이가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습니다. 물론 진정으로 반성하고 다시 안 그러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해집시다. 과거에 내가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혼났을 때 진정으로 반성한 경험이 더 많았나요, 아니면 그저 억울하고 짜증만 난 경험이 더 많았나요? 저는 반성한 적이 없다고는 말 못 하지만 압도적으로 억울하고 짜증 난 적이 더 많았습니다. 교사가 화를 내는 방식의 다그침은 그 아이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말을 하더라도 모든 건 변명으로 치부됩니다. 본인이 실제 잘못이 있어도 아이는 억울해합니다. 그리고 반성하지 않습니다. 넷째, 별로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위에서 저는 무섭게 하면 아이들은 크게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고 서로 간의 다툼도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안전상 사고도 많지 않고 학폭 사태도 많이 일어나지 않으며 잘만 한다면 아이들이 교사에게 ‘개길 일’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정말 잘했을 때 얘기입니다. 교사가 카리스마있게 무서움의 칼날은 잘 휘둘렀을 때 얘기입니다. 예전 권위주의 시절 교실에서나 체벌을 동반한 무서움이 잘 통했지, 지금은 정말 잘 해야 통합니다. 자칫 잘못 무섭게 했다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는 건 차치하더라도, 이런 방식은 아이들에게 엄청 잘 통하지는 않습니다. 조금 엇나가는 아이라도 생기면, 교사에게 반항적으로 나오는 건 예삿일도 아닙니다. 다섯째, 별로 교육적이지 않습니다. 교사가 화를 내며 무섭게 하는 방식을 아이들도 닮습니다. 다른 친구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자기가 옳다며 화를 내는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교사가 잘못을 한 아이에게 화를 내는 방식으로 다그친다면, 그 아이는 똑같이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방식으로 다그칠 겁니다. 다그침을 받은 아이도 똑같이 자기가 억울하다고 생각할 테니 그 아이도 화가 나서 상대방 아이를 다그칠 겁니다. 곧 싸움이 일어나는 건 보지 않아도 뻔하죠. 또 무서운 선생님 앞에서는 아이들이 말을 잘 듣고 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는 선생님(친구같은 선생님, 착하기만 한 선생님)을 만나면 이리떼처럼 물어뜯기도 합니다. 학교 현장에서 (초등의 경우) 담임 말은 잘 듣지만 전담 선생님에게 함부로 하는 아이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런 반 아이들 중 담임 선생님이 엄하고 무서운 경우가 꽤 자주 있습니다. 무서운 교사에서 벗어나기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다소 한가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이 엄혹한 시절에, 망나니 같은 아이들을 잡으려면 무섭게 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마음은 망나니 같은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참교육을 시키고 싶은 마음과 통합니다. 저 또한 그런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자면, 망나니 같은 아이들과 학부모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고, 그들에게 우리가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교사에게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두 사례가 학교에는 공존합니다. 우리가 받은 피해만 생각하고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관행, 습관들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교권을 향한 우리의 정당성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더 튼튼한 교권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 돌아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권위주의 시대에 권위적인 교사들과 그 방식을 답습한 교사들 밑에서 자랐고, 그 영향으로 여전히 무섭게 가르치는 방식은 학교에 도도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교사양성기관에서는 학생생활지도법이나 훈육법, 학급운영에 대해 가르치지 않고 교사들은 그와 관련한 고민을 깊게 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에 투입됩니다. 특히 학생지도 방법은 전적으로 교사 개인의 경험에 의존합니다. 교사 개인이 아이들과 부딪치면서 효과적이고 교육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을 스스로 터득해 적용하고 아니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수정해 가며 다시 적용합니다. 그 결과 자신만의 방식을 완성해 갑니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경험은 분명 소중한 경험이기는 하지만 때로 그 경험의 굴레에 갇혀 더 큰 눈으로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학교 현장은 우리만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며 때로 바깥의 말에 눈과 귀를 닫기도 합니다. 무섭게 하는 방식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의 잘못과 문제행동을 그냥 넘기자는 말도 아닙니다. 잘못된 행동은 당연히 책임지게 해야지요. 다만 무섭게 하는 방식 말고 더 나은 방식은 없는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시대에 교사를 비판하는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혹여나 제가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학생인권근본주의자’들처럼 보일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용기 내어 써 봅니다. 저를 포함해 교사들이 무섭게 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그럼 무섭게 하는 방식 말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른 방식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요? 다음 번에 또 얘기할 기회가 있겠죠. ‘친절하며 단호한 초등학생생활지도, 어떻게 해야 하나’ 두 번째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계속>
더에듀 | “AI가 알려준 답을 그대로 쓰지 말고, 왜 맞는지 자신의 말로 설명해 보세요.” 최근 한 중학교 수업에서 교사가 던진 질문이다. 많은 학생이 AI가 내놓은 결과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지만, 그 과정을 설명하라는 수업 교사의 요청에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사례는 오늘의 교육이 직면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AI가 제공하는 학습 효율성과 학습자가 스스로 사고를 점검하는 메타인지 능력, 이 두 가지가 함께 작동하지 못할 때 학습의 깊이는 확보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AI 교육에 있어 이 두 요소의 조화, ‘양자(兩者) 균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쪽은 AI가 만들어 주는 학습 속도와 편의성, 다른 한쪽은 인간이 직접 사고하고 검증하며 스스로 배우는 힘이다. 이 둘 중 하나만 강조할 때 학습은 흔들린다. 즉, AI만 믿으면 사고력은 약화하고, AI를 경계하며 배제하면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을 놓치게 된다. 따라서 균형이 핵심이자 관건이다. 한 고등학생의 사례는 이 균형이 무너졌을 때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그는 AI 기반 문제풀이 앱으로 하루 수십 문제를 빠르게 해결했다. 초반에는 성적이 급상승하며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난도가 조금만 높아지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서술형 답안은 논리적 구조가 부족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AI의 풀이 과정을 곱씹어 보지 않았고, 자기식으로 이해를 재구성하는 단계도 없었다. 결국 AI의 도움으로 지식은 쌓였지만 ‘확인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 한 초등학교에서의 수업은 양자 균형이 구현된 장면이었다.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AI 학습 일기’를 쓰게 한다. AI가 해 준 설명 중 어렵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적고, 다음 날 수업에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을 재구성하게 한다. 단순히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는 것이 아니라, ‘AI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나는 어떤 부분에서 막혔는지’, ‘다른 설명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질문할지’를 적는다. 교사는 “AI 사용 시간이 늘어났는데, 오히려 아이들의 사고 과정이 더 명료해졌다”고 말한다. 결국 AI는 충실한 도우미가 되었고, 메타인지는 강화되었다. 두 사례의 차이가 보여주는 결론은 명확하다. AI를 사용하는 목적이 ‘더 빨리’가 아니라 ‘더 깊이’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목적성을 중심에 둘 때, 우리는 AI 교육에서 필수적인 양자 균형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은 다음의 세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반드시 점검하는 절차를 학습 과정에 포함해야 한다. AI의 답이 틀릴 수도 있음을 경험할 때, 학생은 비로소 ‘생각하는 사용자’가 될 수 있다. 이 작은 검증 과정이 메타인지 훈련의 출발점이라 할 것이다. 둘째, 질문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교육의 핵심 역량으로 삼아야 한다. AI는 질문을 세밀하게 조정할수록 높은 품질의 답을 제공한다. 질문 능력은 곧 사고 능력이며, 이는 AI와 협력하는 시대의 핵심 문해력이라 할 것이다. 셋째, AI의 즉각적 피드백을 사고 확장 도구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AI가 분석해 준 오답 패턴이나 개념 연결 구조를 활용하면, 교사는 학생에게 더 깊은 사고를 안내하는 ‘두 번째 계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AI 시대의 교육은 AI의 기능 자체가 아니라, AI를 활용하는 인간의 태도에서 미래가 갈릴 것이다. 학습성과를 높이는 기술적 가능성과 자기 사고를 점검하는 메타인지적 성찰,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학생은 자신의 학습을 주도할 수 있다. 즉, 학습의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AI가 지식을 제공하고, 인간이 그것을 스스로의 언어로 다시 재구성하는 순간, 배움은 단순한 정보 소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찰과 성장의 경험, 그리고 스스로 배우는 인간이 가진 ‘고유의 힘’이기 때문이다. AI와 메타인지, 이 두 축의 균형 위에서 미래 교육의 길이 열릴 수 있기를 바라면 교육 관계자들의 치밀하고 합당한 지혜와 실천을 기대한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학교 앞 금연구역을 확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영유아 및 어린이의 간접흡연 피해 감소가 기대된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국회 교육위원회)이 지난 5일 학교 앞 금연구역을 30m에서 50m로 확대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 하여금 유치원, 어린이집 및 학교 시설의 경계선으로부터 50m 이내의 구역을 금연구역으로 확대 지정하도록 명시했다. 현행 기준은 30m이다. 기존 30m는 영유아와 어린이를 간접흡연 폐해로부터 보호하기에 부족하다는 문제 의식에 따른 것이다. 실제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액상형 전자담배와 궐련은 흡연장소에서 100m 떨어진 곳까지 대기기준농도(WHO, (PM2.5)15µg/㎥)를 초과해 초미세먼지가 유지됐다. 특히 액상형 전자담배의 경우 간접흡연 실외 노출평가 연구의 모든 사례에서 연기가 100m 이상 확산하고, 궐련은 1명 흡연 시 최대 80m까지 연기 확산 가능성이 있다. 김 의원은 “학교 주변은 아이들이 안심하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이번 법안을 통해 아이들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학교 앞 금연구역은 2017년 10m로 신설되어 2023년 30m로 확대됐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변화의 시대, 함께 찾는 학교도서관의 길은 무엇일까. 전국사서교사노조가 지난 6일 ‘제8회 전국사서교사노조의 날’을 열고 조합원들과 이 같은 고민에 대한 방향성과 지난 1년 노조의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고 8일 밝혔다. 특히 박장순 위원장이 99.7%의 지지로 제5대 위원장 연임도 성공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송정희 성우가 강사로 나서 ‘낭독의 재발견 : 천천히, 깊이 읽는 리터러시 교육’을 주제로,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이 ‘AGI 시대의 리터러시와 학교도서관의 역할’을 주제로 강의했다. 송 성우는 낭독이 단순한 읽기 방식이 아니라 학생의 이해·몰입·표현 능력을 확장시키는 교육적 도구임을 강조하며, 학교도서관이 학생의 독서 몰입과 함께 개인의 읽기에서 모두의 읽기로 독서 경험을 설계하고 지원할 수 있는 실제적 방법을 제시했다. 맹 부총장은 AGI(범용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변화할 교육 생태계를 예측하고 이로 인해 학생들이 필수로 갖추어야 할 능력으로 정보 판별·검증 능력, AI 활용 역량을 제시했다. 특히 학교도서관이 데이터 기반 교육환경과 AI 학습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핵심 기관으로 자리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사서교사노조의 고민인 앞으로 학교도서관의 역할을 어떻게 선보일 것인지, 낭독을 통한 리터러시 교육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이지, 인공지능 시대 정보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학교도서관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이 집중적으로 다뤄진 것. 강연 후에는 연간 활동 보고 및 제5대 임원 이·취임식이 이어졌다. 박장순 위원장은 사서교사 양성 및 배치를 주축으로 추진된 정책 제안과 지역 현안, 조직 운영 등 주요 사업을 조합원들에게 보고했으며, 각 시·도별 사서교사가 겪는 현장의 어려움과 향후 과제를 함께 공유했다. 또 5대 위원장 및 부위원장은 박장순 위원장과 이은주 부위원장이 단독 출마해 선거를 진행, 투표율 72.96%, 합계 특표율 99.7%로 통과됐다. 행사에 참석한 한 조합원은 “빠르게 변화하는 AI 시대에 학교도서관의 교육적 역할을 함께 고민하고 나눌 수 있어 큰 의미가 있었다”며 “현장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점이 더욱 든든하게 느껴졌고, 앞으로도 함께 힘을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더에듀 전영진 기자 |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김명환 서울대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인문사회 특별위원회(특위)’ 위촉식을 개최했다. 인문사회 특위는 지속가능한 인문사회 분야 교육 및 연구 기반 확충, 학문 후속 세대 양성 등의 심층적 논의를 위해 제안됐으며, 지난 10월 열린 제61차 회의에서 구성이 의결됐다. 김명환 위원장 외에 ▲강창우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김대건 강원대 행정·심리학부 교수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우정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김진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 ▲김혜숙 한국교원과정평가원 선임연구위원 ▲옥현진 이화여대 사범대 초등교육과 교수 ▲이강재 서울대 중문학과 교수 ▲정병호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교수가 위원으로 위촉됐다. 이들은 내년 6월 7일까지 6개월간 △인문사회과학의 학문적 재정립과 대학 내 관련 학과·연구소·관련 학회 등의 혁신을 위한 방향 모색 △학문 후속 세대 양성을 포함한 지속가능한 학술생태계 구축과 제도적 기반 마련 △학문 균형 발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 등을 위한 정책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차정인 국교위원장은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이 고도화하는 시대를 맞아 인문사회 학문 분야의 중요성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며 “인문사회 분야 학문진흥과 교육 발전에 유용한 좋은 정책들을 제안해 달라”고 당부했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교원도 정치 후원금 기부하고, 정당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 전북교사노조 설문 결과, 다수의 전북 교사들은 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설문 ‘교원의 정치기본권 인식조사’는 지난 4~7일 온라인으로 진행됐으며, 전북 지역 교원 562명이 참여했다. 설문 결과 95.3%가 정치 후원금 기부가 가능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93.2%는 정당 가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93.7%는 교사의 정치적 표현에 자유가 필요하다고 했으며, 92.1%는 피선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봤다. 응답자들은 서술형 답변에 ‘교사의 정치권을 민주시민의 일원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권리’, ‘학생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됨’, ‘정치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현재 상황을 나아지게 함’ 등의 의견을 남겼다. 전북교사노조는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은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권리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키는 일”이라며, “교원의 정치기본 4법(정당가입·정치후원금·표현의자유·피선거권)이 조속히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설문 연령별 참여 비율은 △만22세~29세 3.2%(18명) △만30세~39세 30.3%(169명) △만40세~49세 39.7%(221명) △만50세~62세 27%(151명)였다. 직위별로는 교사가 91.1%(512명)를 차지했다.
더에듀 전영진 기자 | ‘4세·7세 고시 금지’와 ‘학교 급식노동자 적정 식수인원 기준 마련’ 등의 내용이 담긴 법안이 국회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를 통과했다. 국회 교육위는 8일 법안소위를 열고 초등학교 취학 전까지 유아 대상 시험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학원법 개정안과 학교 급식노동자 1인당 적정 식수인원 기준 마련 등이 내용의 담긴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학원법 개정안은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의 유아 모집에 있어, 학원과 교습소, 개인과외가 합격 여부를 가를 수 있는 선발 시험의 시행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안에 있던 입학 후 수준별 반 편성 시험과 평가를 금지하는 내용은 삭제됐다. 학교급식법 개정안은 적정 식수인원 기준 마련과 안정적인 노동환경 개선 근거를 담았다. 이는 학교급식노동자를 조합원으로 하는 전국교육공무직본부(전공본)이 요구하던 내용으로, 정인영 본부장이 올해에만 두 차례 단식에 돌입하는 등 역할을 했다. 정 본부장은 “적정 식수인원 기준은 급식실 산업재해를 줄이고 학교급식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현장의 오랜 요구가 비로소 제도적 문으로 들어선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국회 교육위는 오는 9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날 법안소위에서 의결한 법안들을 처리할 예정이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경남교육감 선거 출마를 선언한 이군현 전 의원이 보수·중도 성향 후보 단일화 기구의 여론조사는 후보자 간 공개토론 후 실시해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보수·중도 성향 경남교육감 출마 예정자들과 단일화 연대는 지난 10월 단일화 확약식을 통해 1·2차 여론조사를 통해 최종 후보를 선출하기로 합의했다. 1차 여론조사는 오는 10~11일 진행해 상위 4명을 압축한 후, 이달 말께 2차 여론조사를 진행해 최종 후보를 선출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지난 4일 출마를 공식화 한 이군현 전 의원이 8일 경남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론조사는 후보자 간 공개토론 후에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후보 간 교육철학과 정책, 도덕성과 청렴성, 교육행정 능력이 충분히 검증되고 도민과 학수보, 교사가 각 후보를 제대로 비교·판단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공개 토론도 없이 깜깜이 여론조사만으로 단일후보를 선출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미 지난 26일 열린 출마 예정자 회의에서 예고됐다. 회의 참석 8명 중 5명은 2차 여론조사를 내년 2월로 미루고 정책 검증 절차를 거치자고 주장했으나 3명은 기존 일정대로 신속한 단일화 진행 입장을 유지했다. 과반이 넘는 수가 일정 등에 이견을 제기했으나, 단일화 연대는 기존 일정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1차 여론조사 통과 4명 중 3명 이상이 동의할 경우 2차 일정 등 세부 절차를 조정할 수 있는 조건부에 합의했다. 그러면서 “경남선거관리위원회도 온라인 생중계(유튜브 등)로 공개토론회를 여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며 “토론회는 외면한 채 깜깜이 여론조사 일정만 서둘러 확정하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법적으로 유튜브 등 온라인 생중계 방식의 토론회 개최가 가능한데도 단일화 연대가 거부한 것에 의문을 표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경남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온라인(유튜브 등) 후보자 합동 토론회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에 지난 3일 출마기자회견에서 단일화 연대에 토론회 개최를 요청했다. 그러나 단일화 연대는 지난 7일 회신을 통해 “시기적, 현실적 한계로 인해 추진이 어렵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경남선관위도 온라인 토론회가 가능하다고 했다”며 “후보자 토론 없이 깜깜이 여론조사만으로 진행하는 후보 선출을 받아 들일 수 없으며 동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책으로 경쟁하고 비전으로 평가 받고, 도덕성과 청렴성으로 검증 받는 교육감 선거를 원한다”며 “경남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한 길이라면 더 많은 토론과 검증 과정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한편, 보수·중도 후보 단일화 경선에는 ▲권순기 전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권진택 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총장 ▲김상권 전 경남도교육청 교육국장 ▲김승오 전 청와대 교육행정관 ▲김영곤 전 교육부차관보 ▲이군현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최병헌 전 경남교육청 학교정책국장 ▲최해범 전 국립창원대학교 총장 등 8명이 참여한다.
더에듀 | 당나라 수도였던 시안을 모델 삼아 만들었다는 계획 도시 경주와 일본의 교토, 동아시아 3개 나라의 천년고도 시안, 경주, 교토를 방문하며 보고 공부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록에 근거한 역사 문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기회로 직접 경험한 내용들을 복기하면서 불분명함이 명확해지고 새로워지는 경험을 해보고자 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 죽어서도 영원하고 싶었던 진시황제는 그토록 죽음이 두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황제의 권위를 내려놓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시황릉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시황제는 기원전 247년, 진나라의 왕으로 즉위한 직후부터 황릉 공사를 시작했는데 총인원 70만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황릉은 진시황이 죽을 때까지도 완성이 되지 못했고 후궁, 자녀들 그리고 공사에 참여했던 인부들까지 순장시키면서 그 공사를 끝냈다. 진시황릉의 배장품 구덩이에서는 사람이 묻힌 무덤도 여러 곳 발굴됐다. 사마천이 묘사한 진시황릉의 모습 가운데서도 ‘수은의 개울과 하천, 바다’를 조성했다는 구절이 유명하다. 무덤 천장에 천체를 그렸고, 바닥에는 진나라의 지리를 묘사했으며, 수은을 사용해 강과 바다를 표현했다고 한다. 무덤에 매장된 진귀한 보석과 유품을 지키기 위해서 침입자가 나타나면 즉각 석궁이 발사되도록 설계했다. 무덤 입구를 영원히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서 축조 공사가 마무리되자 인부 모두를 산 채로 매장했다는 기록도 전해 온다. 사마천이 직접 무덤 내부를 봤을 리가 없으니 현대 학자들은 이 기록을 허구적인 상상의 기록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황릉 인근 흙에서의 수은 함유량이 인근 지역 흙보다 무려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보아 사마천의 기록을 허구적으로만 보기도 어렵다. 진시황이 죽은 후 4년이 지난 기원전 206년에 허무하게도 진나라가 멸망해버렸다.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대가 함양에 입성하자 진나라 역대 왕들의 무덤을 도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진시황제의 무덤이 큰 규모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실제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모르고만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진시황릉에 대한 설명들이 과장되고 허구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러나 병사 인형 수천 점이 묻힌 거대한 병마용이 발견되면서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졌고, 허구로만 알려진 사실들이 점차 사실들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발굴 당시 당시 총리였던 저우언라이는 후손들을 위해서 발굴 기술이 완벽해질 때까지 무리하게 능 자체를 발굴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진시황릉 내부에 거대한 빈 공간이 유지된 채로 남아 있다. 이 빈 공간을 무너트리지 않고 보존하면서 발굴할 기술이 아직 존재하지 않아서 진시황릉의 발굴은 무기한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사마천은 어떤 근거에 의해 그러한 기록을 남겼으며 그 기록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렇게까지 해서 황릉을 만든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군주의 위엄은 스스로 군림하려는 것이 아니고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저절로 따라 나올텐데 말이다. 그동안 역사의 여러 기록들과 근래 우리 정치의 여러 모습들을 보면서 ‘역사의 현상들은 반복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더에듀 | 얼마전 KBS 특강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의 거물,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은 “경쟁은 패자들을 위한 것(Competition is for Losers)”이라는 도발적인 명제를 던지며, “진정한 성공은 아무도 하지 않은 것, 즉 ‘제로에서 하나(Zero to One)’를 만드는 ‘독점(Monopoly)’에서 나온다”고 역설했다. 그의 통찰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교육열과 시스템에 대해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경쟁 중독 사회인 한국의 교육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모두가 똑같은 최고 명문대를 목표로 오직 ‘모방(1에서 n으로)’에만 매진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은, 틸의 경고에 따르면 한국의 미래를 만들기는커녕, 창조적 잠재력을 억압하는 ‘제로섬 토너먼트’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래 교육은 이 중독을 끊어내고, ‘창조적 반대자(Contrarian)’를 키우는 방향으로 대전환되어야 한다. 18세의 덫: 입시라는 감옥을 부수라 틸은 명문대 입학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엘리트 교육이 ‘두려움(Fear)’에 기반한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낙오에 대한 공포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의 18세가 가장 중요한 해라고 여기며, 그 이후의 삶을 ‘자동으로 보장’받으려는 환상에 갇힌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18세의 시험 성적이 평생의 신분처럼 작용하는 현 구조는, 대학이 학습의 가치 대신 ‘배제(Exclusion)’의 가치로 작동하게 만든다. 미래 교육 정책은 이 ‘18세의 덫’을 부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우선 다중 트랙의 사회적 인정이 필요하다. 대학 학위만이 성공의 유일한 경로가 아님을 국가가 인증해야 한다. 숙련된 기술 교육, 혁신적인 창업 경험, 특성화된 전문 분야 등 다양한 영역에서 높은 사회적 보상과 안정성을 제공하여, 학생들이 명문대라는 단 하나의 문을 향해 몰려드는 현상을 완화해야 한다. 또 재도전의 공정한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한 번의 실패나 늦은 시작이 평생의 낙인을 의미하지 않도록 평생 교육과 직업 전환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교육은 18세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개발(Developing the Developed World)’할 수 있는 역동적인 과정임을 정책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모두가 동의하는 진실을 거부하는 법 틸은 최고의 창업가에게 던질 질문으로 “당신이 진실이라고 믿지만, 거의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를 제시했다.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독립적 사고(Thinking for Yourself)'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 교육이 주입하는 것은 오직 ‘모두가 동의하는 정답’이며, 이는 학생들이 버즈워드(Buzzword, 유행어)를 외치며 수많은 경쟁자가 있는 시장에 뛰어들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미래 교육의 핵심은 모방적 지식을 넘어선 창조적 지혜를 길러야 한다. 우선 정답 없는 질문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학교는 정해진 교과서의 지식을 외우는 곳이 아니라, 현 사회의 통념이나 문제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만의 대안적 통찰을 도출하는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 교육 과정 자체가 ‘비판적 사고’를 넘어선 ‘창조적 반대 사고’를 요구해야 한다. 진정한 문제 해결 중심 학습도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중요한 문제,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학문 경계를 허무는 융합적 사고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가 아닌, 학생의 ‘0에서 1’ 창조 과정을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이주자'의 시대를 대비하라 틸은 기업의 성공이 최초의 시장 진입(First Mover)이 아닌, ‘마지막 이주자(Last Mover)’에서 온다고 말했다. 이는 곧 ‘지속가능한 독점력(Durability)’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10년 후에도 경쟁자를 압도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힘, 즉 장기적인 설계 능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오늘날 한국의 학생들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시대의 단기적 경쟁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미래 교육은 이들의 시야를 ‘지속 가능한 미래’로 넓혀야 한다. 이를 위해 장기적 설계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모든 프로젝트와 학습에 ‘10년 후의 결과’를 예측하고 설계하는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 당장의 시험 점수가 아닌, 자신이 만들 미래 문명의 청사진을 고민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은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야를 갖게 될 것이다. 기술/과학에 대한 낙관주의도 회복해야 한다. 틸이 지적했듯, 기술을 악마화하는 문화적 냉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정보기술(IT)을 넘어 생명과학, 에너지 등 미개척 분야에 도전하여 인류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건설자(Builder)'로서의 자부심과 기술적 낙관주의를 심어주어야 한다. 경쟁은 과거의 이익을 나누는 행위일 뿐이다. 한국 교육이 진정으로 미래를 위한다면, 이제는 학생들에게 ‘남을 이기는 법’이 아닌,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법을 가르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