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경상디지털교육자연합(G-DEAL)이 디지털 전환교육의 활성화를 통한 지역사회 교육경쟁력의 제고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교육자들 간의 연합체로 지난 7월 창립했다. G-DEAL은 어떤 교육적 가치를 추구할까. 또 디지털 전환 교육 시대를 맞아 고민하는 올바른 방향성은 무엇일까. <더에듀>는 미래사회를 슬기롭고 분별력 있게 살아가는 데 디지털이 여러 도구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G-DEAL 회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
필자는 평균보다 늦은 나이에 교직에 입문했다. 학창 시절에는 모터사이클 레이서로 활약하다 기회가 생겨 출시 전의 자동차를 주행하며 테스트하는 주행연구원으로, 나중에는 기계공학, 그중에서도 자동차공학에 매료되어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하이브리드 자동차 기술을 배우겠다며 미국까지 향해 열정을 불살랐던 공대생이었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영어 교사로 교직에 입문하고 이제는 전문상담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은 스스로도 아직은 어색하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다.
이렇듯 남들과는 조금 다른 경험을 가지고 교직에 입문하다 보니 다른 선생님들은 겪지 않았던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필자의 교사학습공동체 경험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나의 교육 인생 “짜장면 한 그릇이 바꿨다”
남들보다 늦은 교직 생활의 시작은 당연하게도 순탄치 않았다. 교직에 입문하기 전까지 쌓아 올렸던 많은 경험은 교직 사회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건만, 야간 근무를 위해서는 초과근무 복무를 상신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무상(?) 야간 업무’를 수행했다.
신규 교사인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라는 생각이 필자의 머리를 가득 채울 때쯤, 교직이라는 사회에 잡아먹히고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막연하기만 했던 교사의 업무와 책임 그리고 의무가 하루하루 익숙해지며 패턴화되자 건방지게도 “나 정도면 꽤 괜찮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 교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에게 칭찬도 비난도 없는 무난한 수업을 하고, 동료 교사나 부장/관리자에게 큰 비난이나 지적을 받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업무를 해결해 나가다 보니 앞으로의 학교생활에 더 이상 큰 걸림돌은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던 시기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오늘도 잘하고 있노라며 한껏 어깨를 펴고 자만심을 뿜어내던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
같은 학년부에서 기획 교사를 맡았던 필자의 멘토 선생님께서 학년부 점심 회식을 위해 중국집 메뉴를 무려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받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메신저로 서식 파일을 보내고 업무 대상 선생님들에게 수십 개의 파일을 회신받아 취합하던 업무들이 빈칸에 ‘자장면’이라고 적기만 하면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취합이 된단다.
이 무슨 25세기쯤 나올 것 같은 인간 문명의 극단적인 발전이란 말인가? 시트에 ‘자장면’을 적어넣으며 했던 그 질문이 교육자 문지훈을 완전히 뒤바꾼 결정적인 한 마디가 되었다.
“쌤, 그거 어디서 배웠어요?”
딱 ‘아는 만큼’만 보인다
제 앞가림도 바쁜 신규 교사에게 있어 능숙한 말솜씨와 짜임새 있는 수업으로 학생들을 매료시키며 의미 있는 수업을 하시는 옆자리 선생님의 사례는 남의 나라 이야기요, 연수원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소위 ‘선도 교원’은 올려다보기도 황송한 높은 나무였다.
그러니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들이라며 눈앞의 업무나 열심히 하자던 필자에게 선배 선생님이 알려준 ‘에듀테크’의 존재는 관련 연수를 필사적으로 찾아다니는 연수원 VVIP 고객 하나를 양성하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다양한 수업 방법과 그를 도와주는 에듀테크는 알면 알수록 수업을 포함한 학교 업무를 필자가 얼마나 만만하게 보아왔는지, 그리고 교육에 대해 무지한 채로 자만심만 가득했는지 깨닫게 했다.
패턴화되어 익숙해진 학교 업무로 “교직? 어려울 이유 하등 없더라”며 기계처럼 출퇴근을 반복하던 신규 교사 문지훈은, 2024년 교사 문지훈에게 아직도 자다가도 이불을 차야 하는 이유를 수십 가지 정도 만들어 주고 말았다.
과거야 어쨌건 배움을 계속해서 이어가던 어느 날, 문득 ‘나와 같은 고민을 겪고 있는 교사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떠오르며 취미를 동료와 함께 즐기던 동호회 활동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주제와 취미로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던지며 경험을 공유하고 어려움을 나눴던 그 동호회 활동이 교직에서는 이루어 진다면?’, ‘나와 같은 상황과 어려움에 부닥친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서로가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웃고 울 수 있다면 성공적인 교직 생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당시 구글 문서 도구와 클래스룸 사용 방법을 연수하셨던 전상윤 선생님에게 큰 용기를 내어 연락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지금의 경상디지털교육자연합(G-Deal)의 전신이 되는 구글 교육자 모임(GEG경남)이 전상윤 선생님을 초대 리더로 추대하며 교육계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교육의 목적과 방향이 없으면 무거운 족쇄가 된다
필자가 한창 연수를 찾아다닐 때는 교육계의 전반적인 에듀테크 활용 능력 수준 자체가 낮았기 때문에 에듀테크를 활용한 수업 사례나 교육학 이론(소위 ‘페다고지(Pedagogy)’라고 하는)에 근거하여 기획된 연수보다는 도구 자체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연수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물론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연수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필자는 그런 도구 사용 방법과 관련된 연수를 무분별하게 듣다 보니 결국 수업의 방향성을 잃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연수에서 알려주는 모든 도구를 학교 현장에서 사용해야지만 배움을 오롯이 실천하고 정진하는 교사가 되는 것만 같았고, 결과적으로 내 수업의 기반이 바로 서지 않으면 주판을 버리고 슈퍼컴퓨터를 산다고 한들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최선이라고 했던가? 뒤늦게 수업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 지역 교육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는 비영리 민간 교육단체 구름학교에서 GS-PBL이나 슬로리딩 등과 같은 충분히 검증된 교육학 이론과 교육과정에 근거한 교수 방법을 배운 뒤에야 에듀테크를 단지 내 수업을 돕는 ‘도구’로써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이러한 경험에 입각한다. 분필 한 자루를 들고서 50분 동안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가르침을 전하는 여러분의 수업은 틀리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전달할 지식을 선별하고,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준비한 그 수업이 틀렸을 리가 없다는 말이다.
다만 조금의 부족함이 느껴진다면 다양한 수업 기법을 연구함으로써 여러분만의 수업을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 완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에듀테크는 그 후에 여러분의 교실에 들어와도 늦지 않는다.
결국 에듀테크는 탄탄한 목적과 방향성을 가진 여러분 수업의 한 장면에서, 교육 활동을 조금 수월하게 도와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하고, 수업을 혁신하겠다며 학생들 앞에 도구만 잔뜩 늘어놓고 마는 주객전도가 이제는 없어야 할 것이다.
좋은 학습공동체에는 좋은 동료가 있더라
경상디지털교육자연합(G-Deal)의 전신인 GEG경남에서부터 필자는 좋은 동료와 함께 해왔다. 내재적 동기를 스스로 발현하여 모임을 하고 친목을 다지며, 나아가 우리 조직의 가장 큰 존재의의인 ‘나눔’을 실천하는 동료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는 말이다.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는 부족함을 동료에게 나의 모습을 투영해 보며 찾아내고,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채울 수 있는 그런 단체이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있어 경상디지털교육자연합(G-Deal)은 고리타분한 ‘연구만 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또 다른 형태의 ‘동호회’이며,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 어떤 이해득실도 개입하지 않고 순수한 즐거움으로 함께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든든한 동료들 덕분에 지금은 이전과 같이 이런 도구 저런 도구, 이런 수업 방법, 저런 수업 방법에 휘둘리며 교육을 연구하지 않는다. 동료들의 나눔에서 영감을 얻고, 그렇게 얻은 영감은 또 필자의 부족함을 마치 새살이 돋아나듯 사르륵 채워간다. 그렇게 채워진 필자의 교육 활동은 또 다른 누군가의 영감이 되고, 결국 우리는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에듀테크도, 수업 방법도 찾아 나간다.
근묵자흑이라는 말과 같이 동료와 나의 색은 결국 모임을 대표하는 색채가 되고, 결국 우리는 사용하기 위한 에듀테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수업에 꼭 필요한 도구를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유니콘이 될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 기업을 찾는 투자자들은 입을 모아 “그 기업이 하는 일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도 교육 활동으로 말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어떤 수업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 어떤 도구를 사용할 것인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수업을 해왔는지, 그리고 어떤 수업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해 보자. 여러분의 옆에는 분명히 좋은 동료가 있을 테다. 그들과 함께 나누고 고민하며 더 잘난 교육자가 되어보자. 물론 우리 경상디지털교육자연합(G-Deal) 또한 그러한 당신을 동료로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